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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 초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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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ur-out-of-space.png.jpg

 

1. 공포영화에서 색깔이라는 게 눈에 띈 적이 있나 떠올려 봤다. 아무리 생각에도 붉은 핏빛만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더 오래전에는 '우주생명체 블롭'이라는 컬트영화가 있었다. 젤리모양의 외계인이 사람 잡아먹는다는 내용인데 분홍색 젤리가 꼭 딸기맛 푸딩처럼 생긴 게 인상적이었다. 공포영화는 아니었지만 리메이크된 '고스트 버스터즈'도 강렬한 색감으로 눈을 현혹시켰다. '색감이 화려하다'는 것은 관객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화려함이 더 기괴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치 '미드소마'에 등장하는 메이퀸을 보는 것과 같다. 많은 공포영화들은 빛과 어둠으로 이뤄져있다. 어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밝은 순간을 앞에 깔아두고 어두워지면 살육의 축제가 시작된다('미드소마'같은 예외도 있다). 

 

2.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는 공포영화치고는 대단히 화려하다. 일단 공포를 주는 대상이 색깔(정확히는 빛)인 만큼 색이 주는 화려함을 최대한 표현한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색이 주는 화려함이 기어이 공포(혹은 징그러움)로 바뀌는 걸 보면 이 영화의 연출이 썩 괜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를 연출한 리차드 스탠리의 이름이 낯설어서 검색해보니 1996년 '닥터 모로의 DNA' 감독이었다가 퇴출된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무려 극장에서 본) '닥터 모로의 DNA'는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작품이었고 꽤나 괴상한 영화였다. 뭐 그리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 후 리차드 스탠리가 만든 영화 중 아는 영화가 하나도 없다. 사실상 나에게 이 감독의 데이터는 '0'인 셈이다. 

 

3.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활자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의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뒤져보니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꽤 많이 봤다('리애니메이터', '지옥인간', '리애니메이터2', '네크로노미콘', '매드니스', '데이곤', '비욘드 리애니메이터', '마스터즈 오브 호러: 마녀의 집'). 대체로 좋아하고 인상적인 공포영화들이다. 다른 영화들(대부분 스튜어트 고든-브라이언 유즈나 작품)과 비교해보면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는 한결 화려하고 장난이 심하다. 크리쳐로 조지던 이전 작품들의 정체성을 이어가지만 영화는 크리처 자체보다 가족의 불안과 무너지는 모습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에서 공포의 대상은 '빛'이며 그 빛의 부산물이 크리쳐다. 

 

4. 나는 영화를 본 후 러브크래프트가 언제적 사람인지 검색해야 했다. 영화가 가진 방사능에 대한 메타포가 너무 명확해서 이게 러브크래프트 원작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러브크래프트는 1890년에 태어나 1937년에 사망했다. 방사능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된 시기였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 방사능의 위험을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인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실제 방사능 물질을 넣은 어린이 장난감인 '길버트 U-238 원자력 에너지 실험실'은 1950년에 제작됐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표현하는 대부분의 장면들은 방사능 사고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자연적인 색채(형광분홍빛)를 띈 곤충이 알을 깨고 나왔다거나 빛을 쬔 엄마 테레사(조엘리 리차드슨)와 아들 잭(줄리안 힐리아드)이 기이한 형태로 변했다. 여기서 잭은 마치 테레사에게 붙은 암세포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테레사는 유방암 투병 중인 것으로 묘사된다. 농장의 알파카나 네이선(니콜라스 케이지)이 채취한 토마토 역시 방사능에 피폭된 기형 농식물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은 '핵폭발'이라고 우기면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다. 

 

5. 나는 방사능에 대한 이 같은 메타포가 러브크래프트에게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엄연히 리차드 스탠리의 아이디어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의 오래된(그러나 잘 만든) 공포소설에서 방사능에 대한 공포를 느낀 모양이다. 핵폭발이나 원전사고에 대한 공포는 온 인류가 비핵화, 탈원전을 이룩하기 전까지 항상 안고 살아야 할 숙제다. 그러나 리차드 스탠리도 감히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다음해에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킬 줄은. 때문에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가 묘사하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그리 무섭게 다가오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방사능에 대한 공포를 가장 오싹하게 표현한 작품은 HBO 드라마 '체르노빌'이며 앞으로 그보다 방사능에 대해 적나라하게 다루는 창작물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심지어 그 녀석은 픽션이 아니다). 

 

6. 다행히 크리쳐에 대한 묘사는 즐겁다. 얼마든지 CG를 쓸 수 있는 세상이지만 크리쳐에 한해서는 아날로그를 고집한다. 크툴루 천국에서 괴물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을 H.P. 러브크래프트와 스튜어트 고든이 보면 흐뭇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빛이 폭주하는 장면에서는 적당히 CG를 섞는다. 게다가 카메라 장난도 섞는 바람에 이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제4의 벽을 쥐고 흔든다.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는 나름의 확고한 메타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 메타포 빼고 다른 게 다 마음에 들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체르노빌'이 갑이다. 그리고 지금 피부로 와닿는 공포는 방사능보다 바이러스로 인해 무너지는 일상이다. 

 

7. 결론: 이 영화가 잘 만들었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그럼에도 메타스코어, 로튼토마토에서는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이 영화를 서비스하는 왓챠에서만 평점이 썩 좋지 않다). 기존의 표현방식과 다른 공포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공포는 벽장 속 괴물을 상상하는 것처럼, 빨간색 마스크를 쓴 가위 든 여자를 상상하는 것처럼 머릿 속에 그려야 한다. 그런 상상이 일관된다면 흥미는 금방 떨어진다. 실패한 공포영화들은 대부분 익숙한 법칙 안에 머문다. 성공한 공포영화들은 대부분 이전 영화들의 법칙을 비꼬거나 반대로 간다. 공포영화는 세상 모든 장르영화 중 가장 독창성을 요구한다. 러브크래프트나 스티븐 킹도 매 작품마다 이전과 다른 방식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늘 그런 공포영화가 보고 싶다. 조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도 전에 본 적 없는 공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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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3


  • jo_on
  • paul26
    paul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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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봐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던 작품인데 이번 기회에 봐야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1:29
20.12.11.
profile image 2등
보고 싶은 영화네요. 간만에 꽤 괜찮게 나온 러브크래프트 영화라던데..
10:01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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