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31] 지옥의 문을 열다 - 트라우마
트라우마 - Trauma (2017)
지옥의 문을 열다
이 영화를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하군요. 쉽게 접근하면 고문 포르노인데,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쏘우>, <호스텔> 같은 영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는 칠레의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의 한 부분을 이야기와 인물에 반영했고, 영화에서 다뤄지는 끔찍한 상황의 일부는 실제 기록의 재현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단지 잔혹한 영화로서만 얘기하고 취급된다면, 감독이 굉장히 화를 낼 것도 같습니다.
분명한 건 영화가 시작된 후, 7분이 채 지나기 전에 관객은 몽둥이로 머리를 강타당한 것처럼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제 아무리 하드한 영화에 단련이 되었다고 해도, <트라우마>의 프롤로그처럼 선을 훌쩍 넘어버린 상황을 접하면 온 몸이 굳어버릴 겁니다. 악몽 같은 고문과 학대 장면이 일으키는 불편한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트라우마>의 끔찍한 도입부 장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높은 수위의 신체적, 정신적 고문이 폭풍처럼 지나면 화면의 톤이 180도 바뀌면서 많은 세월이 흐르게 됩니다. <트라우마>의 배경은 시골 마을입니다. 네 명의 여성이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길을 묻기 위해 들린 남자들만 있는 바에서 위협을 느끼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날 밤, 두 남자가 집을 찾아와 위협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인데, 네 명의 여성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강간을 합니다. 다음날 한 여성은 총에 맞아 죽고, 나머지 세 명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을 공격한 후안이란 이름의 남자를 찾아 나섭니다.
<트라우마>의 소름끼치는 프롤로그 장면에서 보게 되는 폭력은 영화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78년의 칠레입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해 철권 통치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 고문, 살해를 당합니다. 프롤로그는 피노체트 정권의 요원인 남자가 반체제 인물을 고문하며, 그 현장에 아들을 가담시킵니다.
영화의 시작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대략적인 역사의 배경 스토리를 모르고 <트라우마>를 보게 되면, 후안이란 인물의 무자비한 폭력의 배경과 그 내면을 헤아리기 힘들고, 그저 끝 모를 잔혹 장면들만 보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후안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트라우마>는 평범한 인간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고문과 세뇌, 마약에 끊임없이 노출이 되면 누구라도 후안과 같은 괴물이 될 수 있고, 끔찍한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살아남은 여성들이 경찰과 후안을 추격하는 과정은 광기의 살육으로 채워집니다. 인물들은 하나 둘씩 후안과 그의 아들에게 살해당하며, 여성의 경우 고문이 더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후안의 본거지에서 보게 되는, 납치된 여성들이 장시간에 걸친 학대와 강간으로 무너진 모습은 악몽 그 자체입니다. 여기에 화면 톤의 채도를 낮춘 어둡고 칙칙함을 의도적으로 이어가기 때문에, 살육의 효과들은 더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영화에 전체적으로 쓰인 시각 효과는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연기한 모든 배우들이 굉장히 고생을 했을 것 같은 영화입니다. 많은 장면들이 감정적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이기 때문에, 아무리 연기라고는 해도 캐릭터에 몰입을 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버텨내기 힘들었을 거라 짐작됩니다. 특히 후안을 연기한 다니엘 안티빌로는 강렬합니다. 고통과 쾌락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불안정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를 해내면서, 대물림의 미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후안의 내면과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트라우마>는 고어 영화에 웬만큼 단련된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추천할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호러 팬들은 뛰어난 특수 분장과 효과로 만들어진 가짜 폭력과 피범벅에 열광하는 것이지, <트라우마>처럼 실제 역사에서 행해진 잔혹 행위를 날것처럼 재현한 것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트라우마>는 뛰어난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가짜 폭력의 세계를 담았지만, 이 영화의 끔찍한 폭력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의 영역이기에, 우리 뇌리엔 트라우마의 잔상이 남게 됩니다.
흔히 인간보다 더 사악하고 무서운 존재는 없다는 말을 하거나 듣게 됩니다. 이 말이 품고 있는 진짜 의미와 공포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영화 <트라우마>를 보게 되면 몸서리치게 알게 됩니다.
다크맨
추천인 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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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절단~ 좀비~ 괴물..은 충분히 보는데 고문 영화는 견디기 힘든 ㅜㅜ 끝까지 보기 힘들어요
왠만한 고어 영화는 잘 보는데 왠지 못 볼 거 같네요..
삼체를 보고나서 역사가 SF에 개입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는데 생각해보니 호러는 이걸 훨씬 이전부터 해내고 있었네요. 생각해보면 역사란 풀리지 못한 한의 기록이니까요. 쫄보라 이 영화를 감히 보진 못하겠지만 이렇게라도 내용이나마 알고 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