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리뷰] Special One, 심달기
여기 심달기라는 배우가 있다. 짙고 바른 눈썹에 도발적인 눈, 중심을 잡고 있는 코, 불만을 머금은 듯한 입, 보살처럼 자애로운 느낌의 귀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턱에 있는 큰 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심달기가 굳게 입을 다물고 무표정하게 있다면 쉽게 다가가 말을 걸기 어렵게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배우는 불량스런 여학생이나 주인공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존재를 여러 차례 연기했다. 내가 심달기를 처음 본 작품은 넷플릭스 '페르소나'였다(이전까지 심달기는 단편영화 위주로 활동했다). 이 때의 심달기는 '절친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자유분방함'을 선보인다. "독립영화 하던 배우인가?"라고 생각했는데, '페르소나' 이전에는 모두 단편영화 경력이 전부다.
1999년생인 심달기는 2017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2016년에는 '아무개의 잠재의식과 영역'이라는 영화를 '연출'했다). 2018년 KBS 드라마 '죽어도 좋아'에 출연한 이후 메인프레임에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메인프레임 활동 경력이 3년 가량 되지만 주연을 맡은 영화는 올해 개봉한 '더스트맨'이 처음이다. 그 전까지는 조연 내지 단역이 전부였다. 자신을 제대로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는 각인이 돼있다. 몇 개의 인상적인 순간을 돌아보자. 2019년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심달기는 은자(김국희)의 딸 금이로 출연한다. 식당에서 차현우(정해인)의 옆에 앉은 심드렁한 표정의 소녀가 기억에 남는다. 엄마 말 징하게 안 들을 것 같지만 소녀같은 순수한 매력을 보여준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메기'에서는 병원 환자로 출연하면서 제작지원 스탭으로도 참여했다. 오래전 본 영화라 다시 기억을 되짚어봐야 했지만 심달기를 기억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병원환자들 틈에서 '심달기스런' 표정을 짓는 그녀를 발견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과수원집 딸 김영희로 출연하는 심달기는 사건을 목격하고 피해자의 감정을 전달하는 인물이다. 비정규직 여사원들이 판을 엎기로 결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기능적인 것 외에도 감정을 알 수 없는 크고 도발적인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는 이자영(고아성)뿐 아니라 관객들도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아기를 키우는 젊은 부부로 등장한다. 아기의 상태가 심각하지만 별 걱정 없어 보이는 이 부부는 사실은 아기 걱정을 누구보다 많이 하고 있었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보여준 반전매력이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사례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심달기는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면서도 안은영(정유미)에게 계기를 안겨준다. 이 역할은 심달기가 아니면 누가 할까 싶을 정도로 찰떡이었다.
관객, 시청자에게 드러난 심달기의 순간은 대체로 작았다. 보통 이 정도 존재감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라면 텍스트가 적어서 글로 적기 망설여지지만 심달기는 작은 역할로도 풍성한 텍스트를 전달한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과 이를 뒷받침하는 개성은 이 배우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증명한다. 이는 단순히 '연기력'(이라고 불리는 추상적인 그 무언가)이 낳은 결과는 아니다. 심달기는 존재 자체만으로 어느 배우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한 영역에서 단숨에 정점을 찍어버렸다. 나는 배우가 매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거라 기대하진 않는다. '늘 강조하지만' 그런 건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하는거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캐릭터를 구축해낼 수 있다면 그 배우는 시장에서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심달기는 최단 시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배우다.
심달기는 여전히 독립영화의 중심에 있거나 상업영화의 가장자리에 있다. 가끔 상업영화들이 독립영화를 독자적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불만이다. 예를 들어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에 오르는 배우들을 보면 이미 독립영화계를 주름잡던 배우들이다. 신인이라기에는 너무 자주 본 배우인데 신인상을 준다. 이를 감안한다면 심달기는 메인프레임에서는 아직 '생짜 신인배우'다. 심달기는 독립영화 '더스트맨'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이어 곧 개봉 예정인 '인생은 아름다워'에도 출연했다(주·조연급은 역할은 아니다). 어쩌면 내년 시상식에서도 이 배우는 가치를 인정받진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배우가 가치를 인정받는 건 시간문제다. 이미 '연기'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고 '심달기가 아니면 절대 만들지 못할 캐릭터'를 여러 차례 보여줬다.
'연기'라는 게 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연기의 본질은 캐릭터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작업이다. 목소리를 내고 몸짓을 하고 표정을 보여주는 일은 모두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행해져야 한다. 심달기는 그 본질에 충실한 배우다. 힘들이지 않은 표정, 목소리, 몸짓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 배우 덕분에 '신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마저 바뀔 지경이다. 심달기는 '굉장히', '독보적인' 배우다.
추천인 6
댓글 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리더 필름에 등장하는데 처음엔 심달기 배우인줄 몰라봤습니다.
정말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는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