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어떻게 이 정도로 터졌을까?

<귀멸의 칼날>이 일본에서 출판 만화, 애니메이션, 극장판 할 거 없이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게 작년이었죠. 작년 이맘때 제가 봤을 때도 핫한 만화였지만 이렇게까지 대폭발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네요.
어떻게 이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는지 여기저기서 읽고 또 생각해본 게 있어서, 나름대로 몇가지 요인들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1) 소년만화로서의 특징
'귀멸의 칼날'이란 만화는 일단 소년만화,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성공작이 많은 '배틀물'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만화입니다. 대표적인 배틀물 만화로는 드래곤볼, 바람의 검심, 원피스, 나루토 등등 많은 인기작들이 있는데, 귀멸의 칼날이 배틀물로서 구별되는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살펴봤습니다.
일단 방대한 세계관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배경 설정으로 분량을 뽑는 대신, 상당히 심플하고 직관적인 설정으로 밀고 나가는 만화입니다. 대립 구도와 그 안의 동기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단순하죠.
[혈귀라서 사람을 잡아먹고, 귀살대라서 혈귀를 죽인다.]
곁가지 없이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이야기에, 주연급 캐릭터들도 모두 복잡하고 입체적인 면모 없이 단순하고 직선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쉽게 술술 읽힙니다.
그리고 어떤 컨텐츠든 '빠르고 쉽다'는 장점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더욱 부각되는 장점이죠. 한자리에 앉아서 깊고 진득하게 향유하기보다는 가볍고 짧고 자극적으로 즐길 만한 컨텐츠가 흥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고, 넷플릭스에서 쏟아져나오는 상당수 오리지널 컨텐츠도 이 특성을 공유하고 있네요.
요컨대 젊은 소비층의 입맛에 잘 맞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변화한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반작용?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이른바 '원나블'을 필두로 한 소년만화들의 지배적인 위상은 2000년대 초반까지 굳건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전통적 소년만화와는 소비층이 전혀 다른 미소녀물, 일상물, 치유물, 혹은 이세계물 애니메이션이 범람하듯 쏟아져나오면서 그 자리를 많이 뺏긴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소년만화를 대체한 미소녀물 등은 폭넓은 소비층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기보다 비교적 소수의 충성고객층에게 매우 강하게 어필하는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 과정에서 소년만화를 즐길 만한 라이트한 소비자들은 한동안 이탈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현상에 대해 일본의 기성 작가들은 만화시장이 너무 폐쇄적이고 정체되어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죠.
하지만 귀멸의 칼날이 후술할 넷플릭스의 수혜를 얻어 입소문을 타고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널리 인기를 끌면서, 한동안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니즈에 부합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족애나 우정, 노력 등 보편적인 가치에 호소하는 전통적 소년만화의 감성을 듬뿍 담은 만화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론 2010년대에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원펀맨' 같이 상당한 인기를 끈 배틀물 만화가 나왔기 때문에 이 추론은 다소 설득력이 약해보이기도 하네요. '귀멸'이 떠오르게 된 저변의 원동력 중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고... 이 단락은 가볍게 읽어주세요 ㅎㅎ
(3) 환골탈태급 애니메이션
두말할 필요 없이 성공의 일등공신이겠죠. 이 글에서 언급한 모든 요인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할 요소입니다. 놀라운 작화와 역동적인 액션 시퀀스의 완성도는 이전까지의 TVA 중에서는 비교대상이 몇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졌듯 원작만화 자체의 성공도 애니메이션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연재 초반에는 점프 순위 중위권~중하위권을 맴돌았지만, 2019년에 공개된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아득히 초월하는 퀄리티로 뽑히자 점프의 간판급 작품으로 도약한 거죠.
분명히 애니메이션이 그저그런 퀄리티로 뽑혔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업적 성공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원작은 별로인데 순전히 애니빨로 여기까지 왔다는 일부의 의견도 사실 반만 맞는 얘기입니다.
만화 자체의 인기가 오르기 시작하던 '무한열차편' 연재 중 애니메이션 제작이 결정되었고, TVA 공개 전까지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었죠. 그 이유는 아마도 작화의 향상에 있을 것인데, 애니메이션 1기 분량에 해당하는 초반의 '입지편'을 보면 원작은 애니와의 비교가 민망할 정도로 그림체가 어색하고 볼품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무한열차편'에 이르러 작화와 연출 수준이 확 뛰어 올랐고, 이후 '유곽편'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았죠. 내용상으로도 주인공 일행이 본격적으로 귀살대의 주들과 함께 큰물에서 놀기 시작하니 인기가 오르는 것이 자연스럽구요. 결론은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없었어도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지면서 만화 자체의 인기는 어느 정도 높아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4) 뜻밖의 호재, 코로나19
우선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을 들여다보면, 어떤 작품이 한번 흥행하면 방영 후 4-6개월 정도 화제성을 유지하다 자연스럽게 후속 애니메이션에 주목도를 넘겨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한편 귀멸의 칼날은
1) 일단 그 퀄리티 덕에 제대로 히트를 쳤고,
2) 종영 후 원작에 눈을 돌려보니 마침 원작만화도 한창 클라이막스로 향해가는 중이라 화제성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고
3) 결정적으로 작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주요 후속 애니메이션들의 제작과 방영이 늦어지면서, 2019년의 성공작인 '귀멸'의 화제성이 6개월을 넘어 1년 이상 지속되는 기현상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서도 거리두기가 보편화되면서, 공연-극장가는 침체된 반면 넷플릭스가 제대로 반사이익을 받았습니다.
작년에 새로운 한류 붐을 일으킨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같은 한국 드라마처럼, 일본 넷플릭스에 진작에 올라와있던 귀멸의 칼날도 톡톡히 수혜를 입었습니다. 청불 등급을 받은 심야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약점마저 상당 부분 상쇄되었죠.
TV 방영을 챙겨보던 매니아층을 넘어서, 넷플릭스를 통해 보다 폭넓은 세대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 TV 애니메이션의 폭발적인 인기에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극장판의 유례없는 흥행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이미 '귀멸의 칼날'이 국민 만화를 넘어 사회현상이란 소리까지 듣던 시기에 개봉했고, 이미 관람 타겟은 10대 청소년부터 아이를 둔 부모 세대까지 넓은 관객층에 퍼져있는 상황이었죠. 충분히 대성공이 예정된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존 일본 극장가의 관행대로라면 그 어마어마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다소 한정된 상영관을 내주고 길고 긴 장기흥행으로 유도했을 텐데, 이 경우 상영 중에 화제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어 지금 같은 흥행은 힘들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으로 일본에서도 기대작들이 줄줄이 개봉 취소 or 연기된 마당에, 무주공산이 된 일본 극장가를 '귀멸'이 장기간 독점하며 브레이크 없이 폭발적인 페이스로 기록을 경신해나갔죠.
물론 일본인들의 자발적인 거리두기 참여를 염두에 두고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했다고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만 보면 일본인들은 거리두기고 뭐고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 극장으로 몰려든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제가 생각하기에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모두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적지 않게 얻었던 것 같아요. 흥행은 타이밍이란 진리...
써놓고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아보이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려봅니다ㅋㅋ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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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복합적인 요인들이 뭉쳐져서 큰 인기를 얻게된 것 같네요. 인기스타가 탄생되는 것처럼 말이죠. 흥행은 역시 타이밍과 운과 실력과 노력..
그 중에 TVA 완성도의 따른 인기 급상승이 팬층을 많이 늘리게된 계기인 것 같아요. 만화책 원작을 뛰어넘게 연출하기 어려웠을텐데 그걸 해냈네요. 👍

저도 재밌게 봤지만, 확실히 운이 많이 따르기도 한것 같아요 ㅎㅎ

좋은 내용입니다
추천!!

극장판 본 다음 원작 무한열차편 부분 읽어보고
내가 봤던 멋있는 렌고쿠는 어디가고 어벙한 애가 있지 했네요
솔직히
원작이 본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작화와 연출이 양호해진건 유곽편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유곽편부터는 몰입되더라구요
만화판 무한열차는 실망해서 이걸 계속 봐 말아했었는데 유곽편은 술술 봤습니다


간혹 수위 넘는 개그씬에 오글 거리긴 해도 사지 댕강 액션 보면 이만한 애니도 없더라고요.
흥행순위는 1위일지라도 스토리부분은 정말 별로였다고 생각해요.
제작사를 잘 만나서 이정도로 유명세타는거죠.

과연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만한 정도인지, 그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너의 이름은, 해리포터, 겨울 왕국을 뛰어넘을 정도라니..
'귀칼이 인기가 많지~ 끄덕끄덕' 하다가도
저 4작품을 아득히 뛰어넘었다고 하면 고개가 갸우뚱합니다.

2020년 만화책이 8천만부나 팔렸어요
2위는 8백만부요 10배나 차이나는게 대단해요
애니때문에 더 많이 팔렸지만 만화책도 원피스처럼 늘어지지않고 빨리 끝낸게 좋았죠
그래야 나중에 만화책 2부도 나올수 있겠죠
탄지로와 친구들이 주가되면서 다시 도깨비 사냥하는거죠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층 잡은것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귀멸 팬 성비는 거의 반반수준이라고 하죠.
기존 소년점프 만화들 원피스,나루토,블리치,드래곤볼 이런건 아무래도 남초 쪽이었는데..
귀멸의칼날은 그간 소년점프만화들이 보여주었던 남자감성(특유의 허세,강함과 서열정리에 집착, 적과 싸움으로 친해짐)이 옅고,
서사도 나름 감정적으로 뽑아냈고
캐릭터들도 잘 뽑아냈죠.
젠이츠같은 캐릭터도 남자들이 봤을때는 저건 뭔 민폐 변태캐릭터냐 여자들이 엄청 싫어하겠네 하는데 정작 젠이츠는 여자들에게 인기순위 1,2위를 다투는 캐릭터죠.. 작가가 여자라 그런지 여자들에게 먹히는 요소들을 기가막히게 아는 듯 합니다.

저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훌륭한 분석 잘 읽었습니다. 저는 100% 유포테이블의 애니화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귀칼 원작의 구린 작화와 엉성한 마무리를 생각하면 절대 지금 수준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실제로 작품 초 하차 위기까지 갈 정도로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이후 인기가 회복했지만 그럼에도 역대급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애니화가 대박을 치면서 원작의 인기도 동반으로 급상습했죠. 결론 귀칼은 정말 천운을 타고난 로또급 작품일 뿐 그 자체가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애니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만화 원작만 보면 최대 1~2천만부가 정도 수준의 과대평가된 작품입니다.
오해가 있을 실 것 같아 첨가하자면 전 원작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유포테이블 애니는 정말 미치도록 좋아합니다.

초반 퀄리티가 조악하고 결말이 왜 이런가 싶지만... 열차편 이후 중후반부는 꽤 괜찮아서 대체로 재밌게 읽었네요 ㅎㅎ
연재 중단 위기는 루머인걸로 알아요.

TV판이나 극장판을 보고나서 느낀게 상당히 친절한 작품이에요.
누가봐도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되어있다보니 크게 어렵게 느낄 여지가 없어요.
그점이 진입장벽을 낮춘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사의 영향도 무시못하는게 만약 토에이, 선라이즈처럼 큰 제작사에서 만들어졌다면 26화 단위가 아닌 장기방영이 되면서 지금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극장가들도 꽤 놀랐을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이 이렇게나 인기가..?!!!!! 개인적으로 타이밍 진짜 굿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국내에서도 제 생각보다 더 흥하는거보고 놀랐네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센과치히로의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해서 좀 섭섭하기도 했지만...ㅎ 타이밍도 잘 맞았던거같고 작품자체의 원동력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인기있다는 주술회전애니를 보았는데 흥미로운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산만하고 밍밍한느낌..? 요즘 일본 애니들은 이런가 내가 나이가 들어 재미가 없어진건가 싶었는데 (일본애니 안본지도 정말 오래됐기도해서 ㅋㅋ 원피스 에이스때문에 난리났을때가 마지막이었나 그렇습니다...) 그렇게 난리났다는 귀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주인공 위주로 술술 빨려드는 전개 중간중간 기가막히게 확 포텐 터트리는 씬도 있어 희열감을 주고 말씀하신대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더라구요
거기다 작품을 관통하는 가족애라는 정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먹히는 것이기에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밖에 없구나 느껴졌습니다.^^
귀멸은 참...여러모로 저에게도 특이합니다...
20여년만에..미친듯이 빠진 작품이고...
처음으로 재패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을 사고...
결론적으로 다 떠나서 말씀중에도 있지만,
결국은 작품 좋아서 인것 같습니다!
얼마만에 내용과 퀄리티와 대중성까지 고루 잡은 작품은 만난건지..
부디 시장에서도 황금을을 낳는다고 배를 가르지 말고
지금 처럼 창작자들의 손에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제와 함께 개봉한 것이 테넷, 바이올렛 에버가든이었고 그 한달 뒤인 10월 말에 귀멸이 개봉하면서 극장 이용 제한이 많이 프리해졌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습니다.
개봉 첫 주말 낮 12시에 가보니 이미 저녁 회치까지 전석 매진이었네요. 스크린 5개나 배정했는데도...

아 귀칼이 일본 박스오피스 1위 차지했나요?
지브리나 마코토 팬들 중에선 배 아파하는 분들 좀 많겠네요ㅋㅋㅋㅋ 귀멸의 칼날이 결코 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일리가 없어 하면서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