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 2 - 레퀴엠] 애는 썼지만 어설프게 쓰레기가 되어버린 영화

나와 배틀로얄의 인연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우연히 학교에서 배틀로얄 영화를 감상한 적이 있었다. 중2병 포텐이 터져 있던 나는 그 이후로 배틀로얄에 빠져 당시 유행하던 배틀로얄 웹 게임과 배틀로얄 커뮤니티에서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두어 달 동안 정말 배틀로얄에 단단히 심취해 내 청춘의 중요한 시기를 즐겁게(?) 보낸 셈이다.
이후 배틀로얄 2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비디오로 빌려본 적이 있다. 꽤 오래 전 일인데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1편의 기대감이 잔뜩 부푼 채로 봐서 그런지 감상이 꽤나 지루하고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옛 추억을 되살리며 간만에 배틀로얄 2를 찾아보는데 감독판으로 새로 발매된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기존의 내가 비디오로 빌려본 후에 DVD로 구입했던 극장판 판본보다 20여분의 분량이 더 추가되었던 것이다.
원래 극장판보다는 후에 다시 재발매되는 감독판을 더 선호하던 나로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야 배틀로얄 2를 옛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볼 수 있었다.
사실상 그때 남은 내 기억들은 너무 오래 전이라서 처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감상했다. 그때는 배틀로얄 2는 아들이 고인이 된 아버지의 유작을 말아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 생각이 더 많아졌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감상 이후의 생각이 더 많아졌다.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배틀로얄 2는 실패한 영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엉망진창의 분위기나 열악한 환경에서 마구잡이로 제작된 게 아니라,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들려고 애를 썼는데 여러 요소들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깝게 실패한 케이스의 영화였다.
우선 영화가 비현실적이다. 1편이야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했고,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인지 딱히 비현실적이거나 어설픈 일본 만화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후속작은 그렇지 않았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여러 모로 작위적이었다. 테러리스트가 된 나나하라 슈야 일행을 잡겠다고 양아치 중학생들을 모아 새로운 BR II 법을 만들어 서로 싸우게 한다는 발상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보인다. 이건 설명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영화 속 배경과 진행 과정부터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중학생들이 현역 장병들 뺨치는 전투력을 선보이며 테러리스트들과 총격전이라니. 1편에서도 총격전은 등장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영화의 총체적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어설프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을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는데 모조리 어설픈 잡음들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액션신은 2003년도 시절에 개봉된 일본영화 기준에서 보자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하지만(애초에 합격점을 줄 만큼 중학생들이, 그리고 그 중학생들과 나이 차이가 몇 살 나지 않는 어린 테러리스트들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시나리오와 연기력, 영화 속 주제 의식 등등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판단이 든다.
처음 봤을 때는 아버지보다 훨씬 부족한 아들 감독의 연출력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 영화는 각본부터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가장 열 받는 부분은, 영화가 어설프다 못해 삼류 반미 선전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시절, 9.11 테러 등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 부시 대통령이 재직했는데 아마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반미 정서가 강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 돌아보자면 충분히 재평가를 해야 할 만큼 쓸데없이 반미 정서가 당시의 주류 흐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흐름에 맞춰 이 영화가 시대를 반영해 반미 정서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듯한데 영화 안에서 어른과 미국을 동일시하며 진행되는 장면들은 북한에서 제작된 사회주의 낙원 운운하는 정치 선전물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보는 내내 얼척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을 무슨 세계를 휘어잡는 악랄한 ‘엄석대’ ‘일진’ 취급하면서, 동시에 지나친 제 3세계 막장 국가들을 옹호하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그 나라들 중에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북한처럼 도저히 감싸줄 수가 없는 갈 데까지 가버린 정신 나간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미국을 까기 위해 총체적 난국의 나라들까지 옹호하며 더 나아가 테러리즘의 정신을 지지하는 사상 선동 내용이 지금으로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내 한 가지 장담하는데, 배틀로얄 2를 아버지 대신 촬영한 아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2010년대 후반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는, 배틀로얄 2를 찍던 당시의 반미 정서를 흑역사 취급하며 이불킥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어설프고 오버를 했다. 북한 같은 나라도 아닌 동네에서 찍어내는 선전영화 정도만이 어깨를 나란히 견줄 만큼,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반미 정서나 제 3세계, 어른들과 아이들의 관계와 일본 사회의 문제를 괴상하게 엮어낸 주제 의식은 황당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영화 자체를 잘 만들기 위해 찍은 게 아니라, 반미주의자들에게 사주를 받고 정치적, 사상적 불순한 목적으로 돈을 처발라서 찍어낸 삼류 선전물로 보였다.
아 참, 지금 이 리뷰를 쓰면서 각본을 누가 썼는지 검색해 봤더니, 아버지의 영화를 말아먹은 아들 후카사쿠 켄타 감독이 배틀로얄 2의 시나리오까지 쓴 거였다.
정정한다. 배틀로얄 2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들이 말아먹은 영화가 맞다.
이런 식으로 각본을 쓰고 영화를 찍어서 고인 모욕과 패드립을 대국적으로 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이 영화 부제가 제작 중 사망한 후카사쿠 킨지 감독을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이었는데, 정말 ‘레퀴엠’이란 부제를 달 자격이 있는 영화인지 급식 먹던 시절에도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다섯 배쯤 더 의문이 들도록 한다.
거기에 더해서, 토사물에 설사똥을 끼얹듯 네이버 웹툰이나 삼류 일본 소년물에서나 볼 법한 우정이니 어른과의 갈등이니 하는 부분들은 언급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유치찬란하며 아예 지루하기까지 했다. 대사들도 대사들이지만 그 연기력은 현재 일본 콘텐츠들이 점점 미성숙함을 추구하는 일본 오타쿠 부류들로 인해 망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늙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2병 포텐이 어지간히 터지는 게 아닌 이상 도저히 감정 이입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전반부보다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마에다 아이의 피아노 치는 장면부터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도 중간에 잠시였을 뿐이었다.
한 가지 이 영화를 예전 극장판과 비교해서 살짝 변호를 해보자면, 그래도 극장판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기존의 삭제되었던 장면들이 추가된 것이 그나마 이 영화를 미약한 수준이나마 더 나아지도록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도 있었다. 한때 웹 소설 연재를 하겠답시고 되도 않는 대하소설을 써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는데, 거창함만으로 시작된 어설펐던 정의감뿐인 당시의 내 소설이 이 영화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내게 이런 식의 깨달음을 줄 수 있었던 것만큼은 이 영화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바이다.
아무리 그 취지가 좋아도 제대로 이끌어낼 능력이 없다면 결국 무의미한 것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려고 애쓴 흔적 자체는 내 눈에 보였다. 이것저것 잔뜩 넣어서 뭔가 그럴 듯해 보이려고 발악을 했다.
허나 무능한 아들놈 때문에 이 영화는 북한 뺨치는 삼류 반미 선전물에 중2병 꼬맹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수준 낮은 표현의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소년물의 주제들을 뒤섞은 참담한 콜라보레이션이 되어버렸다.
최악의 쓰레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쓰레기에 쓰레기를 더해서 새로운 차원의 쓰레기를 선보인 영화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표현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하늘나라에서 아들놈의 결과물을 보고 오열을 할지 모를 고 후카사쿠 킨지 감독님의 명복을 지금 다시 빌어본다.
추가 I : 사실 이 영화를 비디오로 나오기 전에 막 개봉할 당시 머나먼 서울까지 찾아가 극장에서 감상하려고 했었다. 헌데 담임은 아니었지만 담임보다 더 끈질기게 학생들을 괴롭혀가며 공부를 빡세게 시키던 은사님 한 분 때문에 내 계획(?)이 불발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개봉을 몇 달이나 기다리다가 설레는 마음에 감상하려고 했는데 그 은사님이 주말에도 자율학습을 하라며 집에까지 전화해서 어머니를 설득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전화를 받으셨던 어머니께 한탄한 것은 물론이고 나와 배틀로얄과의 인연을 끊으려고 한(의도하진 않으셨겠지만) 그 은사님께 분노를 표출하며 비디오로 출시되기를 또 기다려야만 했던 슬픈(?) 추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배틀로얄 2를 십여 년 만에 다시 감상하고 이 리뷰를 적으면서 돌아보니, 은사님이 날 구제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야말로 재평가가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스승의 은혜’가 아닐까. 촌 동네에서 멀리 서울에 위치한 극장까지 가서 실망해버렸을 나를 위해 주말에도 학생의 본분을 지켜가며 자율학습을 하러 나오라고 하셨던 그 혜안(?)에 리뷰를 쓰다 말고 가슴으로 무릎을 꿇고 은사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분명 지금 돌아보자면 은사님은 내게 은혜를 베푸신 게 확실하다.
추가 II : 감독판 엔딩이 끝나고, 제 3세계의 아이들이 등장하며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여자의 내레이션이 몇 분 흘러나오는데,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발견했다.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애 옆에 쭈그리고 앉아 치마를 입은 채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데 세상에,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한밤중에 졸음을 참아가며 영화를 감상하던 나로선 뜬금없는 아청법 위반 장면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그건 왜 집어넣은 걸까? 아무리 아청법이니 아동 인권이니 하는 요소들이 미약했던 2003년(극장 개봉 시기)이라고 할지라도 아동 포르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왜 굳이 그런 장면을 집어넣은 걸까? 그만큼 제 3세계 아이들이 제대로 된 속옷도 못 입고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도 못 받고 자란다는 걸 알리기 위해 그런 장면을 넣은 것일까? 퓰리처상을 받은 월남전 시절 네이팜 소녀 사진처럼 그 장면도 그런 의미였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도 갑작스러웠고 분위기에도 맞지 않고 전혀 예고도 없던 장면이었다. 프루나의 시대가 지나고, 딱풀과 하두리는 봉인된 옛 기억으로 남고, 남자애의 고추를 만지는 게 끔찍한 아동성범죄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아청법에 길들여진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나로선 대체 왜 그 장면이 편집되지 않은 채 삽입되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