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터뷰]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미키 17> 괴수와 인간, 그리고 '오무'의 그림자

― 감독님, 다소 갑작스럽지만 <고질라 -1.0>(2023)을 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봉준호 감독(이하 봉 감독): 네, 봤습니다. <미키 17> 재팬 프리미어 당시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과도 만날 수 있었고요
― 감상은 어떠셨나요?
봉 감독: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일본 관객들에게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해요. VFX도 아주 훌륭했지만, 동시에 구 시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실제 특수효과의 매력도 그립더군요. 저도 요즘은 디지털 작업만 하고 있어서, 그런 실제적인 효과들이 정말 그리워요
― 감독님의 신작 <미키 17>은 원작 소설 '미키7'에서 큰 각색을 거쳐 만들어졌는데요, 특히 ‘크리퍼’라는 행성 니플헤임의 거대 생명체 묘사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존보다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고, 결과적으로 <괴물>이나 <옥자> 같은 전작들처럼 ‘크리처 영화’적인 성격도 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는 의도된 방향이었을까요?
봉 감독: 맞습니다. 각본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크리퍼의 존재 의미를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존재는 영화의 주제와도 깊게 연결돼 있거든요. 제 영화에서 동물이나 크리처가 등장할 때, 그들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기능합니다. 그들의 존재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얼마나 비열한 존재인지 드러나는 순간이 생기죠
― 결국 가장 무서운 괴물은 인간이라는 이야기군요
봉 감독: 그렇죠. 이 영화에서도 인간은 굉장히 비겁하게 나옵니다. 미키에게 죽음에 가까운 위험한 일만 떠넘기고, "계약한 거니까 너의 일이야"라며 강요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구조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죄책감도 거의 없죠
― 영화에선 '조코'라는 아기 크리퍼가 등장하고, 이를 둘러싸고 미키들의 반란과 변화가 전개됩니다. 이 캐릭터는 오리지널 설정인가요?
봉 감독: 네, 맞아요. 영화에선 아기 크리퍼 하나를 구하려고 모든 크리퍼가 떼지어 달려옵니다. 이 장면은 인간 세계와 대조되는 장면이에요. 인간은 개인주의에 매몰돼 타인을 희생시키지만, 크리퍼들은 하나의 생명을 위해 모두가 움직이죠. 그래서 크리퍼의 존재를 더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조코 봉제 인형을 건네며) 자, 이거 받으세요
― 어머, 감사합니다! 징그러운데 귀여워요
봉 감독: 하루 세 번 물만 주면 잘 자랍니다. 귀여워해 주세요(웃음)
― 크리퍼를 보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오무’이 떠오른다는 반응도 많을 것 같은데요. 디자인이나 상징적인 역할 면에서도 유사성이 보입니다
봉 감독: 디자인 작업 중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하다가 크로와상을 참고해서 만들었어요
― 원작에서는 지네에 가까운 형태로 묘사됐었죠
봉 감독: 절지동물이라는 점에서, 디자인은 아르마딜로나 공벌레를 참고했어요. 기본 형태는 크로와상이지만요. 만들면서 점점 오무와 비슷해지는 걸 느꼈고, 오히려 기뻤어요. 오무를 의식해서 피하려 한 건 아니고, 비슷해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고 의미 있다고 느꼈습니다. <옥자>에도 <이웃집 토토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잖아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흔적이나 오마주가 제 영화에 느껴진다면, 오히려 저는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 감독님과 미야자키 감독은 크리처 감각을 공유하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봉 감독: 단순한 외형을 넘어서 영화 내 존재감의 문제죠. <모노노케 히메>, <토토로>에서도 느꼈지만, 미야자키 감독의 크리처들은 위엄과 아름다움을 함께 지니고 있어요. <미키 17>에서도 인간보다 더 고귀한 존재처럼 보이길 바랐고, 그 존재감을 크리처에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영향은 외형보다는 그런 ‘존재의 품격’이에요
― <미키 17>은 원작보다도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색채가 강합니다. 다리우스 콘지를 다시 기용한 것도 이런 분위기 구현을 위한 선택이었을까요?
봉 감독: 모든 촬영감독이 그렇겠지만, 콘지 형은 특히 ‘어둠’과 ‘그림자’에 예민한 분이에요. 예를 들어 오프닝 씬에서 미키가 깊은 협곡 바닥에 누워 있는 장면은, 그의 ‘위치’를 상징하죠. 빛 한 줄기가 들어오지만, 그 빛조차 미키에게 닿지 않아요.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빛이 비춰야 할 텐데, 그마저 외면당한 거죠. 이런 조명 방식이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지 형 특유의 촬영 철학이 아주 좋았어요
― 콘지가 촬영한 작품 중에서 감독님이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봉 감독: 초창기 작품인 <세븐>이나 <델리카트슨 사람들>도 유명하지만, 최근작 중에서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잃어버린 도시 Z>가 좋았어요.
― 의외의 선택이네요. <세븐>을 떠올릴 줄 알았는데요.
봉 감독: 몇 년 전 파리에서 콘지 형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데, 집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부인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너무 어두워서 요리를 못 하겠어!”라고요(웃음) 그런데 콘지 형은 “이 정도면 밝은 편이야”라고 하더군요. 철저한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