(스포, 장문) 뱃맨의 '더 배트맨' 리뷰
<더 배트맨 / THE BATMAN> (2022)
(스포살짝)
우선 본인은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정말 사랑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한정이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거의 본 적 없으며 그래픽 노블은 '킬링조크, 허쉬, 패밀리의 죽음' 등 내가 읽고 싶었던 것 몇몇개만 정독했을 뿐, 세부 설정 하나하나 꾀고 있는 헤비 매니아까진 아니라는 얘기다. 헤비 매니아분들이 만약 이 글을 본다면, 개인적 감상일 뿐이니 노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복수다'
더 배트맨 속 배트맨은 자경단원 인생에 접어든지 2년 차 아마추어다. 이 아마추어 배트맨은 꽤 화나있고, 어딘가 모르게 지쳐보인다. 배트맨 활동 후 억만장자 가문의 왕자 '브루스 웨인'의 삶을 살 때의 모습은 마치 나사 하나 빠진 폐인같다. 마치 배트맨이 본캐고 브루스 웨인이 부캐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경단원 활동에 집착하고,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아마 그의 복수심과 '신념'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복수의 사도가 되어 자신의 부모님을 살해한 자들과 같은 범죄자들을 공포로 처단하는 것이 부모님의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며, 고담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굳은 신념.
하지만 이와 비슷한 신념으로 악 또한 탄생한다.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고든이 '너희는 누구냐'라고 추종자의 마스크를 벗기며 물어보자 그는 배트맨이 그랬던 것처럼 내뱉는다. '나는 복수다'
이는 이 1차원적 신념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위험하게 변질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배트맨과 리들러는 거의 완벽하게 대칭 관계다. 방식의 차이만 있었을 뿐, 둘의 목적은 같았다. 바로 고담시 청소, 정의 구현이다. 배트맨은 그간 자신의 활동이 진정 사람들에게 올바른 변화를 가져다줄지 의문을 품어왔었고, 추종자의 그 한마디는 그의 신념이 철저하게 틀렸음을 반증한다.
진정 고담시와 고담시민들을 위해서는 개인적 복수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희망.
고담 시민들이 위험에 처할 때 배트맨이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서 구해줄 거라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 이를 깨달은 배트맨은 물속에 빠진 사람들이 전깃줄에 감전될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하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내던져 모두를 빛으로 구원한다.
배트맨의 상징은 복수에서 희망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고, 고담 시민들도 그를 조금씩 수용한다.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후 누군가 그에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나지막이 외칠 것이다.
'나는 배트맨이다.'
새 배트맨 솔로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독의 부담감이 장난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작가주의의 대가 팀버튼의 '배트맨 리턴즈'와 영화 역사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놀란의 '다크나이트'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게다가 현재 벤 에플렉의 배트맨이 DCEU에 자리잡은 상황에서 이 새 배트맨 영화는 이전 영화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뒀어야 했을 것이다. 맷 리브스 감독은 이 부분에 있어 극의 전개방식과 정교하고 정제된 연출, 역대급 미장센으로 차별화하는데 나름 성공한다.
사실, 기존 배트맨 영화들과 이 영화는 추구하는 바가 확연히 달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비교하기도 싫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것이다.
팀버튼은 고담시를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으로 아주 독특한 분위기로 재현했다. 인물들은 우스꽝스러운 복장들을 하고 다니며, 우산이 프로펠러가 되어 그걸 잡고 날아가는 등 영화 자체가 만화스럽다. 다크나이트의 놀란은 영화를 현실적으로 잘 만들었지만, 고담시만의 음산함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본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는 마치 잘 쓰여진 소설 같다.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은 그래픽 노블 그 자체다. 그래픽 노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샷들로 영화가 채워져 있으며, 그래픽 노블에서 잘 드러나는 고담시의 음산함이 현대적으로 가장 잘 표현됐다고 느껴졌다.
작년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영화의 톤이 굉장히 무거울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고담시는 하루종일 어둡고, 비가 내려 마치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이런 고담시와 동화되기라도 한 듯, 배트맨의 성격과 행동 하나하나 진지하고 무겁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배트맨에 집중하고 배트맨의 시점 중심으로 거의 진행되기에 주변 인물들에 대한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팀버튼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명작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훌륭한 각본도 있겠지만, 빌런들과 주요 인물들이 매력적이며 그들의 캐릭터성과 파워를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내러티브의 부족함은 설득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리들러 캐릭터의 애매한 해석, 어딘가 2%부족한 캣우먼, 위엄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팔코네라는 아쉬운 결과로 나타난다.
주인공 '배트맨'에만 집중하여 진행된다는 점에서 영화 '조커'와 상당히 유사하다. '조커'처럼 클라이막스에서 주는 큰 임팩트 한방 같은 것은 없지만 보면서 소름 돋았던 시퀀스는 몇 개 있다. 경찰청 탈출 시퀀스, 펭귄과의 추격전, 망설임 없이 전깃줄로 몸을 날리는 장면. 극 진행 내내 무겁고 느리게 움직인 배트맨 덕분인지 이 시퀀스들의 감동은 배가 된다. 특히 펭귄과의 카체이싱 추격전은 보면서 속으로 '이거지'를 몇 번 외쳤는지 모르겠다. 극장에서 이렇게 소름 돋았던 건 정말 오랜만이였다. 내가 펭귄이였으면 진심으로 무서워서 바로 항복선언 했을 듯.
대중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아쉬운 점과 좋았던 점이 극명하다. 캐릭터만 조금 다듬었다면 엄청난 작품이 나왔을 텐데.. 로버트 패틴슨이 이렇게 배트맨 역을 잘 소화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고, 3부작의 기반도 어느정도 잘 다졌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나올 작품들에 기대를 해본다. 다음 작품도 독백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나려나. 이번 작품에서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해 최고의 배트맨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4/5
P.S-개인적으로 배리 키오건의 조커는 살짝 애매한 느낌입니다. 후에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해지네요!
추천인 1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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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루 맷리브스 감독님 뇌 탐방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배트맨 이외 등장인물들의 내러티브가 부족했다는 평대로 배트맨 이외 인물들의 동기나 서사, 감정선 등을 설명해주는게 아니라
영화의 장르처럼 단편적인 정보나 대사들로 '추리'해야 했던 영화 같습니다.
이런 점이 양날의 검이었던 것 같아요.
일부 사람들에게는 추측하고 대사 한줄 한줄 해석하는 재미를 주지만,
또 안 맞는 분들에게는 불친절하고 난해하고 이해 안되는 부분도 많았을 거 같습니다.
저는 너무 좋았지만 말이죠 ㅎㅎ
저는 리들러, 캣우먼, 팔코네 캐릭터들만 조금 더 다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요ㅠㅠ 이거 외엔 전부 다 취저였어요ㅋㅋㅋ 다음편도 묵직하고 더욱 처절했으면 좋겠네요. :)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