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녀 (1972) 하녀의 재탕
김기영 감독은 하녀 한 편으로 이런 류의 작품을 끝냈어야 했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하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지 않았나 싶다.
김기영 감독이 계속 화녀, 충녀 등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더 심화시켜 나가고 그의 비젼을 더 확대해나갔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닌 듯 보인다.
하녀에서 히트쳤던 아이디어들을 재탕하고 심지어 그 아이디어들을
과장하기도 한다.
내가 김기영 감독 영화에서 보고 싶은 것은
끝도 밑바닥도 모를 거대한 비젼과
관습을 뛰어넘는 과격한 발상, 화려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마치 메스를 들 듯 날카롭고 의학적인 해부학이 영화에 적용된 것도.
김기영 감독이 하녀 시리즈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남궁원, 전계현, 윤여정은 아무래도 원작 하녀의 배우들인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에
좀 못미치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의견이 그렇다. 원작 하녀를 걸작 고전의 반열에 올린 것은
이들 배우들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의 연기에서 한가지 걸리는 점은,
영화가 멀쩡하던 처녀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맛이 간다는 내용인데도,
어째 멀쩡할 때도 불안정해 보인다. 아마 목소리가 불안정하고 떨리는 때문인가 보다.
내가 집주인이라면 이렇게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을 하녀로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깨져서 시적인 뉘앙스나 함축성이 부족한 듯하다.
충녀는 사탕섹X 등 1970년대 영화 특유의 사이키델릭함이 가미된 것이 흥미로웠다. 김기영 감독은 아다시피 시대의 조류를 아주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 반영했다. 아마 지금 살아있었으면 방탄소년단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남자가 무기력해지고 여자들 사이에서 남자를 놓고 거래를 한다는 설정도 원작 하녀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도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요소의 도입이 이 영화 충녀를 원작 하녀와 독립시켜 볼 정도로
거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 충녀는 대중영화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미 그것은 원작 하녀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흥행에는 성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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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작품이 우리나라 영화들 중에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충녀는 그것이 잘 살아난
영화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위기가 외면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철학적 주제와 결합된 수준 높은 것이었지요.
에너지가 충만한 작품이기도 하고. 대가의 작품이니 대가의 정신력과 비젼이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미 영화사에 남게 된 작품임은 의심할 바 없구요.
그래도 ...저도 충녀만 좋아하지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복제 생산해내는 건 별로더라고요;
하녀가 가장 시대를 앞서간 느낌으로 고급스럽긴한데 저는 충녀의 초현실적인 면들이 좋더라고요
난데없이 흡혈귀가 등장한다던가하는;;;
하녀 시리즈는 딱 충녀만 좋아합니다. 사실 충녀가 김기영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여서 스크린에 걸렸을 때도
두 번 봤는데 외국어 자막이 붙어있는 아주 열악한 판본 뿐이었고
제대로 복원된 버전(불가능한 건지?)을 보고 싶더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