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분석한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 요인
일본의 저널리스트 마츠타니 소이치로의 기사인데...
굉장히 좋은 내용이라 읽고서 감탄했고, 다른 분들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봤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서 이 정도로 장르를 이해하고 분석한 기사는 거의 못본 것 같아요.
원문은 아래입니다.
https://news.yahoo.co.jp/byline/soichiromatsutani/20210930-00260704
<오징어 게임>은 데스게임을 ‘무겁게’ 그렸다
한국판 <카이지>가 넷플릭스 세계 1위의 대히트
7일 연속 전 세계 1위
9월 17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전9화)이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세계 각국의 순위를 포인트화 하여 정리하는 ‘Flix Patrol’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부문에서 9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 연속으로 세계 1위(유지 중)를 기록했다. (Top Movies and TV Shows on Netflix in September, 2021 by day) 일본에서도 22일 이후 계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비영어권 작품이 이렇게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얼핏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소위 말하는 ‘데스게임’물이다. 주인공이 인위적인 게임에 휘말리고, 거기서 생사를 건 승부에 도전하는 장르의 작품이다.
이 <오징어 게임>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도박묵시록)카이지> 시리즈와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 드라마의 요소를 강화시킨 결과, 기존의 데스게임 장르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무게’로 인해, 전 세계에서 어필하고 있다.
죽음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빚을 지고서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별 볼일 없는 중년 남자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자식과도 헤어져서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만난 한 남자로부터 수수께끼의 전화번호를 건네받는다. 그것은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게임의 초대장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자동차를 탄 뒤 수면 가스를 들여 마시고, 어느새 끌려간 곳은 복면을 쓴 인물이 관리하는 수수께끼의 공간이다. 모두들 녹색 운동복을 입은 상태였는데, 그 중 기훈은 456번이라는 번호를 부여받는다.
첫 번째로 진행되는 게임은 ‘달마가 굴렀다’(한국에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일본인들에게도 친숙한, 술래가 뒤돌아 본 순간에 움직이면 아웃되는 놀이다.
하지만 단순한 애들 놀이와는 다르게, 아웃된 순간 총에 맞아 사살된다. 기훈은 그런 식으로 데스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가운데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왼쪽은 그의 소꿉친구 상우(박해수), 우측은 탈북자 새벽(정호연)
‘가벼운’ 게임을 ‘무겁게’ 그리다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 게임 등 데스게임은 지난 40년 동안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히트를 치면서, 표현 장르를 넘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에선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국산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가 세계적으로 히트치기도 했지만, 영상물로는 일본의 <라이어 게임>이 리메이크된 정도였고, 그 밖에 (한국산 데스게임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은 그런 가운데 갑자기 탄생한 작품이다.
설정은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카이지>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접근법은 후카사쿠 킨지 감독이 영화로 만든 <배틀로얄>(2000)에 가깝다. <배틀로얄> 영화는 원작의 저변에 깔려있던 가벼운 분위기를 약화시키면서, 인간 드라마의 비중을 강화했다. 즉, ‘가벼운’ 게임을 ‘무겁게’ 그렸다. 그것은 <의리 없는 전쟁>을 연출했던 감독이 라이트노벨 같은 작품을 다루는 것으로 인한 화학반응이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은 소박한 게임들이어서 <카이지>와 같은 게임성의 묘미는 별로 없지만, 등장인물들을 탄탄하게 그림으로써, 인간 드라마로서의 깊이를 더했다. 서바이벌에서의 심리전은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시청자가) 인지하고 있기에, 무척 괴롭고 슬프고 아프게 느껴진다.
즉, <오징어 게임>도 ‘가벼운’ 게임을 ‘무겁게’ 그린 것이다.
데스게임 외의 묘사가 많은 것도 <오징어 게임>의 특징이다.
데스게임 작품의 계보
데스게임 작품은 지난 20년간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에 있던 장르다. 1997년 개봉한 캐나다 영화 <큐브>와 1999년에 대히트한 타카미 코슌의 소설 <배틀로얄>을 계기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1970년대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일본의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의 <불새 생명편>(1980)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나 스티븐 킹의 소설이다. 그가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쓴 초기 작품 <롱 워크>(1979)와 <러닝맨>(1982)이 이후 다양한 변주 작품들을 이끌었다.
특히 타카미 코슌의 <배틀로얄>은 <롱 워크>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된 소설이다. 중학생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이듬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훗날 미국의 소설, 영화 <헝거 게임> 시리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적으로 인기인 <배틀그라운드>(2017)와 <포트나이트>(2017)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만화의 세계에서 독자적인 데스게임을 발전시켜왔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1996)와 오쿠 히로야의 <간츠>(2000), 카이타니 시노부의 <라이어 게임>(2005), 카네시로 무네유키 원작, 후지무라 아케지가 그린 <신이 말하는 대로>(2011) 등, 약 5년 간격으로 히트 작품이 탄생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나중에 모두 영상화되었고, 하나같이 대히트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아소 하루의 만화 <아리스 인 보더랜드>(2010)를 작년 말에 드라마화하여 히트시킨 기억이 생생하다.
데스게임을 다룬 주요 영상 작품들 |
<죽음의 경주>(1975) |
<롤러볼>(1975) |
<러닝맨>(1987) |
<쥬만지>(1995) |
<큐브>(1997) |
<퍼니 게임>(1997) |
<배틀로얄>(2000) |
<쏘우>(2004) |
<자투라>(2005) |
<라이어 게임>(2007) |
<리얼 술래잡기>(2008) |
<카이지>(2009) |
<더 인사이트 밀: 7일간의 데스 게임>(2010) |
<간츠>(2011) |
<미래일기>(2012) |
<소드아트 온라인>(2012) |
<헝거 게임>(2012) |
<인랑 게임>(2013) |
<신이 말하는 대로>(2014) |
<아리스 인 보더랜드>(2020) |
<오징어 게임>(2021) |
탈북자가 등장하는 데스게임
하지만 일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데스게임 작품은 사회성과는 무관한 것들뿐이다. 주인공들 다수가 부조리하게 게임에 참가한다는 특징이 눈에 띈다. SF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히트작들 상당수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적인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가벼움’을 지니고 있다. 설령 거기에 죽음이 그려져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심각성은 없어서, 그로 인한 ‘가벼움’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뒤틀린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거기에 현실의 사회배경이 그려질 여지는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해 <오징어 게임>은 데스게임 공간에도 한국 사회를 제대로 반영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등장인물이 20대 여성 강새벽(배우 정호연)일 것이다. 그녀는 북한에서 온 탈북자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이유와 탈북 했을 때의 상황, 그리고 가족의 현재 모습 등이 단계적으로 밝혀진다.
데스게임 설정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에는 한국 사회가 강하게 투영돼 있다. 그 결과, 데스게임 그 자체가 무거운 현실로서 그려지고 있다.
탈북자 강새벽. 연기한 배우 정호연은 SNS 팔로워 수가 수백만 단위로 증가했다고.
엔터테인먼트에서의 사회성
이러한 작품의 지향성은 아무래도 각본, 감독을 맡은 황동혁 때문일 것이다.
황동혁 감독은 원래부터 사회파였다. 데뷔작 <마이 파더>(2007)는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이 친부를 찾는 이야기, 히트작이 된 <도가니>(2011)는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일본에서도 리메이크된 코미디 <수상한 그녀>(2014)와 대작 사극 <남한산성>(2017)으로 흥행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오징어 게임>에선 그러한 필모그래피를 지닌 황감독의 사회파로서의 요소와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균형 있게 짜여 있다.
2012년 <도가니>가 일본에 개봉됐을 때 필자는 엔터테인먼트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황감독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전략) 강한 사회성은 어드밴티지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세계정세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국민들이 정치와 사회에 대단히 높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당연히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민감해 하니까, 사회성을 내세우는 것이 상업성을 높이는 것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러한 과거 발언을 감안해 보면, 데스게임에 무리하게 사회성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강한 사회의식이 반영되는 다른 한국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데스게임 설정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데스게임 작품에서 ‘가벼움’은 최고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요소지만, <오징어 게임>은 ‘가벼운’ 게임을 ‘무겁게’ 그림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게 됐다.
그것은 ‘인위적’인 요소를 계속 비틀면서 축소 재생산 경향을 보이던 데스게임‘을, ’있을 법‘하게 만든 결과 ’새로워진 고전‘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golgo
추천인 62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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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그려야죠. 사람이 죽는데...
'카이지' 언급 잘 했는데 그것도 일본의 포기한 젊은 세대와 빚이 만든 지옥도에서 출발한거 아니겠습니까.
특히 이번 빛과 어둠의 행방이라는 작품이 현실적인 정치풍자나 빈곤문제, 극단주의 과격파 활동가 등등을 많이 다루고 비판하던데요.
대표적으로 파이널판타지 7 있고, 코지마 감독의 메탈기어 솔리드와 데스스트랜딩, 용과같이 시리즈, 저지 아이즈 등등
역전재판 시리즈도 엔자이로 대표되는 일본 사법계의 문제점을 풍자한 작품으로 해석되구요.
RPG게임 중에선 페르소나 시리즈가 이런 류에서 가장 대표적이죠.
보스들이 아예 학생들을 학대하는 성과주의 체육교사, 악덕재벌, 인터넷 관심종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golgo님 의견에 100% 공감 합니다.
제발 애국적으로 흡수하지 말고, '개인적인' 부분을 파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관련해서 느낀 점을 말해보겠습니다.
수년간 봉준호 감독님에 관한 에세이를 작업중인 입장에서, 유튜브에 '봉준호'를 검색할 때 보다 'Bong Joon Ho'를 검색할 때 더욱 많은 깊이와 넓이를 얻게된다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즉, 한국인 유튜버들이나 온라인 활동을 겸하는 전문가들의 컨텐츠 보다, 해외 유튜버, 전문가들의 컨텐츠가 훨씬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봉준호의 오랜팬이자 'BongHive'로서 가장 흥미롭고 습득이 많이 된 영상이 해외 영상들.) 국내 영상들은 이른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컨텐츠를 고스란히 영상화 시킨 다음, 애국적으로 제작한 게 훤히 보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오글거렸어요 ㅋㅋㅋ
이것을 팬심으로 제작한 것이라면 유익한 컨텐츠이겠지만, 제목과 썸네일은 연구적이고 학술적인 느낌이 나게 온갖 유난은 다 떨어놓고, 클릭해보면 정작 전형적으로 현재 시류에 탑승하는 느낌이랄까요?
단언컨대, 이 영상들이 국내 영상들 보다 훨씬 깊이있고 넓습니다. (BongHive로서 장담 합니다.)
훨씬 많은데, 댓글에는 이 영상들만 대표적으로 일단 올리겠습니다.
제발 자부심을 느껴주기 위한 흡수 기능으로 전락하지말고, 작품과 컨텐츠 '그 자체'에 집중하며 파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을거면 아예 대놓고 '덕질'하는 식으로 기사를 게재하던가요.
익무에서 영화로 다양하게 떠드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비평 맛집이 늘어났으면 좋겠고, 덕질도 하는 덕후로서는 덕질할 거면 대놓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원하는 글들을 찾아 클릭할테니까요.
저 분은 예전에 <베테랑>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하셨네요.
살인의 추억, 베테랑, 기생충, 1987, 택시운전사, 남산의 부장들 등등 당장 생각나는 한국 블록버스터 대부분이 사회적이네.
잘 읽었습니다^^
게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게임을 하고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했군요 :)
글 번역 감사합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장르 안에 사회를 넣는 작품이 많이 없나? 궁금증이 드네요
우리나라에서만 너무 흔한건가...
할리우드 장르 오락물의 사회 비판 요소는 한국보다 직접적이진 않고...10대 20대 취향에 주로 맞춰진 일본 오락 영화들에선 더더욱 드물고요. 사회 비판 요소 담긴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큰 사랑 받는 한국은 특수한 케이스 같아요.
사실 이런 장르 전문은 일본인데, 일본은 실사화만 했다 하면 오글 폭발이라 ㄷㄷㄷ
좋은 글 올려주신 golgo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