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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주근깨 공주] 간략후기

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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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를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을 통해 미리 보았습니다.

3년마다 작품을 내놓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올해 칸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영화는 현재 전세계적인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는

'메타버스'라는 소재와 월트 디즈니 출신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의 참여 등 여러 야심찬 시도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과연 영화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그간의 작품에서 선보인 세계관 및 가치관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역작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최고작인가 질문한다면 의견이 엇갈릴 순 있겠습니다만 야심차기 이를 데 없는 시청각적 연출에

이런 컨셉으로 이런 소재를 다룰 수 있구나 싶은 유의미한 이야기가 더해져 감각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만족스런 영화가 되었습니다.

 

전세계 50억명의 사람들이 즐기는 초대형 메타버스 'U'(유)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용자들은 현실의 자신과 닮은 캐릭터로

현실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며 무한히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영향력을 떨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시골 마을의 소심한 고교생인 스즈(나카무라 카호)는 이곳 U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가수 '벨'입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스즈는 현실에서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되었지만, U에서는 마음껏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떨치고 있죠.

현실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웅크린 채 세상 밖으로 나오길 꺼려하며 이중생활(?)을 하던 스즈는 어느날 벨의 단독 돔 공연장 콘서트를 여는데,

콘서트가 한창이던 때 웬 침입자가 나타나 한바탕 추격전을 벌이고는 상대들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며 공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곤 사라집니다.

'용'이라 불리는 그 침입자는 U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로 지목되어 많은 이들에게 지탄과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벨, 아니 스즈는 이상하게 그가 누구인지, 왜 그렇게 무법자가 되어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자신의 목소리로 '용'에게 다가가려는 스즈의 노력은 서서히 스즈를,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합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전작 <썸머 워즈>에서도 '오즈'라는 가상현실 세계를 다룬 적이 있지만,

역시 'U'라는 가상현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용과 주근깨 공주>는 그보다 훨씬 더 확장되고 보다 심화된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확장되었다 할 수 있는 건, 이번 영화에서 감독이 자신의 시각적 연출에 대한 야심을 최대치로 실현시킨 듯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큰 화면에서 볼수록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감상이 U라는 세게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첫 장면에서부터 대번에 듭니다.

이 세계는 현실 세계처럼 디테일하고 사실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물리적 공간이나 에너지를 쓰지 않기 때문에

그 크기와 넓이와 깊이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없는, 무한정에 가까운 스케일을 기하학적인 이미지로 구현합니다.

0과 1로 이뤄진 바다 같은 U 속 공간을 거대한 고래를 타고 누비는 '벨'의 첫 등장은 관객에게 U를 가장 잘 설명하는 '키 비주얼'일 것입니다.

한편 김상진 감독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U 속 캐릭터들의 비주얼 또한 동서양의 터치가 어우러진 듯한 벨의 외양을 비롯해

출신지가 제각각일 듯이 저마다 또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한곳에서 만나 교감하며 보는 재미를 한층 풍성하게 합니다.

(3D 렌더링 작업이 들어갔겠지만) 2D 애니메이션도 여전히 이만큼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선사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죠.

여기에 스즈와 벨의 능력치에 걸맞게 영화는 뮤지컬적 요소를 충실히 활용하는데, 이 부분의 퀄리티 또한 만족스럽습니다.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부르는 뮤지컬 넘버로서 캐릭터 내면의 목소리를 전하는 역할도 하는데,

드라마틱한 사운드에 실제 가수이기도 한 나카무라 카호의 목소리가 입혀지며 상당히 장대한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노래들은 영화에서 극적인 전환점이 다가올 때마다 활용되며 강렬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이러한 기술적 성취 못지 않게 본디 감독의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세밀한 감정의 포착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단한 시청각적 야심을 성취시키는 U 밖으로 나와 스즈의 하루하루가 펼쳐지는 시골 마을로 돌아가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면서 느꼈던 간질거리는 일상의 감정이 곳곳에서 다시금 되살아납니다.

몇년을 사무치며 남아있는 그리움과 외로움, 서투른 사랑과 시끌벅적한 우정, 전하고 싶었지만 숨어버리기 일쑤인 마음까지,

영화는 때로 인물들의 얼굴을 응시하고 때로 우두커니 서 있거나 쭈뼛쭈뼛 걸어가는 인물들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며 세세히 그려냅니다.

U의 세계에서는 과장된 표정과 몸짓, 거침없는 멘트들로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즉각 표현하지만

현실에서는 드러내고 나아가기보다 일단 물러나고 숨기기에 바쁜, 현실의 우리가 지닌 '머뭇거림'의 습관을 나타내는 듯도 합니다.

거대한 세계를 미끄러지듯 누빌 수 있는 U에 대한 묘사 못지 않게 영화가 현실의 공간과 인물들 또한 이처럼 꼼꼼하게 그려내는 것은,

이 영화가 현실이든 가상의 세계이든 우리가 만날 수 밖에 없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가상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썸머 워즈>에서는 '세계 대 세계'의 구도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개인 대 세계'의 구도입니다.

내 정체성과 인격까지도 바꿀 수 있는 메타버스란 공간이 나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죠.

스즈는 어쩌면 현실의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현실의 자신을 '리셋'하고자 처음 U에 들어섰을 것입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여태 회복되지 않은, 이후 여러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거치면서 오히려 다른 모양으로 멍들어갔을 상처를 숨긴 채

도피하듯 가상세계를 누비던 스즈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는 그 세계에서 누군가의 진짜 얼굴을 궁금해 하게 됩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으며 진짜 얼굴을 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즈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가면의 힘을 빌어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그 상처를 보듬기 위해 마침내 먼저 손길을 내미는 과정은,

가면의 힘을 빌었을지언정 그것이 자신의 본심이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가상세계를 넘어 현실의 자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디지털 세상이라고 하면 흔히들 각자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배설하기에 바쁜 곳으로 낙인찍히게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어떤 새롭고 거대한 세계가 우리의 본성을 거울처럼 내포하고 있을 때, 그래서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귀기울이는 곳이 될 때

더 이상 숨어들고 단절되는 곳이 아니라 불러내고 마침내 구원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내 손을 잡는다는 것이기도 하다는 위로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으려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있는 순간에도 바깥에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언제까지나 침잠할 필요 없이 준비가 되면 어느 때든 나와도 된다는 위로를 스즈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죠.

 

<용과 주근깨 공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로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입증합니다.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사랑, 우정, 가족애 등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천착하고 있는 그의 작품 속 세계관이 지극히 소박해 보일 수 있지만,

거대한 세계와 그보다도 더 다루기 힘든 개인의 감정을 함께 이야기하는 <용과 주근깨 공주>는 그럼에도 그 세계관이 지니는 힘을 입증합니다.

벨로부터 시작된 스즈의 변화, 그렇게 변화한 스즈가 이끌어내는 더 큰 변화를 통해 영화는 세상의 변화는 개인의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언제까지고 개인의 내적 우주로부터 시선을 떼선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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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관람 전이라.. 빨리 봐야겠네요.^^

19:30
21.09.26.
jimmani 작성자
golgo
이제 개봉일까지 정말 얼마 안남았네요 ㅎㅎ
19:39
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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