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뽑는 <블랙미러> 최고의 에피소드 - 시즌1 ep2 <핫샷> 리뷰(약스포)

사실 블랙미러 팬들에게 최고의 에피소드를 꼽으라고 물어보면 대게 <공주와 돼지> 내지는 <밴더스내치>를 뽑는데요, 저는 이들에 비해 인기는 다소 떨어지지만 메시지만큼은 블랙미러 시리즈 중 가장 블랙미러다웠던 <핫 샷>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블래미러는 검은 스크린에 얼굴이 비치는 모습이 마치 거울과 같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미디어를 사용하는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고 성찰해보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블랙미러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저는 시즌 1의 두 번째 에피소드 <핫 샷>이 이 시리즈에 가장 부합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핫 샷>은 소비주의와 허상의 세계를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겟 아웃>으로 얼굴을 알린 대니얼 칼루야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핫 샷>의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사람의 시선이 가는 그 어느 곳에도 스크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스크린에서는 마치 팝업 광고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극적인 광고가 나옵니다. 광고를 스킵하기 위해서는 메리트(이 세계관의 화폐)를 지출해야 하며 광고에서 눈을 떼면 컴퓨터가 이를 인식하여 경고음을 냅니다. 즉 돈을 내지 않는 이상 광고를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드라마 속 상황이 극단적이긴 하나, 본질적으로 우리의 생활상과 크게 다른지 반문하게 됩니다. 유투브 영상 하나 보기 위해서도 짧게는 5초 길게는 15초에 달하는 광고를 봐야하며, 광고를 없애주는 기능은 아예 유투브에서 자체적으로 상품화하여 유투브 프리미엄으로 판매합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광고에서 눈을 뗀다고 경고음이 나오진 않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사실은 우리에게 광고를 보지 않을 선택사항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핫 샷>의 스크린에서 나오는 광고나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가 흔히 보는 그것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광고는 자극적이며 우리가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허상의 욕구를 주입시킵니다. 정작 <핫 샷>의 인물들은 모두 무미건조한 회색 체련복을 입으면서 인터넷 속 "도플"(본인의 아바타)을 멋있게 꾸미기 위해서 돈을 지출합니다. 얼마나 이런 소비가 무의미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방송 프로그램 또한 광고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 자극성에 의존합니다. 뚱뚱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fat-shaming 프로그램부터 포르노에 가까운 성인방송까지 스크린 속 자극의 향연에 인물들은 점점 무뎌져 갑니다.
<핫 샷>의 세계관에서 또 하나 재밌는 것은 '헬스용 자전거를 돌려 돈을 번다'는 설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허무맹랑하지만 비유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영리한 묘사입니다. 다수의 일반 계층 사람들은 마치 제자리에 고정된 헬스용자전거를 하염없이 돌리듯 반복적이고 지루한 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일상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자전거 앞에 부착된 tv의 자극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크린 속 세계는 도피의 세계로서 일상의 지루함과 반복성에 의해 갈구하게 되는 욕구를 '허상으로'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돌리는 지루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핫 샷"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tv 프로그램에 스카우트 되는 것입니다. 대니얼 칼루야가 연기한 주인공과 그의 친구는 어떠한 계기로 핫 샷에 출연하게 되는데, 그의 친구는 재능을 인정받아 tv 프로그램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습니다(물론 이 과정이 그리 유쾌하게 그려지진 않습니다). 거기서 한 심사위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봐, 너가 그걸 고민하는 건 너를 보기 위해 (자전거를 돌림으로써) 이 스포트라이트의 동력을 제공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맨날 자전거를 돌리는 삶보다는 이게 낫지 않겠어?" 이 대목에서 <핫 샷>이 그려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매커니즘이 드러납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tv 스타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다시금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생산해내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되고, 이들을 보기 위해 일반 계층의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자전거를 돌리며 이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하는 동력을 제공합니다. tv를 보며 스타의 꿈을 꾸는 또 누군가는 "핫 샷"에 도전할 것이며, 똑같은 과정을 거쳐 다시금 이 자생적인 악순환이 돌아가도록 기여할 것입니다. 결국 하루하루 괴롭게 자전거를 돌리며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타가 되기를 노력하지만, 정작 스타가 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를 열심히 돌리게끔 만드는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버려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자전거 돌리기가 정당화되도록 기여하는 모순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자전거를 돌려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우리가 지배받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 속 미디어의 본질이자 그것을 영속하게끔 하는 무서운 힘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말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을 주는 반전의 결말이 나오는데요, 우리가 동력을 제공하는 시스템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하고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정말 한 편 한 편 다 주옥같은 넷플릭스 <블랙미러>, 그 중에서 시즌 1 에피소드 2 <핫 샷> 아직 안 보셨다면 강력 추천합니다!
앞에 에피소드가 워낙 세서 좀 묻혔지만 이 에피소드도 의미심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