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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 (Crash, 2004) - 허술한 각본 속에 희석되어 버린 '화합'의 메시지

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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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

Crash, 2004

* 본 게시글은 영화 '크래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크래쉬는 현재까지도 거의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최악의 오스카 수장작'으로 꼽히는 작품일 겁니다. 당시 경쟁작들만 보더라도 '브로크백 마운틴', '뮌헨', '카포티' 등 쟁쟁한 작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작품상을 받아간 것이 크래쉬 였기 때문이죠. 물론 상을 무슨 고스톱쳐서 받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심사받아 당당히 가져갔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큰 문제는 바로 이 작품이 윗 작품들에 비하면 각본이 매우 허술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 화합'을 다룬 영화들이 한 둘도 아닐테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통찰력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밑에서 더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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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LA의 교외 지역의 한 도로에서 한 인물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선 시간은 36시간 전으로 거슬러 가고, 다양한 인종의 인간군상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 서로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건을 겪으며 그들이 어떻게 화합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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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단 이 영화에서 크게 칭찬하고 싶은 점은 바로 백인은 무조건 나쁘며, 흑인을 비롯한 타 인종들이 무조건 선한 피해자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선 인종과 상관없이 누구나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으며,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장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라틴계 형사에게 인종차별을 행하는 동양인 여성을 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흑인 의사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제대로 진료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다른 애꿎은 흑인에게 화풀이를 하는 백인 경관, 남미 출신 자물쇠 수리공에게 차별을 하는 이란계 이민자 가장, 흑인이 받는 차별을 토로하면서 정작 동양인에게는 'Chinaman(짱깨)'라고 부르는 빈민가 출신 흑인, 인종차별을 행하는 경찰이 있는 것을 아는데도 자신의 경력에 손상이 갈까봐 두둔하는 흑인 경찰 상사 등 선악의 구분은 커녕, 모두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임을 강조합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누구나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지만, 아직까지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나오는 인종 화합을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아직도 '백인은 인종차별의 가해자'이며, 흑인은 '애꿎은 피해자'로 등장하는 게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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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3년 전에 '그린 북' 같은 영화가 당당히 오스카를 수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가 망작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주인공은 무조건 '동정심 많은' 백인으로 등장하여 흑인을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준다는 레퍼토리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당장 그린 북을 제외하더라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블라인드 사이드', '헬프' 같은 작품들이 다 똑같은 레퍼토리를 가진 작품들이죠. 물론 흑인들이 과거에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많은 차별을 받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선한 백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혹은 처음엔 선하지 않더라도 흑인들에게 이후 마음을 열게 되는 식으로) 흑인들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흑인들이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물론 그 당시에 모든 백인들이 인종차별을 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린 북 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종 화합의 과정은 단순히 착한 백인이 흑인을 불쌍하게 여긴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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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 길었는데, 하여튼 아직까지도 저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흑인을 비롯한) 모든 인종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꽤나 용감한 일입니다. 현재 소위 말하는 '정치적 올바름'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만약 (흑인이 아닌) 누군가 '흑인도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인터넷에서 소위 'PC충'들에게 집중포화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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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의도는 좋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의도가 좋은 것에서 끝나버립니다. 왜냐고요? 간단합니다. 각본이 너무나도 허술하거든요. 먼저 초반에 애꿎은 흑인 프로듀서에게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 경관 '라이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라이언이 인종차별을 함과 동시에 프로듀서의 아내를 성추행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장면입니다. 근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라이언은 '우연적으로' 자신이 성추행했던 흑인 프로듀서의 아내가 사고를 당한 현장에 도착하여 그녀를 목숨을 걸고 구해줍니다.

또 다른 장면에선, 라이언의 파트너인 백인 경관 '핸슨'이 라이언이 하는 짓을 저지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결국 홀로 순찰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후반부에 '우연적으로' 흑인 청년을 차에 태워주고 운전을 하게 되는데, 무기를 소지한 것으로 오해를 한 핸슨은 그만 흑인 청년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잘 나가는 검사의 아내 '진'은 타 인종을 매우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연적으로' 계단에 굴러떨어져 다치고 그러한 진을 정성껏 간호하는 자신의 히스패닉 가정부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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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작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대부분이 '우연히'라는 점에서 각본의 허술함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 처음에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게 하던 백인 경관 '라이언'이 흑인 PD의 와이프를 구하는 장면은 꽤 눈물을 흘릴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결국 이 장면을 통해서 '이 녀석도 사실은 괜찮은 녀석이었어'라는 식으로 인물이 그전에 저지른 잘못된 행위를 두둔하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식적으로, 라이언이 저질렀던 잘못으로 인해 그가 법의 심판을 받은 것도 아닐 뿐더러 그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한 것도 아닐텐데 결국 라이언은 마치 성인군자라도 된 듯이 묘사가 되었다는 것이 의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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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슨의 경우 더욱 기가 막히는데, 흑인 프로듀서가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져 나중에는 그 프로듀서의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물론 이 장면도 매우 '우연적으로' 진행이 됩니다.) 허나 반대로 마지막에 태운 흑인 청년을 총으로 쏴버리는데, 이러한 점을 통해 '인종차별을 혐오하는 사람도 결국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우연적이기에 이를 본 관객에겐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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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 작품은 유독 '동양인'에게만 매우 야뱍하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처음에 흑인 청년 '앤서니'가 자신도 모르게 동양인을 차로 깔아 뭉개서 크게 다치게 만들고는, 대충 병원 앞에 버리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요. 물론 앤서니가 작품이 진행될 수록 가치관의 변화가 오고 마지막에 가선 나름대로 옳은 일은 한다고는 하지만,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반성이라던가 심판을 받는 장면도 없이 영화가 끝난다는 점에서는 해당 인물에 대한 미화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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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작품의 평가를 요약하자면 '서로 다른 인종들이 충돌(Crash)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메시지는 좋았지만, 각본의 허술함으로 인해 그 중요한 메시지가 다소 희석되어 버린' 안타까운 작품이라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각본만 탄탄하고, 또한 동양인과 타 인종이 화합하는(혹은 그럴 여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다면 평가가 달라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런것을 보면 동양인이 타 인종에 비해 아직까지도 미국 내에서 단순히 마이너리티로 인식이 되는 것 같아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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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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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은 정말 취급이 안 좋았는데 이제라도 개선되길 바라죠.
17:48
21.06.08.
profile image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걸작을 제치고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다는게 정말...

18:28
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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