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간단 후기.. 고급스럽게 만든 스파이물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영화화했는데, 거사를 치르기까지 며칠간에 상상력을 더해서 일종의 스파이 영화처럼 만들었습니다. 역사를 바꾼 건 아니고 비어 있는 공간에 색다른 이야기를 채워넣은 식이랄까요. 역사책 속 위인 그대로였던 <영웅>의 안중근과는 사뭇 다른 안중근이 나오며 때로 어리버리하고 겁먹고 불안해 하는 모습들로 인간미 있게 그려집니다. 물론 현빈이 연기하기 때문에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멋있고요.

독립군 내부의 갈등, 각자가 품은 고뇌, 치명적인 배신, 무겁고 정적인 분위기...비슷한 영화를 꼽으라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겠습니다. 그 영화처럼, 빠르고 긴박한 액션은 많지 않고요. 고정된 카메라로 인물들 간의 대화도 한발짝 떨어져 담으면서 연극적인 느낌을 줍니다. 빠른 액션은 일부러 지양한 것 같아요.

촬영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한국영화 최초 IMAX 전용 포맷 영화라고 홍보하는데, 정말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감탄스런 풍광들이 자주 펼쳐지네요. 정적이면서 묵직한 이야기와 합쳐지면서 즐기기보다 생각하며 음미하는 영화가 되었네요.

극중 악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일본인 배우 릴리 프랭키가 맡은 점도 놀라웠는데, 이토 캐릭터의 장면도 1차원적인 악역이 아니라 나름의 대의와 목적을 가진, 그 시절 제국주의의 첨병 같은 인물로 그럴싸하게 묘사됐어요. 릴리 본인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