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속 숨겨진 암호 해독
일본 '겐다이비즈니스' 기사 번역입니다.
https://gendai.ismedia.jp/articles/-/92452
영화 결말까지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주의하시고요. 글쓴이의 주관이 가득한, 독특한 해석으로 흥미롭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노미네이트!
<드라이브 마이 카>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한다.
Q: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각본도 안 보시나요?
무라카미: 안 봐요. 저는 일단 (영화화) 권리를 넘겨주면, 다 내버려 두는 방침이라서요.
Q: 간섭 안 하시나요?
무라카미: 간섭 안 해요.
잡지 ‘브루투스(2021년 11월 1일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관한 소감 같은 걸 말했다.
무라카미의 작품 중 몇 편은 영상화되었는데, 초기 장편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선 원래 각본을 무라카미 본인이 잔뜩 수정해서, 최종고가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출처: NHK-BS <어나더스토리>)
한편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무라카미가 영화 제작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단편은 영상작가가 자유롭게 만들고 바꿀 여지가 커서 “‘나머진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느낌”으로 내버려 두었다.
중년 배우가 안고 있는 비애
영화는 대부분 원작 소설의 설정과 스토리에 따라 진행되지만, 원작에는 딱히 결말 같은 것이 쓰여 있지 않기 때문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주연인 중년 배우 가후쿠 유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비애와 체호프의 명작 <바냐 아저씨> 속 주인공의 비애를 겹치면서 엔딩으로 이끈다.
지금의 히로시마를 무대로 한국인, 중국인, 청각장애인 배우들이 연기하는 <바냐 아저씨>가 그토록 감동적인 엔딩으로 결실을 맺는 것은, 체호프의 원작이 가진 위대한 힘과, 그것을 현대에 되살린 하마구치 감독의 수완 덕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의도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 걸까.
드라이버로 고용된 24세 여성, 와타리 미사키
이 작품이 ‘문예춘추’ 2013년 12월 호에 발표되었을 때, 와타리 미사키의 출신지는 홋카이도의 나카톤베츠초(中頓別町)라고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소설을 읽은 나카톤베츠초 마을 의회 의원이 “(소설 속 언급과 다르게) 나카톤베츠 사람들은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는다.”며 항의했고, 그에 따라 ‘나카톤베츠쵸’는 단행본이 나올 때 ‘가미주니타키초(上十二滝町)’로 바뀌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러한 지명을 절대 마음 내키는 대로 설정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주도면밀한 준비와 함의가 담겨 있다.
나카톤베츠라는 마을이 어디인지 지도에서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홋카이도의 북단 왓카나이에서 약간 남쪽인 시리코마다케, 핀네시리다케를 포함한 일대, 그곳이 ‘나카톤베츠초’다. 즉 일본에서 최북단에 있는 산악 지역인 셈이다. 그 마을에서 온 24세 여성 ‘와타리 미사키(渡利みさき)’
‘곶(串 바다로 돌출된 육지 끝부분)을 ’너머‘ 그 앞에 있는 곳은 사할린, 러시아 땅이다.
(※곶은 일본어로 ‘미사키’, 너머의 일본어는 ‘와타리’임.)
‘양을 쫓는 모험’과 같은 무대 설정.
앞서 언급했듯이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중요한 모티브로 명시돼 있는데, 미사키라는 이름 자체가 ‘러시아’를 가리키는 암호로 되어 있다.
미사키의 나이는 24세인데, 주인공 가후쿠에게는 생후 3일 만에 숨진 ‘이름도 없는’ 아이가 있었다. 살아있었다면 딱 24살일 텐데, 소설에선 미사키가 그 아이의 환생임을 암시하고 있다.
아내는 이후 ‘더 이상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라고 했고, 가후쿠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리고 아내는 ‘자궁암으로’ 죽었다. 영화에선 지주막하 출혈로 인한 돌연사라고 나오지만, 소설에선 ‘자궁암’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식을 만드는 걸 거부한 아내는, 바로 그 아이를 만드는 장기에 생긴 병에 의해 죽는다. 그것은 아이라는 ‘생’에 의해 모종의 복수를 당했음을 암시한다.
아내가 가후쿠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딴 남자와 동침한 것도 아이를 잃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마을 의회의 항의를 받은 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을 이름을 ‘가미주니타키초’로 바꾼다. 오랫동안 무라카미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바로 생각이 날 <양을 쫓는 모험>의 무대가 되었던 ‘주니타키초’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주인공이 양(羊)과 만나고, 옛 친구 쥐와 재회한 뒤, 우익 진영 거물의 검은 옷 비서를 시한폭탄으로 매장시키는 인상적인 무대=주니타키초가 홋카이도의 어느 지역으로 추정되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아사히카와 변두리에서 지선을 타고, 시오카리 고개를 넘어 약 3시간을 가면 나오는 역”이라는 극 중 설명에서, 지선은 ‘비코선’이고 3시간 가면 나오는 역은 ‘비후카역’으로 판명된다. 비후카초에는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 문고가 있고, 매년 여러 하루키팬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이것을 소설의 세계로 바꾸면 주니타키초(비후카초)의 북쪽(위(上)쪽)에 있는 곳이 가미주니타키초(나카톤베츠초)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드라이브 마이 카>에 주의 깊게 심어놓은 <양을 쫓는 모험>과의 관련성은, 나카톤베츠초 마을 의원의 항의로 인해, 의도치 않게 더욱 알기 쉽게 바뀌었다.
주인공이 가진 불안의 핵심은
와타리 미사키에겐 또 하나의 찾기 쉬운 암호가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2013년인데, 거기서 미사키의 출생 연도를 역산하면 1989년이 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국가들에서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된, ‘소련 붕괴’의 단초가 된 해다.
그로 인해 일본에서 가장 러시아와 가까운 마을에서 온 24살 미사키의 존재 그 자체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서방 진영의 승리’를 연상시키는 트리거가 된다.
미사키에게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는 주인공은, 소련이라는 ‘주적’을 잃고 표류하는 서방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 그 자체를 상징한다.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그밖에도 명작 ‘양을 쫓는 모험’과 공통되는 설정이 있다.
그것은 서로 깊은 애정으로 맺어진 부부이면서도, 아내가 남몰래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남편(주인공)은 그 점을 도무지 이해 못 한다. 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남성적인 매력도 갖고 있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해소할 수 없는 상실감을 계속 안고 사는 남자로 설정돼 있다. 그 상실감의 열쇠는 바람기의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 아내가 쥐고 있다.
거물 우익에게 선고하다.
‘양을 쫓는 모험’은 만주-몽고 국경에서 양(羊)박사가 가져온, 사악한 의지의 결정=뇌에 있는 혈혹을 어떻게 없애느냐를 둘러싸고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1972년 11월 25일 오후, 즉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한 날에 시작되어, 2.26사건이 있던 1936년 2월에 양박사가 만주에서 귀국했다고 설명한다. 1945년 8월 9일 공산주의 소련이 만주와 사할린 등에 기습 침공하여 정체돼 있던 만주국과 일본제국은 와해됐지만, 이후에도 ‘혈혹’은 살아남았다.
‘양을 쫓는 모험’이 간행된 1978년 당시 록히드 사건의 용의자였던 고다마 요시오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있었다. 즉 ‘뇌 속 혈혹’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1973년의 핀볼’에서 1960년대의 소란스러움을 끝맺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록히드 사건과 그 재판을 곁눈질로 보면서, 1970년대 일본 사회의 저류에 달라붙은 ‘우익적인 것’에서 새로운 테마를 발견. 누가, 어떻게 그것을 파괴할지를 궁리해왔다.
거기서 발탁된 주인공이, 29세의, 작은 광고회사에 다니는 남자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정부나 대기업, 거대 조직과는 가장 동떨어진 존재로 설정된 것이다. 게다가 (이유도 모르고) 아내에게 배신당함으로써, 더욱더 붕 뜬 느낌의 주인공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꺼림칙한 우익 세력과 대치된 존재로서, 그처럼 가장 미덥지 못한 개인을 규정했다. 그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그 부분에 있다.
한편 그로부터 35년 뒤에 쓰인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주인공은 50대 중반을 넘겼고, 역시나 강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거기에 꺼림칙한 우익이 종언한 땅 가미주니타키초에서 온 여성이 나타나 주인공에게 위안을 준다.
무라카미 작품의 주인공이 어째서 늘 그러한 불안정 속에 놓이는지는, 이 작품에도 확실한 암호로 제시돼 있다.
가후쿠가 운전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어느 새부터 눈병을 앓고, ‘오른쪽 구석 쪽’의 ‘시야에 블라인드 스폿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후쿠는 애차인 노란색 사브 900 컨버터블을 몰 때, 조수석(우측)에 아내를 앉혔다. 왼쪽에 있는 핸들을 잡았을 때 오른쪽 시야 구석에 ‘블라인드 스폿=사각(死角)’이 있다는 것은, 오른쪽에 앉은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소설에서 가후쿠가 반드시 미사키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는 것은, ‘왼쪽은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설 후반부에 가후쿠는 “내겐 치명적인 맹점 같은 게 있는 건지도 몰라.”라고 중얼거린다.
(※참고로 일본 차는 핸들 위치가 보통 오른쪽에 있음, 스웨덴 차인 사브는 왼쪽)
“여자에겐 그런 면이 있어요.”
성격 면에서도 속궁합에서도 아내와 깊게 맺어져 있다고 믿은 가후쿠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맹점’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황한다. 그것은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중년 남성의 비애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미사키는,
“여자에겐 그런 면이 있어요.”
“그건 병 같은 거예요.”
...라고 가후쿠에게 말한다. 그로 인해 가후쿠의 인식이 새롭게 바뀌었는지 어떤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가후쿠는 ‘좀 잘게.’라면서 눈을 감고, 소설은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다.
가후쿠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 속 ‘블라인드 스폿’(맹점)이 사라졌는지 어떤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가후쿠의 애차가 노란색 사브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영화에선 빨간색)
사브는 스웨덴의 국민차로 불리고, 노란색은 스웨덴을 상징하는 색이다. 스웨덴은 지정학적으로 언제나 강 건너에 있는 러시아의 침공에 시달려 왔고, 러시아/소련과 어떻게 대치할 것인지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전쟁’에서는 소련의 위협에 겁을 먹고, 어쩔 수 없이 중립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홋카이도와 스웨덴은 소련과 동서 끝자락과 접하고, 그 위협을 받으면서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두려워해 왔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런 소련 제국이 사실상 붕괴된 1989년에 태어난 여성이 바로 미사키다.
미사키는 정처 없이 떠도는 주인공 가후쿠와 스웨덴 차 사브의 핸들을 쥐고서 ‘부드럽고, 덜컹거림이 전혀 없는’ 운전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것이 불안정한 중년 남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렇다면 차는 어디로 향할까?
영화에선 히로시마 연극제에 연출가로서 참여한 주인공이 결심을 하고, 미사키의 고향인 홋카이도 북단의 마을 가미주니타키초로 계속 차를 몰게 한 뒤 그곳에서 죽은 미사키의 어머니에게 꽃을 바친다.
미사키는 가후쿠의 딸이 환생한 것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죽은 미사키의 어머니는 가후쿠의 아내와 겹쳐진다. 그렇게 아내를 조문함으로써 가후쿠는 미사키를 끌어안고, 배우로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보람을 얻게 된다는, 휴머니스틱한 엔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에선 다르다.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제목은, 두말할 것도 없이 1965년 발표된 비틀즈의 앨범 ‘러버 소울’의 첫 번째 수록곡에서 따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틀즈 앨범 중 ‘러버 소울’을 가장 좋아한다고 공언하면서, 그 앨범에 대한 강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러버 소울’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화려하게 오프닝을 장식한 뒤, 존 레논이 부르는 내성적인 곡 ‘노르웨이의 숲(※혹은 노르웨이산 가구)’으로 이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소설을 썼을 때, 등장할 차로 이미지화된 건 스웨덴 차 사브였다. 그것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이웃 나라인 노르웨이일 수밖에 없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다음 곡(그리고 무라카미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장편인) ‘노르웨이의 숲’을 향해 달려간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폴 매카트니가 작곡했는데, 존 레논과 둘이서 엄청 고생하며 가사를 썼다고 나중에 매카트니가 회고했다.
“당신은 내 차를 운전할 수 있어?”
“그래, 난 스타가 될 거야.”
“내 차를 운전해도 돼.”
“그럼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Beep beep'm beep beep yeah
이 가사는 비틀즈의 곡으로는 아마도 최초로 ‘여성의 시선’에서 쓰인 것으로 일컬어진다. 주인공은 무비 스타를 꿈꾸는 여성이고, 여성이 남성에게 “내 차를 운전해도 돼.”라며 꼬드긴다.
‘비 갠 밤하늘에’와 비틀즈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여기서 ‘차를 운전한다’는 건 성적인 의미로 쓰인다. 여성이 남성을 ‘태움’으로써 ‘스타가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밤에’, ‘좋은 소리를 내며’, ‘달려보자’라고 노래하는 RC석세션(※일본 그룹)의 노래 ‘비 갠 밤하늘에(雨あがりの夜空に)는 가사도, 곡조도, 비틀즈의 이 곡을 바탕으로 했음이 분명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이야기로 돌아가면, 특징적인 것은 ‘나를 운전해’, ‘내 차에 타’라며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다.
존인지, 폴인지,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실제로 그런 여자를 만나 휘둘렸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가사로 만들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에게 있어서, 때로는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인식은 신선하다. 혹은 여자에게 그런 면모가 있다는 깨달음으로 바꿔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가후쿠의 아내가 결혼 당시, ‘준 주역’급 배우여서, 단역이었던 가후쿠보다 훨씬 잘 나갔다. 즉, 곧 ‘은막의 스타’가 될 예정이었다.
가후쿠와의 부부 관계는 안정돼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반복적으로 다른 남자와 자고 있었다.
그 사실이 주인공 가후쿠를 괴롭히고, 그 소설을 ‘드라이브’시키는 엔진 역할을 한다.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받치는 또 다른 기둥이 거기에 있다.
왜 여자는 그런 시시한 남자와 자는 걸까? 자고 싶어 하는 건가? 남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 하지만 그것은 “병과 같은 것”이고, “생각해봤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미사키)이다.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기에 소설의 출발점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냐 아저씨>에서 그려진, 타고난 재능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남자가 중년기를 맞고, 노년을 눈앞에 두고서 “대체 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라고 망연자실하는 기분.
그리고 여성의 성(性 혹은 聖)에 대한 영원한 수수께끼. 아마도 그 두 접점으로 이 소설이 구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와 그 반조로서 서방 자본주의 세력의 ‘허약화’가 있다. <바냐 아저씨>는 19세기 말 몰락해 가는 러시아의 지주 계급 남자의 비애를 그리고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눈에는 그것이 지금의 일본 남성과 겹쳐 보일 것이다.
그 단편이 수록된 책의 제목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지극히 암시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를 “오다와라에 있는 영화관에서 봤다. 재밌었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내가 쓴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영화에서 덧붙인 것인지 그 경계선을 전혀 모르겠어요. 그게 재밌었죠.” 영화가, 자신이 설정한 작품 세계의 토양에서 가지를 뻗어나가서, 마치 전혀 별개의 휴먼 스토리로 성립되었다. 그 점을 ‘재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원작에는 더 많은 암호가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더 많은 생각을 그 작품에 담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드라이브 마이 카’임을 상기하길 바란다.
‘노르웨이의 숲’보다 먼저 나오는 곡의 제목을 따와서, ‘양을 쫓는 모험’의 설정, 무대와 공통되는 이 소설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있어선 특별한 것 아닐 수가 없다.
글: 阿佐川 嗣人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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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고맙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그닥 즐겨하지 않는 이유가 세련된 문장과 지적인 스타일 대비, 모호함( 치열함이 빠진..)인데 드마카는 2회차만 했을뿐인데도 얼마나 성실하게 짜 내려간 빈틈없는 구조의 영화인지 뻐근하게 느껴질만큼 진정성과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져 깊이 감동받고 있는 중에 접하는 이 글이 무척 신선합니다. 하루키 작품의 해석에서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도 있구요. 번역 감사합니다!
이렇게 읽고 보니 영화가 더 새롭네요ㅎ
특히 지역 이름이 상징하는 거나 여주인공 이름이 의미하는 거, 신기해요
영화랑 연결성도 있어보이고요
저도 이 글 옮기면서 여주인공 이름 다시 보고 화들짝 놀랐어요.^^
번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