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스포] 넷플릭스 '지옥' 시즌1 간단 리뷰
1. 미디어는 힘이 세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괴벨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선전과 선동의 힘은 나치시대 이전과 이후, 유럽을 벗어나 한국에서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당장 몇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늘 그래왔지만) 사상 최대의 여론전이 될 전망이다. 누가 더 대중을 홀리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내가 수습기자였던 시절, '기자윤리'라는 것에 대해 배웠다. 내가 쓰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의 파급력을 깨닫고 항상 기사를 쓸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부조리에 맞서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기자 선배들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자본에 잠식된 미디어는 정의를 묵살하고 이익을 쫓고 있다(기자 때려치우고 싶은 수십가지 이유 중 하나다). 이익을 쫓는 미디어는 자극 앞에 윤리를 내려놓는다. 자극은 언제나 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1인 미디어의 힘은 이전보다 막강해져 이제는 언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소한의 견제장치도 없는 1인 미디어의 폭주는 여론을 선동하는 게 얼마나 쉬워졌는지 잘 보여준다.
2.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은 이런 미디어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야기는 갑자기 사람들 앞에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죽을 날을 '고지'하고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지'한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당사자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지옥으로 데려가는 과정은 끔찍하다. 사정없이 집어던지고 패고 찌르다가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미디어'를 통해 퍼지게 되고 여론을 선동한다.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선동에 이용하는 사람은 정진수 새진리회 의장(유아인)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시연' 영상을 통해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죄인'을 데려간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신의 의도'에 대해 설파한다. '새진리회'라는 명칭이나 정진수 의장의 교리는 낡고 해묵은 것이지만 '시연' 영상 때문에 꽤나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서울 한복판에서 '시연'이 일어났으니 그 힘은 더 막강해진다. 누가 봐도 사이비 종교같던 새진리회가 힘을 얻는 과정은 단 한 번의 '시연'이면 충분했다.
3. 정진수 의장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유튜브 영상이나 뉴스에 등장해 교리를 전한다. 그리고 고지를 받은 박정자(김신록)가 상담을 하러 갔을 때 그는 30억원을 제시하며 시연을 생중계하겠다고 한다. 사람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생중계한다고 했을 때 겨우 아프리카나 트위치같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방송하다가 경고나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정자의 시연 생중계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출동하고 많은 신도들과 경찰들도 모인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진 1화의 시연에 비하면 2화의 박정자 시연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디어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전한다. 이는 전파를 타고 널리 퍼지게 되고 이때부터 새진리회의 분위기는 완전히 역전된다. 아무리 영화적 허용이라지만, 해당 장면을 보고 "방송국이 어떻게 저런 장면을 내보낼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화의 박정자 시연 장면 이후 '지옥'의 의도는 명확해졌다. 이 이야기 속 지옥은 온전히 미디어가 만든 세계다.
4. 정진수 의장은 여론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드러내야 할 것에는 30억원을 투자했고 감춰야 할 것은 철저하게 감췄다. 그리고 만들어야 할 것은 어떻게든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야생의 미디어도 이용했다. 그것은 '화살촉'이다. '화살촉'은 새진리회의 교리를 따르는 급진적 폭력단체다. 1인 미디어를 활용하면서 폭행을 생중계하고 여론을 선동한다. 화살촉의 리더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옷과 분장을 하고 소리지르면서 선동하는 것은 자극적인 미디어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게다가 그런 언변과 이미지는 여론을 끌어당기기 딱 좋다. 정진수 의장의 새진리회는 표면적으로 화살촉과 선을 그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화살촉을 방치했다. 4화부터 다른 에피소드가 펼쳐지지만 새진리회가 화살촉을 방치하는 것은 같다. 견제장치가 없는 미디어와 폭력은 좋은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5. 1~3화까지 정진수 의장을 쫓는 진경훈 형사(양익준)와 그의 딸 희정(이레)은 미디어의 비밀을 아는 관찰자다. 두 사람은 유일하게 정진수 의장의 실체를 본 인물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각자 다른 사정이 있지만 미디어에 선동된 세상이 너무 견고해서 비밀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은 같다. 희정은 종교에 빠지고 정진수라는 미디어에 선동돼서 실체를 외면해버렸고, 경훈은 견고해진 세상 앞에 자신이 본 진실이 힘을 얻을 수 없기에 진실을 감춰버린다. 선전과 선동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세다. 그것은 미스테리한 사건으로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고 어떤 부조리한 일도 감출 수 있다. '지옥'의 3화는 미디어의 공포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몇 가지 요소만 갖춰진다면,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드러난 진리이며 '지옥'이 보여주는 '지옥도'이기도 하다.
6. 4화부터는 배영재(박정민)와 송소현(원진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 부부는 새진리회가 사실상 지배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새진리회는 여의도(의미심장)에 거대한 본당을 가지고 있고 공권력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른다. 4화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미디어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접근한다. 우선 주인공 영재의 직업이 방송국PD다. 그는 새진리회의 홍보영상을 찍으면서 새진리회 측의 검토를 받는 게 못마땅하다. "이게 방송국인지 외주제작사인지"라고 불평하는 장면은 그의 현재 위치를 드러낸다. 변해버린 세상에서는 몇 가지 갈등이 존재한다. '고지'를 받은 사람은 새진리회의 교리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힌다. 고지를 받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서 고지를 받은 사람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조용한 곳에서 시연을 당하려고 한다. 이를 돕는 '소도'라는 조직이 있다. 이들은 고지받은 사람의 흔적을 없애고 실종된 것처럼 꾸며준다. 만약 고지받은 사람이 새진리회에 붙잡히게 된다면 그는 새진리회의 스튜디오에서 시연당하는 것을 전국으로 생중계 당한다. 말도 안되는 세상이지만 '지옥'은 꽤 그럴듯하게 이를 만들어낸다.
7. 변해버린 세상에서는 '알리느냐', '감추느냐'의 갈등이 등장한다. 이는 미디어에 드러나지 않을 권리를 역설한다. 공형준 교수(임형국)의 말대로 '조용하게 죽을 권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영재와 소현 부부는 세상을 뒤집을 비밀을 갖게 된다. 비극적인 비밀이지만, 이는 새진리회가 지배한 세상을 뒤집을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당연히 새진리회는 이를 막으려고 하고 소도와 부부는 이를 알리려고 한다. 이 갈등이 4화부터 이야기의 핵심이다. 여기서는 '알리느냐', '감추느냐'의 위치가 역전된다. 위치는 역전됐지만 그 중심에 미디어가 있는 건 같다. 변해버린 세상에서도 여전히 미디어는 힘이 세다. 6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미디어는 조용해진다. 택시기사가 나직한 음성으로 전하는 말은 미디어가 만든 지옥에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인간세상에서 일어난 일은 지옥의 사자나 미디어의 개입이 아니라 인간들끼리 해결해야 한다. 시즌1의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정말로 지옥에서 온 사자는 미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8. '지옥'을 보면서 연상호 감독이 '아버지'를 그리는 방식에 주목하게 됐다. 연상호 감독의 전체 필모그라피에서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에 아버지가 등장한다면 그 존재는 특별한 경우가 많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사이비'와 '돼지의 왕', '서울역'(?) 등에 등장했고 실사영화 '부산행'과 '염력'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지옥'에서는 진경훈과 배영재,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가 작품에서 그리는 아버지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애니메이션에서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악독했다면 실사작품에서는 희생적이고 슬프다. 이는 그의 작품톤과도 일치한다. 자비없고 악랄했던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에 비하면 실사영화들은 일부 신파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옥'은 애니메이션의 잔혹함을 유지하면서도 실사영화의 대중성을 취한다. 즉 '지옥'은 연상호의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장점을 모두 취하고 있다. 이는 단지 아버지의 위치만 바꿔서 이룩한 결과다. 위기를 겪는 인물에게 있어 아버지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9. 결론: 보는 내내 '신개념 아포칼립스'라는 생각을 했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재앙'이라는 게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지옥'은 단 한 번도 지옥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내 현실세계만 등장하면서 '현실이 곧 지옥'이라는 인식을 준다. 이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미디어에 선동된 대중이다. 이런 지옥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지옥'을 보는 내내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을 떠올렸다. 여론을 선동하는 것은 그 이면에 권력자가 나쁜 짓을 해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여론을 이끄는 미디어와 언론은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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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시리즈 같은데.. 해외에서 얼마나 반향 일으킬지도 주목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