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천하의 시작] 장예모, 비극의 시작

'영웅'은 2003년, 그러니까 제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개봉했던 영화인데요. '영웅'은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 견자단 등 중국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홍등', '귀주이야기' 인생'등의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즉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몇 안되는 감독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는데요. 장예모의 감독 작품은 '영웅' 이전과 '영웅' 이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 중 '영웅'이 차지하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어렸을 적에 케이블 TV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스크린으로는 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 재개봉을 통해서 '영웅'을 다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전국 7웅이라 불렸던 막강한 일곱국가들이 지배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대륙. 각각의 왕국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전쟁을 일삼고, 그 중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는 진나라 왕 영정(진도명)은 대륙 전체를 지배하여 첫번째 황제가 되려는 야심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영정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었으니, 전설적인 무예를 보유하고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노리는 세 명의 자객 은모장천(견자단)과 파검(양조위), 그리고 비설(장만옥)이 바로 그들이다. 이에 영정은 자신의 백보 안에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백보 금지령을 내리고 현상금을 내걸어 그들을 사냥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지방에서 백부장으로 녹을 받고 있는 미천한 장수 무명(이연결)이 정체 모를 세 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영정을 찾아와 왕궁이 술렁이기 시작하는데...
'영웅'은 시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맨처음, 이연걸이 궁궐에 입장할 때 동원된 엑스트라는 CG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꽤 유명한 에피소드인데요. 적색, 청색, 황색, 녹색, 백색 등 화려한 색깔 옷으로 관객을 홀리는가 하면, 구채구, 장가계 등에서 촬영된 웅장한 스케일은 다른 나라 영화에서는 쉽게 보지 못할 절경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영웅'에서는 와이어 액션이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와이어 티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현대 무술 영화에서는 느끼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만 시각적 요소에 비해 영화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화 속 각 캐릭터는, 중국의 고대 사상을 상징하고 있는데요. 영화속 장천(양조위)은 공자의 유가사상을, 무명(이연걸)은 맹자의 호연지기를, 파검(견자단)은 노자의 도가사상, 시황제(진도명)는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입니다만, 100여분의 러닝타임 속에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은 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간단한 이야기를 돌고 돌아서, 또 늘리고 늘려서 지루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배우들 또한 영화의 시각적 효과를 위해 낭비되고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양조위, 이연걸, 장만옥, 장쯔이, 견자단 등 유명 중국스타들이 총출동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돋보인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가 바뀌기 시작한 기점을 대부분 '영웅'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는 스케일은 작지만 묵직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영화를 주로 연출했는데 반해, '영웅', '연인', '황후화'는 장예모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의 블록버스터 영화지만, 속이 텅 빈 중국식 블록버스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상당합니다. 이는 중국 인민당의 정치적 야심과 장예모 감독이 만난 결과물이라고 보여지는데요. '홍등', '귀주이야기', '인생', '집으로 가는길' 등의 장예모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던 관객들에겐 거의 변절자, 배신(!)이라는 표현에 가까울 지경이죠. 그 후 '산사나무 아래'같은 작품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장예모 감독의 작품관에 대한 지적을 의식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영웅'은 상반된 평가가 존재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시각효과에 있어서는, 중국식 블록버스터를 구현했다고 할 수 있을만큼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입니다만, 이 영화를 연출한 장예모 감독의 그 동안의 필모그래피를 살펴 봤을 때, 영화에 정치성이 더해지면서, 그의 작품관에 대한 변화가 아쉬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뜬금없으면서도 허무하고, 강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장예모 감독이 '영웅'이라는 작품을 통해 10보 전진했다면, '영웅'이전의 작품들에 대해서 영원히 멀어져버리면서 20보 후퇴해버린 인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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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을 좋아해서 재밌게 봤었죠. 장예모 감독이 말하는 바에는 동의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황후화가 절정이었죠 색감의 표현은 특히 금색을 위주로한 피빛은 현란했습니다..

개봉관이 서울에 없어서 포기하고 다른 분에게 예매해 줬어요...
영웅이 터닝 포인트였죠 황후화에서 제대로 노골적으로 변하기도했구요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동의하기 힘들었지만. 눈은 호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작품 이후로 중국식 블록버스터는 이래야 한다는 공식 같은게 생겨서 되다만 장예모 감독 스타일의 영화가 꽤나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영웅 이전과 이후의 장예모 영화들은 확실히 달라졌죠.
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