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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sleeplessinseattle sleeplessinse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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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다뤘기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月老, Till We Mee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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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그들만의 장르적 특색이 묻어나는 나라들이 있다. 자동차가 폭발하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두되는 미국의 영화, 가본 적도 심지어는 그 시간을 살아본 적도 없는 이에게 마저 향수를 느끼게 하는 홍콩의 영화, 등골이 서린 것을 넘어서 보고 나면 며칠을 긴장하게 만드는 태국의 영화, 보고 나면 한 번쯤 눈물을 흘리게 되는 한국의 영화. 대만의 영화 역시 대두되는 장르적 특색이 있다. 그저 추억으로 남을 것만 같은 풋풋하고 아련한 청춘의 사랑, 바로 그것이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이러한 장르적 특색이 잘 묻어나면서도, 사후세계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을 그 특색을 다시 한번 색다르게 표현한 새로운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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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죽음과 윤회로 엮인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린 시절 첫눈에 반해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 평생 곁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던 남자를 잃은 여자, 예상치 못한 죽음을 겪고서 복수를 다짐하는 여자, 500년이라는 시간을 고통 속에서 지내다 폭발해버린 남자까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사랑과 그 주변에서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연들의 이야기들이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인물들 사이의 연은 단순히 한 번의 삶 속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윤회의 고리 안에서 반복되는 환생을 거치며 살아온 여러 번의 삶 속에서 붉은 실로 엮인 사랑과 마음을 가득 채운 원한이 그들을 언젠가의 삶에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후세계를 다룬다는 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사후세계를 통해, 관객은 대만의 저승관을 엿볼 수 있다. 언젠가는 닿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존재하는 극락과 전생에 쌓은 덕을 통해 여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환생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의 나라에는 꽤나 친숙한 관점이다. 월노의 붉은 실은 그중에서도 색다르게 느껴지는 소재이자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붉은 실로 혼인의 연을 맺어주는 존재인 월하노인은 실제로 대만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을 정도로 친숙한 존재라고 한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과 연결하여 만들어진 영화 속 월노의 설정은 월하노인이라는 존재가 친숙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소 생소한 사람들에게마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두 남녀의 사랑은 극의 후반으로 가며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극의 초반, 단순히 첫눈에 반해 언제나 곁에서 함께 한 두 사람의 사랑은 남자의 죽음 그리고 월노로서의 새로운 삶이 도래하며 새로운 면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의 연과 서서히 연결되며, 그 끝에 다다라서는 단순히 첫눈에 반한 것이 아닌, 다시 태어나서도 전생의 운명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는 두 사람이 보내온 시간을 따라가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이 진행되며 쌓아가는 감정을 한 번에 터뜨리게 만든다.
 월노가 된 남자에게 호감을 갖지만, 이승에서 사랑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그로 인해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여자의 사랑 역시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녀의 사랑은 이승의 여자에게 수많은 월노들이 만 개가 넘는 붉은 실을 엮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게 된 두 사람의 재회를 이루고 그 이별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며, 결말에 다다라서는 다음 생에 이르러 그 결실을 맺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감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마음을 쓰고 공감하며, 끝에 가서는 지긋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500년이라는 세월을 거친 복수를 하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 역시 영화의 축을 이룬다. 죽음이라는 끝과 반복되는 환생의 시스템을 통해서도 가라앉지 않던 그의 분노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작되는 복수는 그저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닌, 사랑하는 이들의 배신에 대한 원망이 그 시작이기에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전생의 연을 통해 원망을 누그러뜨리고 극락으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잔인한 복수의 장면들을 목도한 관객들마저 다행스러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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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봐서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이 전생의 연으로 결국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점차적으로 인물들의 관계 뒤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밝혀지며, 지난 삶의 운명은 붉은 실마저 필요하지 않을 확신을 갖게 하는 이번 삶의 사랑으로, 이승에 홀로 남은 사랑하는 이를 위협하는 악귀는 먼 과거에 자신을 지켜준 생명의 은인으로, 이승의 인연들을 함께 엮어주며 가까워진 파트너는 다음 삶에 붉은 실로 엮인 인연으로 이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안도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이야기의 구성과 결말의 짜임새는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리고 원작이 되는 그 소설을 집필한 작가가 바로 이 영화의 감독, 구파도인 것이다. 결국,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서 자신이 창조한 이야기를 두 가지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대중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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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그 자체 역시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감독과 함께 한 전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그 특유의 장난끼 넘치는 모습이 매력적인 가진동, 우리나라에서 흥행을 거둔 ‘나의 소녀시대’ 속 인물과는 다른 차분함을 보여준 송운화,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인물을 부담스럽지 않게 그려낸 왕정까지,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이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특히 비슷한 느낌의 역할을 맡은 가진동은 감독과의 호흡을 통해 그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며, 과장된 모습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한순간에 그리고 부드럽게 변화하는 왕정의 연기는 더욱 눈에 힘을 주고 스크린에 시선을 보내게 만든다. 너무도 귀여운 아역들의 연기와 어느덧 익숙해져 등장만으로도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채창헌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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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레 떠올리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바로 두 편 모두 천만 관객을 넘기는 대흥행을 기록한 ‘신과 함께’이다. 사후세계와 저승관을 다루며 인물들 간의 인연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에서 굉장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여름에 처음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된 영화제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신과 함께’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한국의 제작사와 협력하여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더욱 그러한 느낌이 짙게 느껴질 수 있는 듯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영화와 그 기술이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이 모여 대만 영화 특유의 장르적 특색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더욱 다채롭고 의미 있는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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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등학생의 상상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그의 연출은 다소 호불호가 갈릴 요소이지만, 여러 작품을 거쳐 확립된 그만의 특색이라고도 여겨진다.
 영화제의 인터뷰에서 감독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직접 질문을 던지고 듣게 된 그 답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소설과 영화를 오가며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를 구체화시키는 그에게 어디서 영감을 받으며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1초라도 네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난 그것으로 충분해.”, “나도 널 좋아하던 그때의 내가 좋아.”와 같은 대사들을 만드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 질문은 제가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합니다만, 그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대사를 적느냐고 묻는 것은 잘생긴 사람에게 어떻게 잘생길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어이가 없으면서도 단번에 이해가 되는 답이었고, 그의 재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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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부분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러한 면들을 모두 상쇄할 만큼 너무나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게 될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감동을 느끼고, 붉은 실로 이어진 자신만의 인연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p.s. 더불어 친구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나눔해주신 '반야마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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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꽤 스케일이 크고, 시각효과도 많이 들어간 모양이네요.

13:15
22.02.08.
profile image
golgo
네! 보다보면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아직 갈 길이 더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시도 측면에서는 확실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18:28
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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