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 실사판
자크 드미 감독, 1979년작.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만화로 대박치고 나서는 타카라즈카극으로 각색되어 다시 대박을 칩니다. 글고는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서 또 대박.
장르를 바꿔가며 3연속으로 대박을 쳤으니 영화계에서도 대박을 노려볼만하지 않겠습니까...
키티필름(나중에 '란마1/2', '세일러복과 기관총'등을 만드는 회사)이 총대매고 토호(타카라즈카와 자매회사)와 니혼테레비('베르사이유' 애니메이션판의 방송국)도 동참했습니다. 글구 화장품회사인 시세이도도 참여했습니다. 여자들이 주된 고객이 될 영화니까...
근데 문제가 있네요. 이게 내용상으로 일본에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라는 거죠. 작중 일본인 캐릭터는 한명도 안나오고 순전히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물입니다.
만약에,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2000년대에 나온 만화였다면, 시치미 뚝 떼고 일본배우(아마도 아이돌)한테 가발씌워서 영화로 만들었을 거라는데 오십원쯤 걸 수 있습니다만... 70년대는 아직 일본 영화계가 그정도까지는 아니던 시절이죠.
별 수 있습니까. 프랑스 사람들한테 만들어달라는 수밖에... 그래서 프랑스 영화인에게 하청을 줘서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뭐 비슷한 예가 없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추억의 명화로 기억되고 있는 [라스트 콘서트]같은 영화도 일본자본으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영화였죠.
근데 [라스트 콘서트]는 일본 자본이 들어갔어도 일단은 겉으로는 유럽영화입니다. 그래서 반쯤 일본영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죠. 그치만, 이 '베르사이유 장미' 영화판은 크레딧에 표기된 제작자들 이름이 전부 일본사람들입니다. 거기에 제작및 스폰서로 참여한 일본 회사들 이름이 큼지막하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일본영화라는 걸 숨기지도 않는 거죠.
아니 애초에 그시절에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컨텐츠 자체가 일본 말고 다른데 어디서 통했겠어요. 당시는 지금처럼 일본산 망가가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그런 시절도 아니고... 그니까 뭐 처음부터 일본 내수시장 보고 만든 영화인 거죠.
하청을 받은 프랑스 영화인이 자크 드미. 음악 파트너인 미셸 르그랑도 같이했습니다. 의외로 거물이죠. 이런분들이 뭐하러 이걸 수락했을까 싶을 정도로...
근데 여기서 슬슬 졸부 마인드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의 내용을 잘 알고, 자크 드미의 작품 경향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양반한테 이 작품의 연출을 맡기지는 않을 겁니다. 근데 뭐 걍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이니까... 하고는 질러버린게 아닌가 싶은... 뭐 자크 드미가 본국보다 일본에서 인기가 더 좋기는 해요.
거기다 또... 사장님 마인드가 느껴진다싶은 것이... 영화가 영어로 제작되었습니다. 아니 기껏 프랑스에서 프랑스 영화인을 기용해서 만들었잖아요. 근데 영어가 웬말입니까.
근데 뭐 아시아인들에게 영어 컴플렉스같은 게 있긴 하죠. 코 크고 눈 파란 사람=영어쓰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다 지금도 홍콩 영화 같은데선 백인 배우가 나오면 국적불문하고 영어를 쓰는게 당연시되니까...
배우들 구성에도 주요출연진들에 프랑스인은 보기드물고 영국이나 독일계들이 많습니다. 다국적 캐스팅 때문에 어쩔수 없이 영어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근데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 앙트와네트는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가 연기하고 있어서 묘한데서 리얼리티를 챙기고 있습니다.)
뭐 배우들 캐스팅은 비주얼적으로는 괜찮은 편입니다. 원작에 비해 심하게 위화감이 느껴지지도 않고... 그건 뭐 원작이 만화적으로 심하게 과장되거나 특색이 있는 그림은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프랑스 감독이 프랑스에서 찍은 영화니만큼 프랑스라는 나라를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본인들 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실제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였습니다. 보통은 촬영허가를 잘 안내준다는데 특별사례라든가... 그래서 그림은 꽤 근사하게 뽑혔습니다.
글구... 아마 이 영화의 장점은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자크 드미가 직접 각색까지 했습니다. 원작이 프랑스 역사를 거의 그대로 가져가면서 양념을 친 스토리니까 프랑스인이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는 이야기겠죠. 그치만 30년이 넘어가는 장대한 이야기를 두시간으로 압축해버렸으니 무리가 생깁니다. 오스카ㄹ의 탄생부터 프랑스혁명 당일까지를 한편의 영화에 죄다 집어넣어버렸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막 날아갑니다. 원작을 봤거나 프랑스 역사를 알고있는 사람이 아니면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중요 캐릭터들 다수가 중간중간 잊을만하면 가끔씩 얼굴을 비치는 역할로 전락해 왜 나왔는지 모르게 되었고, 오스카ㄹ과 마리 앙트와네트의 유대도 거의 느끼기 힘듭니다. 간신히 앙드레와 오스카ㄹ 두사람의 관계 정도만 이해가 될 정도...
프랑스 혁명이라는 주제와 주인공들간의 연계도 원작을 모르고 보면 너무 건성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야할 혁명의 묘사는 너무 저예산 티가 나서 김이 빠집니다.
표면상으로는, 10억엔이라는 당대로서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거작입니다.
근데 10억엔이 일본 영화계에서는 거액이었지만 월드클래스로 가면 그렇게까지 큰 돈도 아니고... 프랑스혁명같은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하다 볼 수 없죠. 아마도 베르사이유 대궁료도 만만치 않게 냈을테고요^^;
원작팬들에게 가장 불평을 들었던 건 주인공 오스카ㄹ이었습니다.
오스카ㄹ 역은 이 영화로 주연데뷰를 하게된 카트리오나 맥콜. 당대의 유명배우들에게 오퍼는 넣어봤다고 하는데 결국 무명배우가 캐스팅되었습니다.
근데 여기 나오는 오스카ㄹ은 남자다움이 많~이 부족합니다. 오스카ㄹ이 애초에 여자여자한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배우가 욕을 많이 먹고있지만 주연데뷰하는 무명배우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자크 드미가 오스카ㄹ의 캐릭터를 이해못한 거죠.
영화의 결말도 원작과는 다릅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오스카ㄹ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못한채 휩쓸리기만 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애처롭게 헤어지는 걸로 끝이납니다.
그니까... 원작팬들이 보기에는 용서가 안될 정도로 핵심부분을 바꿔버렸고... 원작을 모르고 보면 정신없어서 정리가 안되는 이야기...
일본내 흥행은 9억엔을 넘겨서,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작비가 10억엔. 일본말고 딴데서 더 보충할 일도 없고 해서... 망했습니다.
팻시 켄짓이 어린시절의 오스카ㄹ로 나왔습니다.
여장(?)한 오스카ㄹ
시세이도 공장을 방문한 카트리오나 맥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 표정이 '왠 양ㄴ이 일하는데 찾아와서 귀찮게하나...' 싶기도...
맥콜 여사는 몇년후 루치오 풀치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포텐을 터뜨리게됩니다.
sattva
추천인 14
댓글 7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오스칼 비주얼은 나빠보이지않는데 일본 다카라즈카쪽에도 레전드들이 있다보니 미묘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
애니는 오리지날 주제가 가사가 눈물날 정도로 가슴을 후벼파서 찡했는데 ...
이 영화는 예고편만 옛날에 봤었네요. 음? 하고 놀랐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