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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가 지옥을 보여주는 방법 ([우주전쟁]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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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우주전쟁 , War of the Worlds>(2005)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평어체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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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9.11 이후의 공포를 보여주려 했다는 감독 자신의 말처럼, 편안하고 손쉬운 낙관이 불가능한 시대의 공기를 한가득 품고 있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 공상과학의 희망과 낭만의 추구를 선두지휘하던 스필버그는, 자신이 섰던 그 자리를 재고하듯 더없는 악몽을 창조했다. 미지와의 조우가 희망찬 낭만이 아니라 무망한 재난이 되는 <우주전쟁>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스필버그의 근심과 불안 그리고 심연이 자리한다.

 

쳐다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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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을 머금은 채 기괴하다 싶으리만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그 진기한 광경에 매료된 레이는, 어린 딸 레이첼에게 말한다. "멋있는 거 보여줄까?"  레이는 하늘을 가리킨다. 그는 그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지루한 일상에 찾아든 재미난 깜짝쇼처럼 여긴다. 허나 구경거리에 불과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매서운 낙뢰가 빗발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레이는 딸과 함께 집안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레이의 집 유리창 하나엔 구멍이 뻥 뚫려있다. 아무리 안으로 숨어들어도 그들은 안전하지 않다.


<우주전쟁>이 대량살육적 스펙터클에 경도된 세태에 대한 스필버그의 비평적, 성찰적 작업이라는 것은 이미 지적된 바있다. 트라이포드의 출현으로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기 직전까지, 군중들은 신기한 현상을 최대한 가까이서 보고자 한다. 열려있는 자동차 문의 창을, 하나의 프레임(화면)으로 보이게 만든 쇼트나 누군가 떨어트린 캠코더에 트라이포드의 학살 풍경이 담기는 쇼트는, 그와 관련한 자명한 이미지들이다. 사람들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기현상의 구경거리에 매혹되어있고, 자동차 창문이건 캠코더건 모두 트라이포드의 레이저 광선에 의해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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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방이 끔찍한 참상으로 뒤덮힌 세상에서, 주인공 레이가 자녀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당부하는 말은, '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쳐다보지 말 것'을 주문하는 레이의 행위는 수번 반복된다. 강에서 사체들이 밀려오는 광경을 본 딸의 눈을, 레이가 자기 손으로 다급하게 가리는 제스쳐를 비롯해, 광기에 휩싸인 할란이라는 인물로 인해 안위를 위협받자, 레이가 그를 처치하고자 딸의 눈을 천으로 가리고 문까지 닫아버리는 시선의 완전한 차단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외계 생물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도 시선을 차단하는 레이의 행위가 미리부터 등장한다. 레이의 아들 로비가 티브이를 보는 장면, 로비가 보는 티브이에는 재난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그 재난 현상들이 외계 생물의 공격 전조임을 알 리 없는 레이는, 무심히 티브이를 꺼버린다. 그러곤 로비에게 캐치볼을 하자고 제안한다. 꺼진 티브이의 검은 화면에 비추는 건 레이의 모습이다. 이는 참상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재난 이미지에 둔감한 상태에 대한 스필버그의 코멘트로 보아도 흥미롭지만, 거울 이미지를 통해 외부적 재난이라는 거대 사건과 레이라는 인물 또는 그가 겪는 내부적 재난을 겹쳐놓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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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발생 전후 자녀들의 시선을 차단하는 레이의 행위는 모두 가족 간의 유대감, 가족의 보호와 같은 가치와 관련이 있다. <우주전쟁> 속 도피의 여정은, 말하자면 레이가 자녀들에게 재난의 형상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여정이다. 하지만 티브이를 끄고서 아버지와 아들이 행하는 캐치볼이 결국 두 사람의 다툼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은, 이 영화에 깔린 봉합되지 않는 어떤 어둠을 내포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 그 감정적 생채기는 레이가 강하게 던진 공이 자기 집 창문을 뚫어버리는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스필버그는 구멍 뚫려 깨진 창을,  집 '안'에서 밖을 향하는 구도의 쇼트로 포착한다. 거기서 레이는, 깨진 유리창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있다. 검은 티브이 화면에 비추던 그의 모습은 이제, 뚫린 유리창 사이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유리창 너머의 재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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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안에서 외경을 포착하는 쇼트와 유리창을 통해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인물의 모습을 담은 쇼트가 지속적으로 삽입된다. 그리고 물론, 창 밖에는 언제나 재난이 있다. 외계 생물의 공격으로 군중들은 패닉에 빠지고 그로 인해 공동체의 도덕이 무너진다는 점으로 볼 때, 이 투명한 유리창을 사이에 둔 재난의 이미지는 의미심장해진다.

지하에 묻혀있던 트라이포드가 지상으로 솟구쳐 오를 때, 갈라지는 땅의 충격이 가닿는 곳은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부서지는 건물의 유리창이다. 이 장면에서 스필버그는, 땅의 갈라짐 이상으로 창의 깨어짐을 성실하게 묘사한다. 이것은 역시 참상의 스펙터클에 사로잡힌 시선에 대한 경고적 이미지이자, 창으로 표상되는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기준을 파괴하는 이미지다.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 인간이 내외부를 바라보는 매개적 대상인 유리창은 가차없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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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물의 참혹한 학살만큼이나 소름끼치는 것이 바로, 인간들의 도덕적 붕괴와 공동체의 무질서다. <우주전쟁>에서 외계 생물의 공격 행위는 전쟁이 아니다. 일방적인 학살이다. 이 영화에 전쟁이 있다면, 그것은 혼란과 공포에 잠식된 인간의 마음 상태다. 공포로 인해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들이, 레이 가족이 탄 차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을 보면, 앞서 언급한 캐치볼 장면의 쇼트와 유사한 쇼트가 나타난다. 파손된 유리창에 난 구멍 사이로 인물을 담아내는 구도의 쇼트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의 쇼트는 극 후반부에 또 다시 등장한다.) 차를 빼앗으려는 군중의 공격으로 파손된 차의 창, 레이가 던진 야구공 때문에 파손된 집의 창. <우주전쟁>의 유리창은, 외계 생물의 직접적인 공격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의 공격에 의해서도 파괴된다.

 

Jjddii.jpg

그런 맥락에서 레이의 집, 차 창에 난 구멍과 트라이포드가 솟아오르는 땅에 난 구멍은, 전자가 가리키는 내부적 재난과 후자가 가리키는 외부적 재난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이미지 시스템이다. 또한 광기 어린 군중들을 피해 실내로 피신한 레이 가족이, 쇼윈도를 통해 보게 되는 광경은 레이가 떨어트린 총을 누군가 주워서 타인에게 발사하는 모습이다. 스필버그는 이 무질서의 아수라장을 유리창 너머로 포착하는 쇼트로 담아냄으로써, 재난의 의미를 확장 및 중첩시킨다. 재난은 밖에서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듯 하지만,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붕괴가 맞물리는 순간, 안팎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트라이포드 역시 지구 밖에서 왔지만 지구의 땅 '속'에서 등장해 공격을 개시한다.) 스필버그는 창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또 그것이 파괴되는 이미지를 통해, 다중의 재난을 담아낸다.

 

너무 많이 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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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학살이 펼쳐지는 혼돈의 난장 속에서도, 스필버그는 인물의 얼굴(눈)을 집요하게 포착하려 애쓴다. 트라이포드의 공격으로 침몰된 배에서 겨우 뭍으로 올라와 숨을 고르던 레이 가족은, 트라이포드가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목격한다. 스필버그는 레이 가족이 그 광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수평 트래킹을 통해 차례로 한 명씩 보여준다. 물론 이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상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 쇼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외계 생물의 잔혹한 학살 행위를 이미 경험할대로 경험한 그들이, 마치 그 광경을 처음 본 것 마냥 놀라고 무엇보다 그들의 놀란 얼굴을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는 이유는, 그들이 그러한 각도 및 위치에서 학살 행위를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탁 트인 언덕에서 바라보는 이 광경이 충격적인 것은, 거대한 트라이포드의 레이저 학살이 마치 인간이 작은 해충들을 살충약을 뿌려 해치우는 모습처럼 무심하고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탓이다. 레이 가족은 다각도로, 다량으로, 다채로운 형상으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재난의 이미지를 목격한다. 초반부 먹구름 낀 하늘을 장난스럽게 쳐다보던 레이의 얼굴과 이후 재난으로 무력하게 바스러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심각한 레이의 얼굴, 그 간극에 이 영화에 담긴 참혹함의 핵심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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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가 재난 이미지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그 자신은 가장 먼저 보아야 하고 가장 많이 보아야 한다. 그는 대부분, 자녀들보다 앞서서 재난 상황을 목격한다. 트라이포드의 방어막이 제거된 것을, 가장 먼저 보고 군인들에게 공격을 요청하는 것 또한 레이다. 레이는 누구보다 먼저 보고 많이 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때때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사방천지가 지옥인 이상, 레이의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재난의 이미지에 노출된다. 특히 재난 상황에 있어 가장 취약한 존재인 어린 딸 레이첼은 자주, 재난의 형상을 먼저 목격하곤 한다. 강에서 사체가 밀려올 때 그 광경을 먼저 보는 것은 레이첼이며, 선창에서 배를 타려다 숲에서 다가오는 트라이포드로 인해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먼저 보는 것 역시 레이첼이다.

 

영화의 초반부, 레이의 전처가 레이 집 냉장고를 뒤지며 레이에게 핀잔을 주는 장면엔, 레이첼이 놀란 표정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는 쇼트가 있다. 이것은 잉여의 쇼트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이 쇼트가 없어도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러한 반응 쇼트로 상황에 방점을 찍는다. 중요한 것은, 레이첼의 얼굴이고 눈이다.(레이첼 역으로 다코타 패닝이 캐스팅된 연유에는 패닝의 외모에서 특징적인, 크고 맑은 눈도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 재난을 맞이 하기 전에도 레이첼은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의 불화는 재난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레이첼을, 레이첼의 '눈'을 보호하고자 하는 레이의 고행은, 그 자신도 모르는 혹은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는 자기반성의 과정이다. 너무 많이 본 남자는 더 많이 보는 행위로써 스스로를 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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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카타르시스가 절제된 엔딩, 이는 원작 소설에 충실한 탓이기도 하지만, 원작의 엔딩을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연출자의 선택이고 의지다. 외계 생물이 지구의 인류에게 행사한 패악질에 비해, 그들이 받는 징벌의 강도는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반격의 쾌감이 없진 않으나 그 분량과 강도는 최소화되어있다. 그러나, 장렬한 카타르시스의 극대화를 포기한 이 엔딩을 통해,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 거악으로부터의 인간 승리의 서사가 아님은 더욱 명확해진다. 

스필버그의 카메라가 담아낸 것은, 인류의 승리가 아니라 끔찍한 부정의 이미지를 너무 많이 본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물론 지구를 정복하고자 한 외계 생물은 멸하였고, 레이와 그의 가족은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 갈등이 잦던 레이와 아들은 살아서 뜨겁게 포옹한다. 그러면 이제,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진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레이는, 이미 너무 많이 보았다. 전쟁과 지옥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표면적인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무엇도 치유되지 않은 것 같고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듯한 허탈감. 결국 스필버그의 이 암울한 걸작은, 살아남아서 아들을 바라보는 톰 크루즈의 벅찬 눈빛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톰 크루즈의 절망찬 눈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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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작성자
케이시존스
열번이나 보셨군요! 반복해서 봐도 압도적인 영화죠👍
23:41
22.02.16.
ns 작성자
케이시존스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볼 기회 있었으면 좋겠어요:)
00:52
22.02.17.
ns 작성자
Cinephilian
장황한 글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3:42
22.02.16.
3등
어렸을 때 TV로 자주 봤었는데 긴장 많이 하면서 본 거 같아요 ㅎㅎ
23:00
22.02.16.
ns 작성자
반지의제왕
쫄깃한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는 작품입니다ㅎㅎ
23:44
22.02.16.
profile image
마무리가 아무래도 힘이 빠지긴한데, 그래도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어렸을 적 외계 공포 그 자체~
23:30
22.02.16.
ns 작성자
영화와나쵸
이 영화의 공포는 정말 압도적이죠^^ 스필버그의 대단한 서스펜스 연출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23:56
22.02.16.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면서
트라이포드의 작열하는 빔을 보면서 공포와 전율이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아직 청소년이었는데, 질량이 담긴듯한 빔에 타격받아 붕괴하는 고가도로의 이미지는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는군요.

빔을 맞아 '증발'한 사람이었던 '백색먼지를 뒤집어쓰고 살아남은 톰 크루즈의 모습은 9.11 참사의 생존자들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23:33
22.02.16.
ns 작성자
TLGD

톰 크루즈가 먼지 쓴 이미지는 명백히 그 이미지를 염두한 것 같아요. 말씀처럼 트라이포드의 그 광선, 광선에 맞아 인간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모습들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00:02
22.02.17.

한동안 잊고 있던 작품을 들고 오셨네요.
<우주전쟁>을 처음 봤을 때는 많이 어릴 때라서 그 안에 있는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가끔 TV에서 방영할 때 보니 그 당시와는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정체 모를 존재에 대한 공포, 그 상황 속에 드러나는 야만성과 이기심, 그럼에도 어떻게 되든 어린 자식들을 지키겠다는 마음까지. 솔직히 막판에 성급히 진행되는 듯한 전개는 여전히 허무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게 만약에 의도된 거라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유리창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장면을 영리하게 재구성하고 재활용할 줄 아는 연출자라는 게 실감나요. <쉰들러 리스트>에서는 유대인들이 나치 군인들과 한 프레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조성되는데 이를 반복해 보여줘서 암울한 시기를 표현했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초반과 후반에 톰 행크스가 전투 도중 셸 쇼크를 겪는 것을 보여주면서 관객들까지 전쟁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데가 있었으니까요. <우주전쟁>에서는 다코타 패닝의 시선을 통해 미쳐가는 세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맞다면 다행이에요.^^

긴 사족인데, 예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연출을 시작해 지금까지 활동하는 감독들 중에 마틴 스코세이지가 관객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치부를 보여주거나 주요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게 해 고찰하게 만든다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더라도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람에겐 무언가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2005년에 스필버그가 내놓은 <우주전쟁>과 <뮌헨>만큼은 확실히 예외였어요. 이 두 작품은 2000년대의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 중에서 가장 어두웠고, 그래서 이전의 스필버그의 작품과는 이질적이었거든요. 아마 9.11 테러를 경험하고 나서 스필버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증오와 살육'에 대해서 다루고 싶어서 이 작품들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래서 (<우주전쟁>도 괜찮았지만) <뮌헨>을 특별한 작품으로 생각하게 되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3:46
22.02.16.
ns 작성자
bonvoyage
이 영화를 보면 스필버그가 작정하고 지옥도를 펼쳐보이겠다는 결기가 느껴집니다:) 결기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마치 큰 힘을 들이지 않은 것처럼 유려하게 서스펜스를 구축하고 풀어내는 걸 보면서 과연 대가구나 싶더라고요. 말씀처럼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순수한 어둠을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스필버그에겐 스코세이지와 달리 자신은 어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영화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컴플렉스 내지 부채의식(?)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 적 있네요 ㅎㅎ) <우주전쟁>의 끝에 가서 사건이 일단락 되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런 서사적 상황을 다루면서도 최대한 그 이완 혹은 승리(라고 하기도 애매한)의 카타르시스를 배제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회복되기 힘든 상처에 관한 영화로도 다가옵니다. <뮌헨>을 말씀해주셔서 그 작품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00:47
22.02.17.
profile image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네요.
00:07
22.02.17.
ns 작성자
BeamKnight
꽤나 장문의 글인데 귀한 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공감해주시니 기쁩니다!
00:48
22.02.17.
ns 작성자
안혐오스런마츠코
장황한 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14:26
22.02.17.
profile image
원작소설도 그렇지만
뭔가 지구 침략 준비 제대로 안된 외계인들?
요런 느낌이었죠 ㅎㅎㅎ

어쩌면 영화 끝난 후에
외계인들이 지구 환경에 제대로 대비해서 다시 침략해올지도 ㅋㅋ

영화는 트라우마 생길정도로 고어했어요
완전 무서웠습니다 ㄷㄷㄷ
08:42
22.02.17.
ns 작성자
sayhoya
복병이 복병을 만난 형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가 절망 그 자체를 담아낸 듯이 무시무시하죠 ㅎㅎ
14:30
22.02.17.
스포 : "우주전쟁에 우주는 안 나옵니다~~" ㅋㅋ
10:01
22.02.17.
ns 작성자
nonamed
ㅋㅋ우주전쟁이라는 제목은 여러모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제목인 것 같아요:)
14:32
22.02.17.
profile image
어릴 때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인데 엔딩때문인지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라구요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5:37
22.02.17.
ns 작성자
대도시
개봉 당시에도 엔딩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ㅎㅎ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1:20
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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