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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2025)> - 우리 안의 부채 의식을 끄집어내는 SF적 우화

조윤빈 조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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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윤빈입니다. 지난 26일에 관람하고 여차저차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후기를 써봅니다. 시기가 좀 지났기도 해서 부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그래도 한 번 써보겠습니다. 일단은 저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보는 축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미키 17이란 캐릭터를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식 · 부채의식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해보았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

본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부채 의식

우선 마샬! 종교적 지도자, 국회의원, 사업가, MC, 심지어 독재자 등 약칭하면 '높으신 분' 정도가 되겠습니다. 우주선에서 인구 관련 비전을 얘기할 때는 섹스가 칼로리 소모가 심하니 금지한다, 말하자면 금색령(禁色令) 같은 것을 내립니다! 그러다가 (아내 마샬과 잠깐 의논한 후) 니플하임 행성에 정착하게 되면 '우리 인간은 증식하고 창궐하자'는 취지의 대사들을 쏟아냅니다. 뭐 바이러스도 아니고.. 그러자 사람들은 조삼모사마냥 다시 열렬한 환호를 보내죠. 역사 속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처럼 엽기적으로 인구 수를 조절하려는 등 인간 존중은 전혀 돋보이지 않는 캐릭터지요. 이처럼 마샬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부채의식을 떠올려주기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인물은 카메라에 매우 집착합니다. 지도자로서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위해 멋진 Dinner의 아량을 베푸는 모습, 크리퍼와의 정상 회담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 등을 찍기 위해 그의 카메라맨은 마샬의 시선보다 로우 앵글로 그를 촬영합니다. 마치 나치 선전 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기법이지요. 인간을 소모품(expendable)처럼 여기고 2차대전에 그 많은 사람들을 파리 목숨마냥 (특히 동부전선) 갈아 넣기도 했던 그 나치를 떠올린다면 역사적 부채의식은 한 층 더 쌓여갑니다.

 

아내 마샬도 얘기 안 할 수는 없겠죠! 소설에서는 안나오는 오리지널 캐릭터이자 비선 실세 캐릭터지요..여기까지.. ㅎㅎ 그리고 아내 마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역시 소스(Sauce) 겠죠. 크리퍼의 꼬리를 갈아서 만드는 것을 극찬하는가 하면, 미키 17의 꿈 속에서 떨어진 피 한방울을 좋은 소스라고도 하죠. 영양 섭취에 꼭 필수요소는 아니지만 먹는 것만이 인간의 전부가 아니기에 그녀는 풍미를 즐길 줄 아는 문명인으로서 보이려 합니다. 그런데 이는 분명 개척민이 토착민의 생체를 갈취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야만적으로 보일 뿐이지요. 과거 서구의 착취적 식민지배를 떠올리게 하는 이중적 요소를 담은 아내 마샬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깊은 역사적 죄의식을 끄집어 냅니다.

 

20250301_062139.jpg

영화 속 마샬 부부와 극단적 인구정책을 펼친 차우셰스쿠, 그리고 영화를 선전수단으로 사용한 히틀러

그 외에도 종교와 재벌의 면모를 동시에 보이는 여러 인물도 있을 것이다.

 

 

 

자의식의 이중성, 그리고 그의 죄의식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보이스 오버가 많이 나옵니다. 주로 17번째의 미키를 통해서 말이죠. 앞에서 이미 16번을 죽었음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우주선에 탑승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나샤와의 추억 등을 기억합니다. 이 수많은 보이스 오버들은 그만큼 '미키 반스'란 인물이 마치 하나의 인격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키 18은 미키 17을 계승하진 않았습니다. 엄연히 미키 16을 기반으로 하여 또 하나의 정체성이 탄생한 멀티플이자 아이러니이지요. 자의식의 이중인격이 나온 것 같습니다. 피콜로 대마왕? 이 둘의 반목부터 우정까지가 영화의 핵심 동력이자 자아의 이중성을 돋보이게 해주는 훌륭한 장치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 둘은 묘하게도 공통적인 죄의식을 공유하는 듯 합니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든 차 안의 빨간 버튼.. 흥분을 고조시키는 이 빨간색은 어떤 여인의 머리색으로 하여금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18의 자폭 버튼도 빨간색이지 않았나요? 저는 18이 그 버튼을 누른 게 지난 죄의식을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자기 또한 누군가를 살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했습니다. [1]

 

제목 없음.png.jpg

멀티플의 모순이 해결되고자 꼬리를 잘라오라는 미션을 받은 17과 18

그러나 그들은 공존의 답을 위해 협상에 나선다.

 

 

휴머니즘이 결여된 채로 발달한 문명 시스템에 대한 죄의식

미키는 익스펜더블입니다. 익스펜더블은 기계 대신 값싸고, 더 용이하게 작업할 수 있지만 더 위험한 일을 도맡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인류에 대한 항체를 만들려고 바이러스를 맞고, 방사능의 위험성 측정을 위해 죽고, 가스도 맡아 죽습니다. (<괴물>의 에이전트 옐로우가 떠오르네요.) 동물실험은 물론,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최소수의 고통은 불가피한가? 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실험과 노동으로 사회는 미키에게 위험과 죽음을 '외주'시킵니다. 이제 그는 아프고 죽는게 당연해진걸까요? 우리 사회에서도 공장, 건축장, 설비수리 등에게 일을 맡기는 건 흔하나 그들이 죽으면 이름 모르게 지나가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김 군1, 김 군2, 등등 이런 식으로요. 더 나은 것을 건설하려다 정작 사람을 배척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고, 우리가 무심코 넘겼던 죽음을 값싸게 여기지 말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 합니다.

 

영화로 다시 돌아오면 앞에서 '제니퍼 대신 너가 죽었어야 했다'거나, 맨 앞에선 티모가 미키를 가볍게 넘기는 것을 본다면 좀 섬짓하게 다가올 겁니다. 손이 잘려나갈 때 그걸 마치 신기한다는 듯이 '와우'거리는 것도  아마 2회차 이상 관람하실 분들은 거리낌 갖고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미키 17은 자기가 인류를 위해 희생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이런 찐따(?)같은 모습 때문에 더 안쓰럽네요..😖

 

 

더 이상 생명의 희생을 필요로 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이런 야만적인 문명, 죽음의 외주화 대신 영화가 내놓은 대안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에 대한 힌트는 나샤가 이 악물고 새끼 크리퍼(주코인지 무코인지 헷갈려서 미안하네용..)를 사이클러로부터 구출하려는 씬에 있다고 봅니다. 나샤가 마샬에게 항의하는 장면은 직설적입니다. 우리가 오히려 외계인이라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못살게 구냐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선 오큘러(안경)으로 영상 채증을 합니다. 마샬이 마더 크리퍼와 정상 회담(?)을 하러가기 전이었죠. 아내 마샬은 저 100마리 꼬리만 잘라오면 좋겠다고 합니다. 두 부부가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 면모만 신경쓰다가 생명을 경시하네요.

 

그런데 미키 17은 유일하게 크리퍼와 만난 적이 있고, 그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려 합니다. (그걸 깨닫게 해준 건 같이 갇혀있을 때의 나샤였죠.) 마샬이 제로섬 게임처럼 접근한다면 미키 17은 협상의 자세로 갑니다. 여기서 크리퍼들이 보여준 행동이 그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뭉쳐서 단결하는 것. 다 같이 소리지르는 장면은 흡사 인디언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마샬이 협상판을 깨고 탱크같은 걸로 깽판치는 것과 대조적으로 새끼 크리퍼들이 마더 크리퍼들을 감싸고 합심하여 유기체인 몸으로써 기만, 방어하는 저항정신이 참으로 지혜롭고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황제펭귄? 마지막에 역시 유기체를 찍어내는 비인간적인 복제 기계를 폭파하는 것 또한 역시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 엔딩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미키 17의 악몽 말이죠. 한창 나샤가 연설 중에 졸고 있을 때 꾸죠. 거기서 아내 마샬이 떨어진 피 한 방울을 맛보라고 강요하고 남편을 찍어내는 것은 가히 최고로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거기서 미키 17은 18처럼 'ㅈ 까(Fuxx Off)'를 날려줍니다. 참으로 통쾌하지 않았나요? 어쩌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는 존재의 희생으로 인해서 소극적으로 자기 탓만 하던 17이 성장했음을 확실히 보여준 장면이라서 저는 좋았습니다.

 

 

끝내며..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지만 제 후기에 대한 테마를 정하고 나니 버려야 할 점들도 많아서 너무 아쉽습니다. 베드신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종교와 기업의 결합체도 얘기해보고 싶었고, 전반부와 후반부에 미키 17이 각각 의식을 차리는 이야기 구조도 얘기하고 싶은데 다 하면 정말 끝도 없을 것 같아서요..ㅠㅠ 제가 그나마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얘기해보며 글은 이만 여기서 줄여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정리하면 우리 안의 부채 의식을 끄집어내는 SF적 우화이지 않나 싶습니다.

 


[1] 그런데 봉 감독님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언택트톡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새끼 크리퍼가 이미 한 개체 죽어 있었고, 구출해오는 또 다른 새끼 크리퍼 마저 살아 돌아올지는 불투명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집필 중에 제작진에게 자폭하는게 더 낫겠지 않냐고 했습니다. 제 추측은 보기 좋게 틀렸네요..^^

조윤빈 조윤빈
5 Lv. 2464/3240P

서른 즈음에 시네필이 되고 싶어진 영혼. 과시보단 사랑을 표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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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볼때 좀 의아했던 부분들 잘 짚어주셨네요.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보면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09:18
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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