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위의 포뇨> 해석, 괴담은 그만 (스압주의)
무려 2008년에 나온 영화... 영화관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옛날에는 그저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배경과 동화 같은 이야기가 좋았는데, 나이를 좀먹고 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네요.
여러 리뷰를 뒤져보니 여전히 맘에 드는 해석은 없고 이상한 말이나 괴담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지브리 괴담들은 하나같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무시하고 보고싶은것만 보니 저는 그런 괴담을 매우 극혐해 합니다. (해석자체도 정신적으로 해로워요) 특히 토토로,,,
<벼랑 위의 포뇨>영화는 단순히 괴담으로 치부하기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어온 자연주의 영화의 담론을 새롭게 담고 있어서 매우 아쉽습니다.기존의 자연주의 영화 <원령공주>,<바람계곡의 나우시카>등과 다르게,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자연속에서의 생존을 이끌죠.
<벼랑 위의 포뇨>에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최대한의 자기보호를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쓰나미라는 압도적인 재앙 아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높은 곳에 집과 도랑을 짓고, 서로를 도우며 단결하여 살아가는 것뿐이죠. 앞서 말했듯 이 영화와 다른 자연주의 영화와의 큰 차이점이자 주제가 바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것입니다.
(바다농장을 관장하는 후지모토. 그는 바닷속을 통제하는 등대와도 같아 보입니다.)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를 보면,그는 모순으로 가득 찬 남자입니다. 바닷속 생명의 진화와 탄생을 이끌지만, 사실 자신의 논리대로 유전자들을 다루는 것일뿐이죠. 영화 초반 바다농장을 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최적자의 생존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포뇨가 인간이 되려 할 때 후지모토는 DNA의 변화를 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그저 자연을 통제하려는 어리석은 마법사일 뿐입니다.
(생존의 최적자란 생존에 가장유리한 DNA,생명을 뜻합니다.)
(소스케 모자는 재난시 불빛을 비추는, 인간을 인도하는 등대입니다.)
반면 소스케는 다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죠. 소스케와 미사는 평범한 모자로 마치 등대 같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이끄는 듯 보입니다. 가정을 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재난 시에 생존을 위함과 동시에 주변을 돕는 걸 잊지 않죠. 양로원을 돕기 위해 떠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위해 찾아가는 소스케의 모습은 인간의, 최적자의 생존 방식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좋아하는 씬. 달리는 모습이 너무 상쾌하고, 소스케를 향한 포뇨의 운명적인 느낌을 줍니다. )
그런 소스케에게 자연의 딸 포뇨가 떠밀려 옵니다. 포뇨는 자연의 질서도, 생명도 아닌 순수한 존재로 후지모토의 통제하에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이죠. 그런 포뇨에게 소스케는 인간의 생활 양식을 보여주고 그녀를 길들이며 생명으로서 생존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렇기에 다시 후지모토에게 잡혀왔을 때, 이도 저도 아닌 존재였던 포뇨가 소스케와 같은 생명이 되고자 하는 것이죠. 결국 포뇨는 마법을 사용해서 재앙을 몰고 소스케에게 갑니다.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왔습니다.)
영화 초반의 오프닝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영화는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우리 모두가 바다에서 왔음을 말합니다. 잠깐 책<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언급하자면,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유전자(자기 복제자)로 탄생했고,무수한 경쟁을 통해 갑옷 같은 몸(자신을 보호하면서 공격할수있는 유전자가 숨을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통해 살아왔습니다.몇만년에 걸쳐 어떤 생명은 물 위로 올라와 삶을 이어갔고, 어떤 생명은 바닷속에서 생존을 이어왔죠.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생명이고 자연의 질서입니다. 자연의 눈에는, 자연의 질서에는 인간의 생존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죠.
그러므로 후지모토의 인간혐오는 자연의 질서를 간과한, 모순된 것일 뿐이고 인간은 최적자로서, 다른 동물과 다름없이 자연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 그 자체인 그란만마레에게 인간은 벌해야 할 악이 아니라 한 생명의 종류일 뿐이다.)
생명의 힘을 인위적으로 대량 생산해서 원시 바다로 돌리려는 후지모토의 계획은 결국 자연의 딸인 포뇨에 의해 모순을 확인합니다. 그가 통제하고 바로잡으려던 질서는 몸부림치듯 생존의 최적자인 인간에게 가고, 마법으로 현재의 바다는 원시 바다가 되지만 세상은 뒤틀려 멸망하려 합니다.
(이곳에서 소스케는 포뇨의 근원과 정체를 확인합니다.)
마지막 즈음 터널을 지나는 장면과 양로원에 대해 이야기가 좀 많은데, 이것은 여러 신화나 분석 심리학에서 상징이 되는 모태로의 회귀입니다. 어머니의 질 속을 뜻하는 터널을 걸어 나가 포뇨와 소스케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 그란만마레의 자궁 속(경계가 쳐진 양로원)으로 들어가죠. 이는 포뇨를 위한, 그녀가 인간이 되기 전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자궁안의 아기로 돌아간 포뇨는 자신의 근원을 확인하는 것이죠.
이곳에서, 생존의 산증인인 노인들 앞에서 소스케는 당당하게 포뇨를 생명, 인간, 생존의 최적자의 길로 인도합니다.
바닷속 생명의 질서를 통제하는 바닷속 등대 같던 후지모토에게서, 생명으로서, 사람들의 생존을 인도하는 벼랑 위의 등대 같은 소스케에게 포뇨는 넘겨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포뇨와 소스케는 다시금 자연의 질서와 그들의 생존을 확인하죠.
아직도 포뇨의 이야기가 괴담처럼 들리나요? 다른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렇지 이 영화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담론을 만들어 냅니다. 타 작품에서 이분화된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나타냈다면, 이 영화에서는 자연 속 생존으로서 인간을 담으며.
(귀요미들..ㅋㅋㅋ)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포뇨가 벼랑위 등대인 소스케 모자를 따라 생명과 생존이라는 원리를 배우고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인간의 생존방식의 모범을 보이는 소스케 모자가 포뇨를 인간으로 인도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의 존재가 이상한 것이 아니란걸 보여줍니다. 2008년도에는 인간이 뭐 바이러스고 악이다, 이런 이야기가 환경을 이야기할때 주를 이루었죠.(아직도 그럼) 그러면서 자연을 이해하지 못한 환경론자들의 무식한 행동들이 자주 보였구요.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포뇨가 인간이 되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당연히 존재라는 것이라는 걸요.
(끝까지 포뇨를 인도하는 바구니를 놓치 않음으로써,소스케는 포뇨를 인간으로 이끕니다.대표적인 상징이죠)
이렇듯 <벼랑 위의 포뇨>는 생과 사를 품은 자연 속에서, 생존의 최적자로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어리석음 없이, 질서를 어기려는 모순 없이, 생명으로서 서로를 지켜갈 포뇨와 소스케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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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뇨2도 재밌을 것 같은데,,,, <바람이 분다> 넷플릭스에 있길래 볼까말까 했는데 봐야겠네요
포뇨가 어렵게 느껴지는게 설명없이 여러 상황이 전개되서 그럴꺼에요. 동화같으면서도 현실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은데 이야기 전개는 빨라서 더 혼란스럽구요. 개인적으로 지브리 작품중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인데 좀 저평가 된듯해서 아쉽습니다 ㅠㅠ 그래도 관심 가져주니 좋네요


보기 전엔 어린이 영화에 가까울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분위기도 굉장히 묘해서 괴담 얘기 나오는게 이상하진 않았어요.
중간에 뜬금없이 뱃놀이하는 옛날 부부?와 마주치는 장면이라던가, 말씀하신 터널 장면도 의뭉스럽고 초현실적이죠.


처음에 볼 때 이야기도 좀 이해하기 어렵고 해서 크게 맘에 들지 않았는데, 시간 지나서 계속 보게 되는 작품이더라고요. 원래 포뇨 2 만들 계획이었다던데 프로듀서 제안으로 <바람이 분다> 만들었다고 해서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