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감상기

코엔 형제의 영화는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의 영화를 그 누구보다 잘 이끌어냅니다. (물론 코엔 형제의 영화가 모두 이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 코엔 형제가 만든 영화의 제목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 중에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코엔 형제의 영화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분들도 주변에서 봅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도대체 뭘 얘기하려는 거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건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인물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헐리웃 영화에서의 서사 전개, 즉 '발단-전개-절정-절정-절정-대단원'을 기대해서는 푸념밖에 남을 것이 없는 영화가 또, 대부분의 코엔 형제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물 중심의 영화는 중심 인물이 보여주는 시퀀스 하나하나가 인물이 꾸려가는 절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절정을 읽어내야 하는 것은 대개 고스란히 관객의 몫입니다. 준비를 하고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겨울왕국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그 다음의 질문은 대개 '무엇을?'일 것입니다. 코엔 형제들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하는 순간들을 종종 맞이합니다. 그 다음은... 코엔 형제의 영화는 '무엇을?'다음의 질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설펐기 때문에 대화는 대개 거기서 끝납니다. <인사이드 르윈>을 보고나서 '무엇을?' 다음의 질문을, 간단하게나마 더 하고 싶어졌습니다.
영화는 포크송 초기 시대(영화 종반부에 어린 밥 딜런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죠)의 가수 르윈 데이비스의 며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며칠이 단 며칠이 아니라는 것이 이 영화 전개의 핵심입니다. 첫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전체가 영화 첫 시퀀스에서 플래시 백으로 첫 시퀀스의 일을 당하기까지의 며칠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르윈 데이비스의 고단하고 비루한 삶은 이렇게 순환한다고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르윈에게 호의적인 교수 부부의 집에서 묵고 나오던 날, 그 집 고양이가 자신을 따라오는 바람에 그 고양이를 맡게 되었으나 잃어버리고, 르윈의 부질없는 시카고 여정이 끝나고 그 교수의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 고양이는 그 교수의 집으로 찾아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의 이름이 '율리시스'라는 것을 듣고 르윈은 다소 놀랍니다. 곧바로 컷이 바뀌고 극장가를 지날 때 르윈이 보는 영화 포스터는 디즈니의 '머나먼 여정'입니다.
이 영화는 르윈 데이비스의 비루하고 남루한 며칠을 보여줍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자신의 솔로 앨범 홍보도 직접하기 위해 뉴욕에서 시카고로 부질없는 여정에 오릅니다. 그 여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을 만나고, 이전에 임신시킨 여자가 낙태 수술을 안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네를 지나치게 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 옵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르윈의 삶은 그 남루한 삶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어 보입니다. 그의 삶이 머나 먼 여정이고, 그가 남루한 율리시스로 이 반복적인 삶을 모험처럼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미적 체험을 한다는 것은 관객으로서 정서적, 심리적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화의 미학은, 감독은 경제적 원칙에 따라 선택된 일부분만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 그 행간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추측,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면 감독 나름의 미학이 발동했고, 그것에 대해 관객인 우리가 채워나가며 영화를 봤다면 그것이 영화에 대한 미적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미학의 핵심은 플래시 백을 플래시 백으로 보지 않고 순환으로 보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으로부터 르윈의 남루한 이 며칠을 '남루한 율리시스의 머나먼 여정'으로 보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 속의 르윈 주변의 인물들은 그렇게도 르윈을 구질구질하게 보는데, 영화를 보는 우리는 르윈을 그렇게 보지 않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 구절도 떠올리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끝까지 읽어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후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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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번역하신 분이 상영 전 익무에 올리신 글입니다.

잘 봤습니다. 저 또한 코엔형제 영화를 무척이나 사랑하는데요. 그들의 영화들을 보면 항상 독특하고 독창적이죠. 자칭 영화 좀 본다라고 하는 사람들 치고 코엔영화를 삶에서 배제시키는 분들은 본 적이 없네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