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칸토: 마법의 세계] 간략후기
디즈니의 새로운 뮤지컬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이하 <엔칸토>)를 보았습니다.
<모아나>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바 있는 작곡가 겸 배우 린-마누엘 미란다가 음악은 물론 스토리에도 참여한 이 영화는
마치 그의 출세작인 <인 더 하이츠>의 애니메이션 버전같이, 히스패닉 가족과 공동체의 화합과 연대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도 심심찮게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의 존재감이 특히 두드러지는 듯한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이는 셰계관과 스토리를 펼쳐놓지만 풍성하고 다양한 음악에 기반한 캐릭터 묘사를 통해
가족과 그 이상의 공동체 안에서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속내를 섬세하게 짚고 활기차게 위로합니다.
숲속 마을 공동체인 '엔칸토'를 이끄는 '마드리갈 패밀리'에게는 50여년 간 특별한 기적이 함께 해 왔습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살아 움직이는 가족의 집 '카시타'의 보호를 받는 가운데 특정 나이가 되면 남다른 힘이나 솜씨 같은
고유의 기적, 즉 일종의 마법 능력을 부여 받아 왔고, 그 능력은 치유나 건설,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해왔죠.
그 기적은 대를 이어 가장 마지막 세대까지 전해내려 왔지만, 단 한 사람 미라벨(스테파니 비트리즈)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녀에게만 유일하게 기적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집안에선 줄곧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기적을 부여받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과 마을을 꾸려나갈 때, 미라벨은 한쪽에 조용히 물러나 있기를 부탁받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것과 만족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 있던 미라벨은 어느날 심상치 않은 징조를 목격합니다.
또 한번 가족의 큰 행사가 있는 날 집에 금이 가는 등 꺼림직한 현상들을 보게 된 것이죠.
'혼자 능력이 없는 미라벨의 심술' 정도로 치부될 뻔 했지만 이내 가족 구성원들의 능력에도 균열이 생기게 되고,
기적 능력의 영향을 받을 일이 없는 미라벨은 어쩌면 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희망이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엔칸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무엇보다도 히스패닉계 문화의 흥과 열정이 듬뿍 담긴 듯한 역동적인 연출입니다.
색이란 색은 있는대로 가져와 쓴 듯한 색채 감각은 마드리갈 패밀리와 그들이 이끄는 마을의 생명력을 형상화하고,
뮤지컬 연출은 전형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틀을 벗어나 장르를 넘나들며 매 시퀀스에 정열을 있는 힘껏 불어넣습니다.
남미의 리듬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오프닝 곡부터 몰입도가 상당하고, 랩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지점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공간의 제약과 현실성을 떠나 안무와 공간 연출을 철저히 뮤지컬 무대처럼 구사해, 마치 쇼를 보듯 화면에 빠져들고 몸을 들썩이게 됩니다.
다만 어떤 뮤지컬들은 멜로디나 가사, 리듬이 귓가와 입가에 맴돌며 자꾸 생각나게 하는 중독성을 자랑하는 데 반해,
<엔칸토>의 음악들은 극중 퍼포먼스와 어우러질 때 최상의 흥을 이끌어내고 그 이후에까지 여운을 남기는 중독성을 자랑하진 않습니다.
영화로 볼 때에 비해 음원으로 들을 때의 감흥은 꽤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넘버들은 '퍼포먼스형 음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달리 얘기하면 넘버가 나올 때의 장면 연출이 음악의 리듬까지 달리 느껴지게 할 만큼 정교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엔칸토>의 이야기 규모는 생각보다 상당히 소박한 편입니다. 역사와 현재, 위기와 극복 과정이 가족 단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시퀀스 연출에 공을 들이다 보니 이야기의 규모를 굳이 키우지 않고 안전한 선에서 매듭 짓는 걸 택했는지도 모르곘습니다.
이렇다 보니 더 큰 모험을 기대한 관객들은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함의는 풍부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린-마누엘 미란다도 속할 히스패닉계 중심의 이민자들이 지나오고 처해 있는 현실의 반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극중에서 서술되는 마드리갈 패밀리의 역사와 이를 거쳐 이른 현재, 특히 모계 사회를 중심으로 어렵게 거쳐 온 정착의 역사 끝에
기적의 힘을 빌어 공동체를 지켜가려는 가족의 모습은,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단단한 유대와 절박한 마음을 투영한 듯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굳이 창작자와 캐릭터의 성격을 바탕으로 이런 지역적인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능력주의가 만연한 공동체에서 무시되는 '평범성'의 미덕에 대한,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책임감과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랄까요.
특히 영화 속 마드리갈 패밀리와 그들이 일군 엔칸토와 같이, 난관을 뚫고 터전을 이룬 사회에서 능력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됩니다.
단시간에 번영과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인데, 이는 사회는 물론 더욱 개인적인 단위인 가족에게도 적용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능력을 인정해주는 걸 넘어 능력만을 좇는 '능력주의'가 만연할 때, 평범성은 필요 없는 덕목으로서 무시되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능력을 지닌 이들에게 이러한 '능력주의'는 완벽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 어린 책임감을 지우게 될 것입니다.
영화는 '특출난 능력'이 '마땅한 역할' 취급을 받게 될 때, 그 능력의 마법은 오래 가지 않아 소멸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능력 있는 이들의 불빛은 일찍 꺼뜨리고, 평범한 이들에게는 애초에 불을 붙이지 않아 가치가 빛바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죠.
영화는 우리가 속한 가족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능력 있는 몇몇이 당연히 주어진 역할을 오롯이 수행함으로써 굴러가는 곳이 아니라,
평범과 비범을 떠나 모두가 가능한 역할을 수행하고 서로를 살피며 함께 이루어 나감으로써 점점 더 나아지는 곳이란 메시지를 전합니다.
홀로 지고 가지 않고 함께 들고 갈 때 기적의 촛불은, 마법의 생명력은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꺼지지 않고 활기차게 타오를 거라고 말이죠.
굳이 외부의 거대한 장애물이 아니더라도, 우리 안의 굳은 통념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굳이 가족 단위를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개척과 진보'의 모험보다 '극복과 성찰'의 모험에 가까운 이 영화는 짜릿한 박진감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주인공인 미라벨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이해되는 심정들을 음악으로 섬세하게 들여다 보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들 중 누구라도 느껴봤을 마음과 대면하며 산뜻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추천인 1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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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언제나 이런 심도있는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쥔공의 평범함의 매력과 소외감, 루이사언니의 능력주의에 대한 부담감, 이사벨라언니의 완벽주의의 틀이 주제면에서 참 좋았어요.
각 세자매 노래의 장면연출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희안하게 틱틱틱과 부르노노노, 마드리갈~ 소절을 빼곤 곡이 기억에 안남아서 아쉬웠구요.
근데......... 막판에 문고리를 여는순간?!!
하아.... 역시 이런 디즈니....!!! 싶더라구요. (급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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