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가 본 '글래디에이터 2' 리뷰
호주 매쿼리 대학의 고대사 전문 레이 로렌스 교수가,
<글래디에이터 2> 속 역사 고증 등을 가지고 영화를 리뷰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https://www.nationaltribune.com.au/gladiator-ii-how-historically-accurate-is-it/
이 교수가 12년 전에 고대 로마 시대 10대의 삶에 대한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는데, 같이 보면 좋은 참고 자료라고 하네요. 한글 자막 지원됩니다.
오프닝 장면, 로마 함대와 누미디아 도시
누미디아는 애당초 로마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로마 군함을 통한 공성전은 아주 이상하고, 실제 역사와 동떨어져있다. 왜 그 장소를 택했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로마의 제국주의적 힘과 그들에게 정복당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혹은 로마의 힘이 육지는 물론 바다에까지 뻗어나가는 걸 보여주려 했을 수도.
로마 콜로세움에 코뿔소도 나왔나?
기원전 55년 로마에서 코뿔소가 처음 목격됐다고 한다. 카라칼라 황제가 검투사 싸움에 코뿔소를 동원했다는 기록들도 있다. 코뿔소의 수명은 40~50살 정도 되기 때문에 싸움에서 살아남아서 계속 동원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코뿔소 위에 사람이 타는 건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 혹은 <매드맥스> 같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설정이다.
콜로세움에 물을 가득 채울 수 있었나?
19세기 초부터 논쟁이 됐던 사안이다. “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기울고 있다. 첫 번째 이유로 원형 경기장 아래는 방수 콘크리트 처리가 돼 있었다. 둘째로 콜로세움은 물이 가득 흐르는 호수 위에 지어졌다. 셋째, 고대 로마의 시인 마르티알리스가 콜로세움이 개장했을 때 마른 땅이었다가 배들로 가득한 바다로 변했다고 표현한 적 있다. 마지막으로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더라도 관객석에서 잘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갤리선들이 너무 크게 느껴지긴 하지만, 물을 채운 콜로세움 장면은 꽤 그럴싸하다.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 황제는 로마의 공동 통치자였나?
그 두 캐릭터는 영화에서 미치광이처럼 나온다. 두 사람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들들로 태어나서 서기 211년 (지금의 영국) 요크에서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유해를 가지고 로마로 돌아오는데,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뒤 카라칼라는 동생을 여러 번 죽이려 시도했고 결국 성공한다. 두 황제는 “힘과 명예를”이라고 외치는 검투사들과는 대조적으로 유약했다. 카라칼라는 서기 217년까지 생존해서 독일과 중동에서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였다.
로마와 오스티아(로마 항구)의 도시 풍경 묘사는?
인구 과밀, 빈곤, 인상적인 폭동 장면 등으로 독특한 도시 풍경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했다. 그리고 군중들이 모이는 콜로세움(입장료 무료)으로 배경을 전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인구 100만을 달성한 대도시 로마는 지배층들이 군중을 두려워했으며, 프레드 헤킨저가 연기한 카라칼라 황제의 모습으로 그 점을 깔끔하게 표현했다.
(아래 두 문단은 스포일러 주의)
검투사 문화
검투사 문화와 관련해서는 아프리카 노예 출신의 검투사였다가 자유민이 된 후 런던 출신 아내와 라틴어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가진 의사 캐릭터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검투사에게 아내가 있다는 증거는 로마 외곽에 세워진 공동묘지의 검투사의 묘비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검투사라는 직업은 2024년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종합격투기나 UFC를 통해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죽음에 맞서는 검투사들에 대한 고대인들의 존경심은 영화 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또 영화 속에서 화살에 맞아 죽는 사람들의 묘사는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같은 후기 서양 예술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글래디에이터 2>에서 검투사들의 반란 장면은 <스팔타커스>(1960)를 떠올리게 하며, 루시우스의 어머니가 사실 로마인이었다는 설정은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1979)과 유사하다.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가 궁수들의 활에 맞아 죽는 장면은 <세바스찬>(1976)을, 물 속 상어들은 <죠스>(1975), 코뿔소 통구이 장면은 펠리니 감독의 영화 <사티리콘>(1969)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이것이 우리의 길이다”라는 대사는 검투사의 또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만달로리안>에서 따온 것이다.
(스포일러 끝)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폭정과 자유를 검투사와 연결 지어서, 주인공 루시우스가 “로마의 꿈”과 “새로운 공화정(역사적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던)”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다는 내용이다. 2024년 현실 세계에서 여러 국가들의 독재 체제 혹은 민주주의가 무너진 가운데, 영화에는 국가와 국민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정치인들과 폭군들이 등장한다. 마크리누스 역의 덴젤 워싱턴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로마의 구세주로 변모하는 루시우스(폴 메스칼)와 대비되는 파괴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정치가를 아름답게 연기한다.
검과 샌들, 그리고 약간의 호모에로티시즘 스펙터클 측면에서 <글래디에이터 2>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24년 전 1편이 그랬듯이 로마시대 배경 서사극의 익숙한 길을 깔끔하게 밟아간다. 영화는 영화일 뿐, 역사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글래디에이터 2>는 엄청난 재미를 주며, 여러모로 고대 로마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1편이 그랬듯이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 고대 로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길 바란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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