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숲


감독, 극본 : 송일곤
주연 : 감우성, 서정 등등
(스포일러가 있읍니다. 영화를 않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는 있게 마련이다. 좋은 일이라면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사건들은 금방 잊혀지고 어둡고 암울한 일들은 오래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야금야금 마음속을 파먹어서 틈만 나면 괴로움과 비탄에 빠지게 만드는 일이 빈번하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사람이 나이가 먹어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다 보면 별 해괴한 일을 다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일들은 뇌리에 깊은 상처를 남길수도 있는 것같다.)
일반인들에게서 위와 같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어린 시절 좀 특이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뇌리의 상처가 더 깊게 패이고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경우에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당사자는 정신 분열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고 향후 인생을 설계하는데 큰 지장을 받을지도 모른다. (영화 '거미숲'을 찬찬히 뜯어 보면 위와 같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 '꽃섬'이나 '깃'을 보면 스토리의 전개가 논리적이지 않고 무언가 초현실적인 것같기도 하며서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가끔 등장한다. 헌데 '거미숲'의 경우는 이런 경향이 매우 심한 편이다. 작품이 제작된 시기는 '꽃섬 --> 거미숲 --> 깃'의 순서인데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은 '깃'이 가장 돗보이는 듯 하고 가장 난해하고 악몽을 꾸는 듯한 내용 전개는 '거미숲'이 최고인 듯 하다. '꽃섬'의 경우 그 중간 정도 된다고 여겨진다.
처음 영화 '거미숲'을 볼 때에는 스릴러 장르를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주인공인 강민 (감우성 분)이 외딴 숲(거미숲)에서 깨어나 한 산장에 들어가 보았더니 애인과 직장 상사가 피범벅이 되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범인을 추격하다가 차에 치여 정신을 잃고 뇌수술을 받은 뒤 깨어나 형사인 친구를 불러 사건 수사를 부탁하는 부분까지... 영화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당사자가 주인공임을 제시하면서 그 후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좀더 영화를 보다 보면 꽤 혼란에 빠지면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거미숲'이라는 장소 자체가 주인공의 복잡한 머리속과 그 속의 기억들이 얽힌 장소인 듯한 착각을 유발하면서 논리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스토리를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 엉켜버리고 만다. 영화의 말미에 가서 어느 정도 실마리가 제시되면서 대부분의 난해한 내용들이 풀리기는 하는데... 나중에는 영화의 난해함 그 자체도 꽤 즐길만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진짜 스포일러입니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여기서부터 다양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는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강민'은 어린시절부터 매우 불우한 기억들로 점철된 인물이다. 이런 불행한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티까움을 유발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소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의 강민이 목격하는 소녀의 어머니와 낯선 남자와의 섹스, 그리고 이어지는 살해 장면은 강민의 기억속에서 지우고 싶은 장면들 중 하나가 가공된 것이라고 보아야 스토리가 풀린다. 즉, 소녀의 어머니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강민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샘이 된다. 부모의 성관계를 직접 목격한 것만으로도 큰 트라우마가 될 터이데 친모가 친부로부터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사람의 정신 세계가 온전해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유년기에 이런 악몽같은 기억은 주인공 '강민'의 무의식에 깊게 남겨지게 되며 다중 인격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방송국 PD로 근무하면서 결혼을 하지만 아내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비운을 맛본 뒤로 삶을 이어나갈 동기 자체를 잃게 된다. 이 때 방송국 리포터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청혼까지 하게 되지만... 애인이 직장 상사와 거미숲의 산장에 머물 것이라는 낯선 남자의 제보를 받은 주인공은 산장에서 이들이 정사를 벌이는 것을 목격하고 경악을 하게 된다. (실제 이 장면은 남자인 내가 봐도 상당히 가학적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할 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섹스를 목격하고 나이가 들어서 애인이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에게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 런지?
암튼 주인공은 이중 인격 장애가 있어서인지 격분하여 애인과 직장 상사를 낫으로 찍어 죽이고서도 그 사실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죽여 놓고 누군가가 살해한 것을 발견한 것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과 산장에서의 살해에 대한 기억을 되찾으면서 (무의식과 분열된 인격에서부터 기억을 되찾는 샘이다.) 주인공에게 영화의 배경이 되는 '거미숲'은 지옥이 되버리고 만다.
하지만 '거미숲'에는 음침한 기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잊혀진 영혼이 자신을 기억해줄 때까지 헤매이는 곳이 바로 거미숲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주인공에게 잊혀진 영혼은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소녀'로써 영화에서는 열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소녀'의 이미지가 성인이 된 주인공에게는 죽은 아내와 매우 닮은 거미숲 근처의 사진관 여인으로 변하게 되는데... 영화의 첫부분과 마직막 부분에서 음침한 초겨울 밤의 거미숲을 배경으로 클로우즈업되는 이 여인은 주인공에게 어린 시절 친모 살해 사건과 연루되어 무의식속으로 잊혀져 버린 존재이지만 결국 주인공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의식과 분열된 자아로부터 기억을 되찾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송일곤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를 보면서 '거미숲'이라는 곳 자체가 주인공의 불우한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뒤섞인 머리속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는 죽은 소녀가 사진관 여인으로 변모되어 클로우즈업되는 장면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이 때 깔리는 배경 음악 또한 오프닝 트랙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느낌이 든다.
송일곤 감독은 감독과 함께 이 영화의 극본까지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그의 머리속도 참 복잡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한 뒤 머리도 풀겸 휴식을 취하러 제주도에 머물면서 자신의 자전적인 영화 '깃'을 구상하게 되고 열흘 만에 찍었다고 한다. 여튼 송일곤 감독은 범상한 인물은 아닌 것같다. 그의 영화는 앞으로도 꼭 챙겨보아야 할 듯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주인공 '강민'은 참으로 불행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소녀는 열병으로 죽고 성인이 되어 결혼한 아내는 비행기 사고로 죽고 이후 애인은 바람이 나서 자신의 손에 낫으로 찍혀 죽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사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애인이 바람 피우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니...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암튼 이 영화는 스토리가 난해하긴 하지만 음산하고 어두운 거미숲의 배경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어우러진 괜찮은 작품인 듯 하다.
그리고 영화의 교훈은... '애들이 보는 앞에서는 섹스를 하지 말라'알까?
후기 : 극중에서 강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이는 엠비씨 드라마 '단팥빵'에서 최강희의 제자로 나온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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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난해하지만 흥미있게 본 영화 입니다..
23:40
08.04.10.
2등
이와 비슷한 구성의 무의식을 소재로 한 영화가 몇개 더 있죠. 스테이, 야곱의사다리, 도니다코 등등...... 많이 난해하면서도 전부 제가 아주 즐겨 봤던 영화들이군요. 아마 송일곤 감독도 위의 비교적 오래전 나온 영화들 중 일부를 참고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23:40
08.04.10.
3등
서정 씨가 참 예쁘게 나왔었죠 ... 강경현씨도 인상적이었고요 ...
이런 류의 영화들은 굳이 이야기를 억지로 이해하려기보다는 그냥 그 분위기를 즐기면서 보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 그러다 보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구요 ... 이 영화도 그냥 그 시적인 분위기을 감상 포인트로 잡고 보다 보니까 그리 복잡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 굉장히 몰입하면서 봤었어요 .....
이런 류의 영화들은 굳이 이야기를 억지로 이해하려기보다는 그냥 그 분위기를 즐기면서 보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 그러다 보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구요 ... 이 영화도 그냥 그 시적인 분위기을 감상 포인트로 잡고 보다 보니까 그리 복잡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 굉장히 몰입하면서 봤었어요 .....
23:40
08.04.10.
스포일러 있다고해서 잽싸게 당겨버린..텔비에서 종종 해주던데 항상 타이밍을 놓치고 있네요
23:40
0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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