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꼽은 <블랙 미러> 최고의 에피소드 (시즌3 스포)

<블랙 미러>는 20여개 에피소드 가운데서 수작 아닌 것이 많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꼽은 블랙미러 최고의 에피소드는 '샌 주니페로'입니다. (시즌3 - 4화)
------------- 밑으로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일단 전체적으로 음울한 <블랙 미러>의 여타 에피소드와는 사뭇 다르게 꽤 로맨틱하고 서정적인 에피소드인 것이 굉장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굉장히 드문 해피엔딩이구요ㅎㅎ
초반의 감성적인 분위기와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보고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는 퀴어 로맨스일줄 알았는데, 역시 블랙미러는 쉽게 가는 법이 없죠. '샌 주니페로'에서도 어김없이 흥미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합니다. '인간의 의식'을 가상 공간에 업로드하여, 죽음 후에도 의식을 가진 채로 사실상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기술입니다. 물론 살아있을 때에도 의식을 업로드하여 가상 공간과 현실을 오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샌 주니페로'라는 공간이 이 기술을 통해 공유되는 일종의 '가상 사후세계'임이 임팩트 있는 반전으로 밝혀지고,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충격적인 실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굉장히 깊고 설득력 있는 갈등 구도를 형성합니다. 본질적인 질문은, 사후세계를 전제로 한 삶의 가치는 과연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리고 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배우, '구구 음바사 로'와 '맥켄지 데이비스'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고뇌로 가득 찬 본인들의 배역을 더없이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덤으로 샌 주니페로의 공간을 시대별로 오가면서 70, 80, 9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 레퍼런스를 깨알같이 담았는데, 다시 보면서 이런걸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었죠ㅋㅋ
위에서 말한 이런저런 장점들은 다 집어치우고,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먹먹하고 아름답습니다. <블랙 미러> 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이 나왔어요... ㅠㅠ
사실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엔딩이 마냥 행복한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좀 있었습니다. 기술을 통한 죽음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제시하고 있지만, 막상 그 사후세계에서도 자극과 향락에 중독되어 망가진 사람들이 넘친다는 묘사가 있거든요. 그리고 수많은 망자들의 의식이 데이터베이스에 일괄적으로 업로드되어 보관, 관리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블랙미러>의 디스토피아적 성향을 생각해 보면 썩 안심이 되는 설정은 아니구요.
모두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저는 이 에피소드를 해피엔딩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엔딩 장면의 기가 막힌 선곡과 아름다운 연출 덕분이죠.
이런 결말은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ㅠㅠ
8~90년대 인기 영화 포스터들 붙어있는 거 되게 좋더라고요.
보글보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