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봇 영화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

제게 90년대 최고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손에 꼽는 작품이 바로 이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이하 <자이언트 로보>입니다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로봇 영화'로 글을 올리려니 살짝 고민이 됩니다.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서가 아니라, 거대 로봇이 주연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비중을 보면 초능력자들의 드라마가 더 크거든요.
각설하고, 1년에 1편 정도의 페이스로 제작되면서 중간에 제작사가 한번 망하는 등 이런저런 굴곡 끝에 완결을 본 <자이언트 로보>는, <철인 28호>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츠테루 선생의 원작을 바탕으로, <수호전>, <삼국지>,<바벨 2세> 등 요코야마 원작 만화의 온갖 요소를 차용해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다수의 엑스퍼트(이 작품에서 초능력자를 가리키는 말)로 구성된 '국제경찰기구'와 세계정복을 획책하는 비밀결사 'BF단'의 대결 구도 위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계 최강의 로봇 '자이언트 로보'를 조종하는 주인공 소년 쿠사마 다이사쿠의 성장담과, 완전무결하고 100% 재활용 가능한 에너지원 '시즈마 드라이브'를 둘러싼 음모와 비밀을 그린 작품으로, 위에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요코야마 미츠테루 월드의 수많은 주조연은 물론 단역까지 망라해서, 일견 얼토당토 않은 조합을 가지고 신기하리만치 매력적인 세계를 만들어 낸, 기념비적인 작품이지요.
총 7화의 OVA(와 서비스 형식의 외전 3편)로 구성된 이 작품은, 총연출을 맡은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의 스타일에 기인한 탓에 매 화마다 각각의 클라이막스를 선보임과 동시에 전체적으로 작품 텐션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시퀀스의 연속입니다. 앞서 '얼토당토 않은 조합'이라고 설명했습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국제경찰기구의 총본산인 양산박은 당연히 수호전에서 따 온 건데, 중국 사극풍의 캐릭터와 양복입은 엑스퍼트가 초능력으로 대결하는 장면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뻔뻔하게 펼쳐지는데다, 한발짝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비장했던 중간 클라이막스가 기실 대단원으로 가는 길을 더한층 어렵게 꼬는 등
개연성 면에서도 좀 얼떨떨한 부분이 많은데, 보는 동안은 흠뻑 빠져들어 그런 요소를 가늠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자이언트 로보는 원래 주인공 다이사쿠의 아버지가 BF단에 의해 개발한 로봇이지만, 박사가 목숨을 걸고 빼돌려 아들에게 넘깁니다. 주인공의 손목시계를 통해 음성으로 조종되는 이 로봇은 박사의 유언마따나 '희생 없는 행복은 없는가?'라는 이 작품의 주제 중 하나를 짊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가 무결점의 에너지원인 시즈마 드라이브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굳이 원자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묘한 딜레머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엄청난 힘을 물려받은 아들'이라는 다이사쿠의 입장은
시즈마 드라이브 개발의 중심에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부친의 복수에 불타는 악역 겐야의 입장과도 맥락을 같이 해서 이 작품의 마지막을 가볍지 않게 이끌어 갑니다.
자이언트 로보는 원래 GR-1,2,3의 세 모델을 육-해-공에 맞게 운용하는 컨셉으로, 자이언트 로보 2호기의 디자인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로보트 킹'의 원형입니다. 리뉴얼 디자인은 걸출한 메카디자이너(지만 인성엔 좀 문제가 많은) 코바야시 마코토가 맡았구요.
시리즈 5화의 회상 장면에서는 부친의 죽음과 함께 자이언트 로보를 갓 물려받은 다이사쿠를 자이언트 로보 2호기가 공격해 오는데, 작품 전체를 통틀어 거대 로봇끼리의 전투를 가장 멋지게 묘사한 이 대목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가 게스트 연출을 맡았습니다.
길게 늘어놓자면 밑도 끝도 없는 터라 이쯤에서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재밌습니다. <수호전>의 신행태보 대종이나 흑선풍 이규(본편에선 '철우'라는 별명으로 등장), 지다성 오용같은 캐릭터는 그렇다 쳐도, <요술공주 세리>의 세리(극중에선 저작권 때문에
'서니'라는 이름으로 등장)라든가, BF단의 최종 보스인 빅 파이어로 <바벨 2세>의 바벨 2세가 '세 호위단'을 거느리고 등장하는 장면 즈음에 이르면 오래된 작품의 팬들은 환호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고, 바르샤바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아마노 마사미치의 테마곡들은 가히 클래식이라 할 만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필견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감히 권해봅니다.
- EST였어요.
EST
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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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리뉴얼을 했다지만 원판의 그 우스꽝스런 헤어스타일을 하고도
막판에 눈물날 정도의 비장미를 발산하시는 장면을 보면 정말... ㅠ ㅠ

국내 정식 발매된 DVD는 golgo님이 제작, 자막을....




글 읽으며 같은 생각 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속편이 나오지 않아 너무 아쉬운 작품 중 하나.
부질없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ㅜㅜ

정말 살아생전 진정한 대단원인 '바벨의 농성'을 보고픈 마음만 커져 가지요.

철인까지 등장하는 걸 극장에서 본다면 그냥 기절인데....ㅜㅜ

오오츠카 서장(자이언트 로보 극중에선 양산박 9대천왕 중 한명으로 이름만 나오죠)을
나름 그럴듯하게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군요.


아... 음악을 빼놓을수가 없군요 ㅠ.ㅠ
감동 감동


저도 정말 좋아하는 애니 입니다!!!!ㅠㅠ


ㅋㅋㅋ 이에스티님보다 다크맨님이 더 열광하십니다..




쓰시는 겁니다! 저보다 오천배는 좋은 글 나올 것 같은데요.
저는 글에 빠심이 섞이면 중언부언하게 되더라구요. :-)

저도 빠심으로 중언부언하는 거라면 어디가서 명함 내밀 정도는 됩니다^^;

아...이것하구 카우보이 비밥하고 셋트 고민 끝에...카우보이 비밥 dvd셋트를 구입했는데...
아 다시 질려야하나요? ㅜ.ㅜ

그런데 지르는 게 아니고 질리시는 거군요! (왠지 납득)
우와~ 다들 이렇게 명작이라고 칭송하시다니! 제대로 보고 싶네요ㅎㅎㅎ
일단 자이언트 로보 디자인 자체도 멋져 보이고 말이죠.

자신있게 권해드립니다. (어째 써놓고 보니 80년대 사장님 광고 삘;)
최고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도 엄청 좋아합니다 ㅠ.ㅠ
충격의 알베르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