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링의 13소녀 - 金陵十三釵 The Flowers of War (2011)

야만적인 전쟁과 영웅적인 희생
장예모의 <The Flowers of War>는 일련의 난징대학살을 소재로 한 중국영화들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소재로 한 영화를 중국이 계속 제작하고 있는 것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은가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군이 난징에 쳐들어가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쟁은 그 어떤 것이라도 비인간적이고 반인간적이지만, 일본군이 난징에서 벌인 행위는 그 정도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때, 즉 1937년 난징을 배경으로 한다.
엄가령의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에는 백인인 크리스천 베일이 출연한다. 아무리 이 영화가 장예모가 연출을 했더라도, 아시아의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백인이 나온 영화라면, 그 내용이 어떨지 대충 짐작을 하게 된다. 그 백인이 휴머니즘적 행동을 하게 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을 때,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어린 소녀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뛰고 있다. 겨우 중학생이나 되었을 그 소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때, 난징을 지키던 마지막 중국군은 그 소녀들을 지키기 위해 후퇴를 지체하게 되고 부대원들은 결국 목숨을 잃는다. 그 장면에 이어지는 한 소녀의 내레이션은 그 중국군들의 행동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고 말한다. 영웅적인 행동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퍼진다.
결국 그 소녀들은 한 가톨릭 교회로 들어간다. 그 때 한 미국인도 교회로 들어간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하는 미국인 존은 그다지 성실한 남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소녀들을 보호하는 다른 중국인 소년 조지가 존에게 소녀들을 난징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자, 존은 돈을 요구한다. 어쨌든 교회에서 소녀들과 조지 그리고 존이 같이 기거하게 된다. 그 이후 난징의 창녀들이 그 교회로 들어온다. 중국인 소년 조지가 들어올 수 없다고 막지만, 막무가내로 그 여자들은 밀고 들어온다. 이제 어린 소녀들과 이십 대로 보이는 창녀들이 한 공간에서 머물게 된다. 당연히 학생인 소녀들은 창녀들을 경원시한다. 창녀들 중에 영어를 말할 줄 아는 위모(니니Ni Ni)는 존에게 자신들을 난징 바깥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어찌되었든 백인인 존이 일본군의 감시를 뚫고 나가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과연 존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영화에서 일본군은 야만스럽게 묘사된다. 왜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들은 야만적인 살인과 강간을 저질렀다. 이 영화에서도 교회에 일본군들이 쳐들어와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려고 한다. 그들은 ‘처녀’를 발견했다고 좋아한다. 그 위기의 순간은 한 영웅적인 중국군인 때문에 모면할 수 있었다. 존은 그 때 신부 복장을 하고 있었고 일본군에게 소녀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친다. 존이 신부복을 입게 된 것은 우연이었고, 눈앞에서 어린 소녀가 강간하려는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목격한다. 이 장면에서 존의 캐릭터가 변화한다. 위모가 말하듯이, 어제는 돈을 밝히는 건달이었는데 오늘은 영웅이 된 것이다. 글쎄, 이것을 억지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상황이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기 힘든 전쟁이라는 것을 고려하기로 하자.
얼마 후, 교회로 일본군 대령이 찾아온다. 와타베 아츠로가 연기하는 그 대령은 소녀들을 강간하려 한 일본군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 그 대령은 갑자기 교회에 있는 풍금을 연주하며 일본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전쟁에 끌려나온 일본군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였다. 사실 이 장면은 좀 뜬금없다. 일본군에도 예의를 아는 군인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가? 그 대령은 존에게 소녀들의 합창을 듣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가 음악을 사랑한다면서. 이것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서도 낭만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대령은 며칠 후 소녀들의 합창을 듣고 나서 존에게 요구한다. 난징 함락을 기념하는 파티에 소녀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것이다. 존은 어린 소녀들이 그런 파티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분명 존은 거절의 의시를 대령에게 전하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창녀들이 나선다. 시간이 지나면서 창녀들과 소녀들은 일종의 유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중국인이다. 그 소녀들이 그 파티에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창녀들은 알고 있다. 이것에 대해 많은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어린 소녀들의 ‘처녀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지만, 언니들이 한참 어린 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존과 위모 사이에 생긴 로맨스는 어차피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쟁은 희생을 강요하고, 그 희생으로 인해 누군가는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는 영화이긴 하지만, 장예모는 관객을 설득하는 연출을 하고 있다. 전쟁이 강요하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갑자기 창녀들이 영웅적 판단을 하는 것에 그게 말이 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항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예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전쟁이 야기하는 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바로 전쟁은 결코 어디에서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진리에 대해서.
(2013년 11월 14일 개봉)
류상욱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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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보였는데...
신부인척 가장한 거였다니.. 역시나 싶네요.

고인이 되신 류상욱님이 2012년에 쓰셨던 리뷰인데
영화가 국내 개봉됨에 따라 메인 화면으로 다시 올립니다.
그동안 류상욱님의 많은 글들을 재밌게 읽고
언젠가는 이야기를 나눠보고픈 분이었는데 말입니다
큰 틀에서 전쟁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일본을 비난하고 싶어지는 군요.
범죄가 나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모든 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국가적으로 나서서 범죄를 저지르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설사 수백천번 사과를 해도 그 상처를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지...!) 그 안에 사는 국민들조차 피해자 코스프레 따위나 하고 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대면은 하고 살지언정 결코 함께 상종은 못할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보복을 받아야 할은, 전쟁 지도자이며, 일반민중이 아닐 것이다.
일본 국민도 피해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히틀러를 추대한 독일 국민도.

소설을 읽고 있는데... 영화와는 다른 거 같습니다.
소설 속 서양인 신부는 '일본인들은 깔끔하고 예의바르며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분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편견이 점점 깨져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