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속 최초의 영화들, 들, 들

갑자기 삘이 와서 구상하다가 어제 저녁부터 대충 써본 글입니다 ㅎㅎ
영화의 역사는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등 다른 예술 분야보다 한참 짧고, 영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급격한 기술 발전이 이뤄진 20세기의 예술입니다. 그만큼 극심하고 현격한 변화를 겪은 예술이기 때문에 '영화'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이동한 변천사를 들여다보는건 흥미롭습니다.
글에서 다룰 영화들의 연식;;이 대체로 100년이 넘거나 그 가까이 되는 영화들이기 때문에, '무엇을 최초로 볼 것인가'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있습니다. 일개 대학생인 저는 그냥 검색해보고 다수가 인정하는 쪽으로 리스트를 만들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 최초의 영화 :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1895)
일반적으로 역사상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는 것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3월 만든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 입니다.
상영시간은 46초 정도로, 당연히 아무 내용도 없이 그냥 그 시절 공장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모습만 쭈욱 나오다가 끝납니다.
당시 '영화'라는 것의 개념은 이렇지 않았을까요? '벽에다 빛을 쏴주면 실제랑 똑같이 생긴 이미지가 살아 움직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PmG8ppUhSw
2. 최초의 상업 영화: 뤼미에르 형제의 단편 모음집? (1895)
정확한 명칭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저렇게 묶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는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 카페'라는 식당에서 1프랑씩 받고 역사상 최초의 유료 상영회? 같은걸 열었습니다.
물론 각각 1분도 안되는,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담은 10개의 영상을 이어붙인 모음집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나 봅니다. 엄청나게 신기한 구경거리가 있더라는 소문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뤼미에르 형제 하면 가장 유명한 작품일 <열차의 도착>이 이 단편들 중 하나였습니다.
3. 최초의 SF 영화: 달세계 여행 (1902)
프랑스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의 상영회를 보고 영화라는 매체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100여편이나 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직업 마술사로서 속임수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의 아이디어 덕에 당시 기준으로는 경이적일 만큼 창의적인 기법과 비주얼을 자랑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또한 이전까지 '영화'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 전시하는 것이었고 사람들도 그것에 만족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극영화', 즉 허구의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개념의 영화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작품들을 시초로 봅니다.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달세계 여행>은 대포를 통해 달로 쏘아보내진 과학자들이 모험을 한다는 내용으로, 최초의 SF 영화, 최초로 특수효과를 사용한 영화, 최초의 낭만주의 영화 등 많은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또한 불미스럽게도 최초의 불법복제로 피해를 본;;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필름이 복제되어 미국에서 쏠쏠히 팔렸는데, 그 범인은 토마스 에디슨... 파도 파도 괴담만 ㅡㅡ
4. 최초의 서부극: 대열차 강도 (1903)
12분 정도의 무성영화로, 제목 그대로 일단의 강도가 열차에 탑승해 기차를 턴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나온 수많은 서부극의 장르적 기초를 엄청나게 많이 제공한 작품이며, 영화의 극적 효과를 증대시키는 현대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최초의 영화들 중 하나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5. 최초의 애니메이션: 유쾌한 얼굴 (1906)
애니메이션의 시초는 오히려 영화보다 더 애매합니다. '애니메이션'의 정의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기 때문이죠.
막말로 학교 다닐때 그림 좀 그린다는 애들이 한번씩 하던, 책 귀퉁이마다 그림 여러개를 연속해서 그려놓고 좌르륵 훑으면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애니메이션이랑 같은 원리거든요. (플립북 애니메이션)
여기서 그 애니메이션이 필름에 담긴 것으로 한정해보면,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톤'이란 영국인이 제작한 유쾌한 얼굴 (Humorous phase on funny faces)을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인정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Gh6maN4l2I&feature=emb_title
6. 최초의 현대적 영화: 국가의 탄생 (1915)
대체 '현대적 영화'라는 것의 기준이 뭔데 최초를 정하냐고 하면, 장 뤽 고다르가 했던 "'국가의 탄생'을 기점으로 현대 영화와 그 이전이 나뉜다"는 말에 기댈 수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현대적 영화 문법의 시발점으로서 의의가 충분한 영화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데이비드 W.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현대적 서사를 완벽하게 구현한 영화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의 영화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클로즈업, 트래킹 숏, 로우키 조명 등 촬영기법이나 플래시백, 교차편집 등 시대를 앞서간 혁명적 연출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온 영화입니다.
한편 내용을 보면 야만적인 흑인들과 탐욕스런 북부 자본가에 맞서 악을 소탕하는 '정의로운 KKK단'의 활약을 그린,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 선동하기까지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점점 와해되어 내리막길을 걷던 KKK단이 <국가의 탄생>이 흥행한 이후 다시 무서운 기세로 부활했다는 것까지 고려할 때 이 영화가 끼친 사회적 해악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영화'를 한 편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걸 꼽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요즘에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초기 영화사에서 그리피스가 빼놓지 않고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등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진 영화입니다.
7.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
영화계에선 1919년 제작되어 종로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한국 영화로 봅니다. 하지만 <의리적 구토>는 무대 연극과 영화가 합쳐진 형태의 '연쇄극'으로, 100% 영화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본격적인 한국 극영화의 시초라고 할 만한 작품은 춘사 나운규의 1926년 작품 <아리랑>입니다. 24살의 나이에 감독, 각본, 주연배우까지 다 도맡아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항일 의식까지 갖춘 영화를 만들었고, 조선 민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나운규는 자기 이름을 딴 프로덕션 회사(!)를 설립해 35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영화 제작에 몸을 바쳤으니,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인물입니다.
아무튼 지난 2019년이 한국 영화 100주년이었고, 공교롭게도 <기생충>이란 걸작이 기록적인 성과들을 이루었던 해였죠.
8.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1927)
이전까지의 '무성 영화'에서 관객들은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배우가 과장되게 몸을 움직이며 연기를 하면 다음 장면에서 자막으로 대사나 극중 상황이 전달되는 식이었죠. 음악은 따로 녹음되어 영화에 덧씌우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상영장소 근처에서 직접 연주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인 <재즈 싱어>는 영화사를 뒤바꿀 혁명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배우의 목소리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다니!! 실제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은 노래 씬을 포함한 단 두 장면이었지만,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작품의 흥행으로 무성영화들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고,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유성영화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9. 최초로 CG가 쓰인 영화: 웨스트월드 (1973)
'쥬라기 공원'의 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이 각본, 연출을 맡은 SF 영화 <웨스트 월드>입니다.
인간들의 향락을 위해 건설된 일종의 테마 파크인 '웨스트 월드'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봉사하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들이 자아를 인식하고 인간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이고, 최근 HBO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리메이크되었죠.
영화사에서 나름 중요한 의의가 있는 작품인데, 바로 처음으로 CGI 그래픽이 도입된 영화라는 겁니다.
극중 인간을 사냥하는 안드로이드의 시점을 CG로 구현한 장면입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조악한 픽셀 화면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겠죠.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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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미에르 이전의 에디슨 영화도 영화라고 인정을 해야하는지,
<의리적 구토>도 연극과 영화가 결합된 형태라 최초의 한국영화라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니까요

<의리적 구토>를 시발점으로 보는 의견도 이해가 되지만, 저도 오늘날까지 성장한 한국영화의 태동이라는 관점에선 나운규의 작품들이 보다 의미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이런 정보 재밌네요! 영화사 공부하고 싶어지는 정보들,, 🤭😊


흥미로운 정보 감사합니다



내용을 좀더 보충하면
스토리가 있는 애니메이션의 첫 시작은 1908년 프랑스의 에밀 콜Emile Cohl이 만든 '팡타스마고리Fantasmagorie'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사', 황선길, 범우사, 31쪽)
위에 언급한 작품의 경우를 놓고 보면 1900년 ‘환희의 소묘The Enchanted Drawing’가 영상 혹은 기술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실험영화지만 영화 내 CG가 기술적으로 '처음' 사용된 예는 존&제임스 위트니 형제의 '카탈로그'(1961)입니다
이 사례는 애니메이션-CG의 첫 시도입니다
언급한 '이색지대'(1972)는 애니메이션-CG 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듯 합니다
전체 상영시간 105분 중 15분이 CG로 쓰인 작품은 스티븐 리스버그 감독의 '트론'(1982)입니다
이 부분도 전체 CG가 아닌 대만업체와 합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CG 영상기술을 합친 결과물입니다
관련기사 참고 https://news.joins.com/article/4124084


영화학과 아니어도 점점 전공자 못지않게 지식이 쌓여가네요^^
웨스트월드 CG 당시로선 그래도 획기적이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