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1987)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평작. 스포일러 있음.
평작이지만, 몇가지 잊을 수 없는 장점들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다리오 아르젠토 스타일로 재창조한 것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든 오페라영화라서 그런지 아주 자연스럽게 오페라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호러영화만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예술적 감각과 연출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리고, 주제가 대단히 파격적이다. 사람이 살해당하는 것을 직접 눈앞에서 보아야만 성적 쾌감을 느끼는
여자와, 자기도 어머니의 그런 성격을 물려받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딸 이야기다. 이것이 영화 처음에
딱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딸의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드러나는 식의 추리물 구성을
따르고 있다. 주인공인 딸이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관객들은 궁금해진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면서
딸의 행동이나 동기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살인마가 주변에서 얼쩡거리는데도, 주인공의 대응은 웬지 소극적이다.
관객들에게는 주인공이 답답하게만 느껴지는데, 나중에 가서야 주인공이 숨기는 것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살인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예술가적 소양이 있다"는 평을 듣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살인예술(?)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주인공이 살인 장면을 보며 눈을 감지 않도록,
범인이 주인공의 눈에 바늘을 붙이는 장면이 아주 유명하다.
영화는 희미해졌어도, 이 장면은 아직도 유명하다.
이것도 그냥 보여주기식 연출이 아니다. 영화의 주제와
긴밀히 연관된 것이다. 이 영화의 살인마는 "저렇게 주인공의 눈에 바늘들을 붙여야만 했다".
이것은 다리오 아르젠토가 살인장면을 그냥 자극적으로 연출하는 과시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는 예술적 감각과 심도 있는 주제를 구축할 수 있는 예술적 능력이 있다.
살인마가 다니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잔인한 장면들이 연이어 나온다.
결국 이것이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다. 가령 살인마 해결의 주요단서인 목걸이를
살해당해 죽어가는 여자가 삼켜버린다. 범인은, 칼로 여자의 배를 가르고 위장을 갈라서
목걸이를 꺼낸다. 이것을 상세히 보여준다. 다리오 아르젠토식 살인예술이다.
하지만, 추리물로서도 아주 효과적인 장치들이 다수 있다.
범인의 시점에서 카메라가 움직이고,
오페라 관계자가 카메라를 보며, "당신이 왜 여기 있냐? 자, 내가 함께 나가자"하고 친밀하게 말한다.
즉, 범인은 엉뚱한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이라는 뜻이다.
살인마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목걸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추리도, 본격적인 추리물로서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영화와 함께 서서히 보여주는 방식도 참 노련하게 연출되었다.
추리물로서 연출이 잘 된 탓에, 누가 살인마인지 알 수 없는 주인공이,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는 자기 가장 친한 친구까지도. 관객들도 주인공에 감정이입한다. 관객들도 덩달아, 누가 범인일 지 몰라서 모든 사람들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된다. 저 친한 친구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칼을 뽑아들고 다른 사람 배를 갈라 죽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화끈하고 기발하게 연출된 장면은 이것이다.
살인마는 도구실에서 까마귀들을 죽인다. 그런데, 까마귀는 눈 한번만 째려봐도 잊지 않고 꼭 복수를 하는 새로
잘 알려져 있다. 오페라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사고로 수많은 까마귀들이 극장 안으로 풀려난다.
까마귀들은 허공을 날며 범인을 찾는다. 복수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살인마의 정체를 몰라도, 감각이 발달한
까마귀는 알 수 있다. 카메라는 까마귀의 시점으로 찍으면서, 하늘에서 어지러울 정도 속도로 움직이면서
아래를 여기 저기 훑는다. 이게 진짜 까마귀의 시점에서 범인을 찾는 것 같다.
까마귀들은 살인마를 찾아서 모여들어 쫀다. 살인마의 눈알을 잡아 뽑는다.
하지만, 많은 비범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평작이다.
비범한 장면들을 맥빠지고 평범한 방식으로 연결하였다. 비범하지 않은 장면들은 잘 봐줘야 평작밖에 안된다.
결말은 후다닥 끝내 버리는 감독의 습관도 여전하다.
그래서, 영화에서 걸작 퀄리티가 느껴지지 않는다. 걸작인 부분들이 분명 적지 않은데, 영화 전체는 평작으로 느껴지는 묘한 상황이다. 오페라장면 연출 등을 보면, 분명 연출력은 탁월하다. 그런데, 왜 영화가 맥빠지고 지루한 거지? 이 부분을 해결했다면, 다리오 아르젠토는 훌륭한 거장으로서 높이 평가되었을 것이다. 히치콕 이후
추리/고어물에 이정도까지 빛나는 재능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 다른 추리물 전문감독과 비교하면, 미켈란젤로와 우수한 페인트공 정도 차이다. 하지만, 다리오 아르젠토는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커리어의 막을 내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추천인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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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밑에 바늘 붙인거 끔찍하군요

악몽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아르젠토가 걸작들만 만든것은 아니지만
독창적인 스타일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인데... 스토리는 기억 안 나도 강렬한 이미지 만큼은 기억 속에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