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미키 17(Mickey 17, 2025)> : 친절하고 깔끔한 봉준호식 헐리우드 어드벤쳐
*강스포 주의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미키17>
일단 제일 궁금하실 것부터 알려드릴게요.
안심하세요. 물론 각자 취향이란게 있을 겝니다만, <미키 17>은 훌륭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생충>의 미덕 중 하나로 순수한 영화의 '재미'를 결코 놓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싶은데요,
<미키 17> 역시 영화 자체의 재미를 결코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훌륭한 점수를 주고 싶어요.
이러한 재미가 어디서 왔을지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우리의 봉준호 감독이 신경을 정말 많이 썼구나 싶었습니다.
고작 1회차 했지만, 눈에 확 보였던 점들 위주로 한번 볼게요. 시작할까요. BTS 손흥민 김연아 페이커 봉준호 let's go!
미키 17 (Mickey 17, 2025)
감독 봉준호
출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앳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 외
개봉 2025. 02. 28.
그렇다, 미키는 오늘도 인류를 위해 죽는다
봉준호 감독은 사회의 계급 및 계층 문제에 참 관심이 많은 감독입니다. <기생충>에서 저는 그가 이 문제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을 거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었다 보더라구요. <기생충>에서 그가 사회의 계층 문제를 집의 소유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혈투(...)로 그려냈다면, 이번 미키 17은 "인간다움"이라는 논제로 통해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인간입니다. 아니, 인간이"었"죠. 그놈의 마카롱 가게의 실패로 인해 사채업자에게 쫓기게 된 미키는 결국 '익스펜더블'에 지원하여 이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납니다. 우리 자막이 "익스펜더블"을 그대로 음차하여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expendable'은 '소모용의'라는 뜻입니다. 즉 미키는 소모품이 된 것이죠. 자, 이제 미키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헐크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과 그의 부인 '일파 마샬(토니 콜렛)'은 인간들의 번영을 위해 이 소모품을 알차게 써먹죠. 진짜 온갖 방법으로 잔인하게도 써먹습니다. 그들의 변은 언제나 "모든 것은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입니다. 말이 안 되는 궤변임을, 우리는 너무 뻔하게도 알고 있죠.
누가 인간인가요? 그리고 누가 인간이 아닌가요? 한없이 소심하고 찌질해 보이지만, 결코 누군가를 해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미키와 그렇지 않은 이들 중에요. 너무 쉽죠?
자, 다른 질문입니다. 처음 본 미키를 어떻게든 살려보내주고, 자신의 종족에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어떻게든 평화를 선택할 기회를 주며, 지능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크리퍼'들과 마샬 부부같은 인간들 중에 누가 더 인간다운가요?
일파 마샬은 음식 중에서도 소스에 특히 집착합니다.
"소스야 말로 문명의 척도야."
그런 일파 마샬이 소스를 만들겠다며 크리퍼의 꼬리를 자릅니다. 마지막 미키의 환상에서 최고의 소스라며 피를 맛보게 합니다.
소스가 문명의 척도라면, 이 문명은 대체 어느 수준인가요?
영화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집니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간이 아닌가.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면 '인격'이 없는가? 인간을 정의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Mickey 17에서 Mickey BARNES가 됩니다. 미키는 성을 찾았고, 인간이 되었습니다.
눈치채셨죠? 봉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 <옥자>와 <기생충> 등등이 할리우드 어드벤처 스타일로 쉽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앞선 작품들 하나 하나가 그의 포트폴리오라면,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에 내미는 정돈된 이력서입니다.
난 이런 것에 관심이 있고 이런 거 잘 할 수 있다를 촤라락~ 보여주는 셈이죠.
좋은 영화를 이렇게도 쉽고, 친절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아주 높은 수준까지 고차원적으로 관념을 고찰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 반대죠. 이 영화는 최대한 쉽고, 재미있고, 친절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초반에는 솔직히 미키의 내레이션이 너무 구구절절 이어져서 '굳이 이렇게까지 다 설명할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느낀 약간의 아쉬움은 이런 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제작진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어요.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최대한 쉽고, 재미있고, 친절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가 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주제의식에 집중하여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너무 친절하게도 모든 주제를 온 몸으로 뿜어내는 캐릭터가 존재하죠. 바로 '나샤(나오미 앳키)'입니다.
나샤는 미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었습니다. 미키가 소모품에 불과한 입장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죠. 미키의 어쩔 수 없는 입장에 저항까지는 못하더라도, 미키가 가장 고통받는 순간까지 나샤는 함께했습니다. 나샤는 미키를 같은 '인간'으로 여겼죠.
중간에 잠시 낯뜨거운 장면이 나옵니다. 나샤가 복제된 미키 17과 18 모두와 잠자리를 가지려 하는 건데요. '옥시조인'의 영향임을 감안하더라도 좀 영화 수위가 너무 올라가지 않나... 싶었지만, 이 역시 나샤에게는 의미 없는 유흥이 아니었죠. 나샤는 어떤 모습이든, 어떤 성격이든 모두 사랑합니다. 미키라는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혹시라도 감독이 나샤를 오해할까봐(...)이어지는 '카이(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와의 말싸움 혈투에서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어떤 미키이든 모든 미키는 나샤의 사랑이죠.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카이'가 나름 개념인스러운 모습을 보였음에도 미키와 잘 될 수 없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카이는 미키 그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는거죠.
클라이맥스에서도, 나샤는 마샬 부부와의 말싸움에서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줍니다(...) 이 영화가 쉬워지는 데 공헌한 1등 공신이에요. 다만 그럼으로 인해 영상언어가 개입할 자리를 많이 줄여버린 점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 미키 17일까? 영화 속 남아있는 은유들
자, 두 명의 미키. 미키 17, 그리고 미키 18. 결국 미키 17만이 살아남습니다. 미키 18의 캐릭터성 역시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18까지 살아남는 결말이었으면 하고 바라시는 분들도 많으신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물론... 두 명 이상의 미키가 살아남는 결말은 아마 처음부터 배제되었을 것 같구요.
미키 17이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쉽게는 뭐 인성문제가 있겠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17과, 당한 건 과격한 방법으로라도 어떻게든 갚아주려는 18.
다만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 봅시다.
미키 17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보다, 미키 18이 아니어야 하는, 혹은 미키 18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좀 더 집중해볼게요.
클라이막스에서, 크리퍼들의 대장 마마 크리퍼는 평화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새끼 '조코'를 안전하게 데려올 것.
그리고 이미 자신의 새끼 '루코'가 죽었으니, 마땅히 인간도 하나의 목숨을 대가로 바칠 것.
본래 논리에 의하면 죽었어야 하는 건 케네스 마샬 하나죠.
다만 첫 번째 미션이 실패하고 맙니다. 나샤가 애를 썼지만, 결국 조코는 이미 죽은 채로 돌아오게 됐죠.
하나의 목숨이 더 필요해진 겁니다. 남은 하나의 목숨은 18이 대신 희생해 바쳤죠.
그럼 여기서. 왜 굳이 미키 18이었냐 하는 문제가 다시 생깁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볼까요? 미키 17과 미키 18은 처음부터 죽기 위해 태어난 소모품입니다.
미키 17은 이미 한 번 죽을 뻔 했고, 예정되어 있던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았습니다.
그 전까지 미키들은 몇 번의 죽음을 경험한 후 거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빨리 편하게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미키 17은 한 번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난 뒤 스스로 삶에 대한 욕망을 가집니다.
미키 18은 처음부터 본인이 그동안 받아온 대우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티모(스티븐 연)'가 그동안 뒤통수 친 사실에 분노하며 그를 죽이려 했고,
미키 17이 마샬과의 저녁식사에서 받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갚아주지 못해 안달이었죠.
미키 18 역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없진 않아 보이지만, 미키 18의 행적을 보면 그의 가장 큰 목적은 복수입니다.
과거를 청산하는 마지막 미키인 것이죠. 앞으로의 삶을 꿈꾸는 미키 17대신 희생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험관 폭파 씬에서, 잠시 미키 17은 환상을 봅니다. 정확히는 꿈인지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순간인데요.
죽은 줄 알았던 케네디 마샬을 일파 마샬이 시험관에서 복제해 되살리고 있죠.
일파는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최고의 소스라며 미키에게 맛보게 합니다.
기겁하는 미키에게 일파는 비웃음을 던지죠.
"너도 이런 걸 원했잖아?"
환상에서 깬 미키 17.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시험관을 완전히 폭파시킵니다. 일파에게 대답한거죠.
"아니."
미키 18이라면 어땠을까요? 피를 맛보고 뭐라고 했을까요? 일파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살아남은 이가 미키 17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미키 17>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몇 번 영화를 더 보면 더 많은 것이 떠오를 것 같고, 더 감탄하게 될 것 같네요.
로버트 패틴슨은, 와........ 명실상부 최고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시상식을 휩쓸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보네요.
전작 <기생충>이 워낙에 잘 되어서 걱정했는데, 영화가 너무 재미있게 잘 나와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열일해주세요, 봉 감독님!
블로그에 더 많은 영화의 리뷰가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778780051
바비그린
추천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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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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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 같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