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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퍼'(1982) 초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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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영화'에는 그 시대만의 정서가 있다. 만약 그 '옛날 영화'가 시대를 아우르는 걸작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영화들은 '세계영화사'의 몇 페이지에 기재된 영화들(혹은 기재된 작가들의 영화)이 전부다. 한 시대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상업영화들은 그 시대에 머물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몇 년 전 나는 옛 기억이 떠올라 김성수 감독의 '비트'를 다시 봤다. 분명 그때는 멋있고 세련된 영화였는데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도저히 못 들어줄 대사가 귀를 때렸다. 그래서 옛날 영화를 보는 일은 때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현재의 정서'다. 간단히 말해 "그땐 그랬지"라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야 옛날 것을 즐길 수 있다. 

 

2. 루치오 풀치의 '뉴욕 리퍼'는 무려 1982년에 만들어진 '옛날 영화'다. 시작부터 80년대 뉴욕 다리 밑이 등장하고 개가 잘린 손을 물어오자 레트로 범죄수사물에 걸맞는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온다. 2020년에 이 음악은 "이야 레트로 갬성이다"라며 즐길 수 있다. 레트로가 유행하는 시대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찐 레트로'다. 시그널 음악뿐 아니라 뜻밖의 핸드헬드나 지나친 패닝, 급격한 줌인은 이것이 80년대 정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연하다. 이 영화는 이탈리안 호러의 거장 루치오 풀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3. 루치오 풀치의 영화를 많이 보진 못했다. '좀비2'하고 '뉴욕 리퍼'를 보긴 했지만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이번에 '뉴욕 리퍼'를 다시 본 것도 다 까먹어서 다시 봤으니 사실상 루치오 풀치의 영화를 처음 봤다고 해도 된다. 내가 아는, 익숙한 이탈리안 호러는 다리오 아르젠토나 람베르토 바바, 미쉘 소아비의 영화가 전부다. 그들이 만든 20세기 이탈리안 호러의 특징을 종합해보자면 대단히 거칠고 투박하지만 묵직한 한방이 곳곳에 있다. 현악기 중심의 음악을 쓰던 미국 공포영화와 달리 이탈리아는 신시사이저와 일렉기타가 난무하는 바로크 메탈을 사용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호러는 음악이 공포를 배가시키진 않는다. 대신 음악 듣는 재미가 미국 공포영화보다 한껏 풍성하다. 색감이 굉장히 화려하다. 아르젠토 특유의 스타일일수도 있지만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도 아주 화려한 색감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4. '뉴욕 리퍼'는 미국 스릴러 영화 느낌을 많이 살린다. 앞서 언급한대로 형사영화에 어울릴 법한 음악을 쓰고 형사와 살인범의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된다. 형사가 살인범이 멀리 있고 이들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건을 해결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이 영화의 만듦새는 공포영화와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자. 이 영화가 긴장감을 주는 방식은 38년이 지난 지금봐도 훌륭하다. 공포영화가 살인씬에서 긴장감을 주는 것은 잔뜩 조이다가 빵 터트리는 방식이다. 공포영화를 자주 본 관객이라면 한창 조이고 있을 때 "이때쯤 터트리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뉴욕 리퍼'는 그 예상지점에서 거의 모두 빗겨간다. 공포영화의 흔한 공식에서 몽땅 빗겨간다는 의미다. 이것은 현대 공포영화도 이르지 못한 창의적이고 신선한 발상이다. 

 

5. 반면 이야기는 허술하다. 내가 봤던 왓챠플레이 영상의 자막탓일 수 있겠지만 내용을 쫓아가기 어렵다. 쫓아가더라도 허점이 자꾸 보인다. 대충 사건을 수사하다보면 "언젠가 잡겠지" 혹은 "쟤가 범인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보면 된다(물론 그러다 보면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식 형사물 이야기 하나 꾸려놓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난도질을 마음껏 한다. '뉴욕 리퍼'에서 이야기는 살인장면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6. 이탈리아 감독이 만든 이탈리안 호러영화지만 동시대 미국 호러영화와 통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시점샷'을 쓰는 방식이다. 동시대 미국 호러영화의 대표작인 샘 레이미의 '이블데드'에는 악령의 시점에서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은 샘 레이미는 없는 살림으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악령의 시점샷으로 마구 내달리며 찍었다. '뉴욕 리퍼'에서는 범인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범인의 시점으로 찍는 장면이 꽤 등장한다. 이 장면들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인식하면서 보면 영화가 건네는 어설픈 추리게임의 룰을 찾을 수 있다(잊지 말자. 이 영화는 난도질씬이 주인공이 이야기가 장신구다). 

 

7. 결론: '찐 레트로 갬성'을 느끼고 싶다면 '뉴욕 리퍼'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다. 다만 자막은 누가 좀 새로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다, 자막마저도 어쩌면 그 시절 비디오테이프에 적합한 자막일지 모르겠다. 

 

 

추신) 내친김에 루치오 풀치 영화를 몇 개 더 볼까 싶다. 현재 왓챠플레이에는 '검은고양이', '비욘드', '무덤 위에 세운 집', '시티 오브 더 리빙 데드', '좀비2'가 서비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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