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광견의 습격 - 쿠조
쿠조(1983)
광견의 습격
개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호러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사무엘 퓰러 감독의 <마견>, 그리고 루이스 티그의 <쿠조> 두 편을 꼽을 수 있습니다. <마견>이 흑인을 공격하도록 훈련 받은 흰색 세퍼드를 통해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무게감 있게 그려냈다면, <쿠조>는 좀 더 대중적으로 즐기기 좋도록 장르 그 자체에 충실한 영화로, 광견병에 결린 거대한 세인트 버나드와 모자의 대결을 담은 작품입니다.
쿠조는 자동차 수리공인 조가 기르는 개의 이름입니다. 어느 날 쿠조는 토끼를 쫓아다니다 굴속에 있는 박쥐에게 물려서 광견병에 걸리게 되죠. 시간이 갈수록 흉포해지는 쿠조는 결국 주인을 물어 죽이고, 자동차 수리를 위해 찾아온 도나와 태드, 모자에게까지 덤빕니다. 둘은 가까스로 고장 난 자동차 안으로 피신했지만, 쿠조는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물어뜯을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도나와 태드는 찌는 듯 한 더위 속에서 점점 지쳐가게 되는데, 결국 도나는 탈수 증세로 위험해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쿠조와 맞섭니다.
<쿠조>는 스티븐 킹의 동명의 장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죠. 킹이 오토바이 수리를 하러 갔을 때 위협적인 개를 만난 경험에 영감을 받아 쓴 이야기라고 합니다.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광견병으로 흉악한 괴물이 되었을 때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공포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고장 난 자동차 안에 갇힌 모자와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기회를 엿보는 쿠조와의 30분에 걸친 대치 상황은 팽팽한 신경전으로, 긴박감이 넘치는 명장면입니다.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도나가 아들을 살리고자 야구방망이를 들고 쿠조와 맞서 싸우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쿠조>의 긴장감과 공포는 도나를 연기한 디 왈라스 스톤의 열정적인 연기의 힘 덕분이 큽니다. 그녀는 광견병 걸린 개의 위협에 공포를 느끼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특히 자동차 밖은 쿠조의 위협으로부터, 차 안은 뜨거운 열기로 인해 지쳐가는 상황에서 아들 태드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처럼 느껴집니다. 영화가 공개되고 디 왈라스 스톤의 연기에 가장 감탄을 한 부분이었다는 얘기들도 있었죠.
쿠조가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훈련을 잘 받은 개의 열연을 넘어서 진짜가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섭도록 사실적입니다. 광견병에 걸려 발광하는 쿠조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5마리의 세인트 버나드가 투입되었고,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되는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애니매트로닉스로 불리는 로봇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쿠조의 다양한 면모를 화면에 담았습니다. 쿠조의 위협적인 움직임은 촬영의 공도 컸는데, 훗날 <스피드> <트위스터>를 연출한 얀 드봉의 솜씨입니다. 여기에 더해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들은 날것의 느낌을 자아내고 있어,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지죠.
<쿠조>는 개가 등장하는 호러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무서운 영화입니다. 루이스 티그 감독은 킹의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겨왔지만, 암울하기 짝이 없는 원작의 엔딩과 달리 영화의 결말은 바꿨습니다. 킹 본인이 각본 작업에 많이 관여했기 때문에 바뀐 엔딩에 그의 바람이 반영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킹은 자신이 쓴 소설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쿠조>에서 결국 탈수 증상으로 죽는 아들 태드를 살리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죠. 저는 소설의 비극적이고 암담한 마무리를 더 좋아하지만, 영화를 볼 때는 쿠조의 위협적인 모습에 너무 시달려서인지 희망적인 변화를 준 엔딩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쿠조>를 좀 더 흥미롭게 보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읽으면 여러모로 득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표현을 할 수 없었던 부분들, 쿠조가 광견병에 걸리면서 겪는 심리적인 변화들이 소설에 자세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묘사를 통해 쿠조가 왜 그렇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스티븐 킹이 묘사한 쿠조의 심리적 표현들은 정말 훌륭합니다.
1. 극중 쿠조가 자동차를 공격하는 장면은 조련사가 스턴트맨 대신 차 안에 타서 개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유도하면서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 차 안에 있었어야 할 디 왈라스 스톤은 촬영 중 코를 물려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2. 광견병 증세를 보이는 쿠조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야 했는데요. 그 거품은 달걀흰자와 설탕을 혼합해서 만들었지만, 연기하는 세인트 버나드가 계속 핥아 먹어서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3. 도나를 연기한 디 왈라스 스톤은 인터뷰를 통해서 <쿠조>가 자신이 참여한 영화 중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촬영이 끝난 후 탈진이 되어서 3주 정도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4. 도나와 태드는 뜨거운 여름날 차안에 갇힌 상황이지만, 실제 촬영을 할 때는 굉장히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차안에서 히터를 켜고 몸을 녹여야만 했다고 합니다. 물론 촬영이 시작되면 소음 문제로 히터를 꺼야만 했고요.
5. 스티븐 킹은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쿠조>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하는군요.
다크맨
추천인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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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공포영화들이 오히려 요즘 매끈한 영화들보다 더 날것 같고 사실적이에요.
와... 불금호러에 이게 나오다니.. 감사합니다. 간만에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옛날 영화공부할때 리스트에 꼭 있던 작품.
고르고님 말씀처럼 예전 호러들이 더 좋은게 많은것 같습니다.
근데 왜 하필 세인트버나드... 알프스에서 목에 술통달고 인명구조하는 종을 ㅋ.. 역설적임을 노렸을까요..
영화 베토벤이 생각납니다.
다른 얘기인데 만약 저 광견병 견이 골든리트리버나 사람위에서 논다는 보더콜리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ㅎㅎ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딴 영화나 드라마에서 쿠조를 종종 언급하더군요.
대표적인 게 드라마 프렌즈. 주인공 중 한 명이자 배우지망생 조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언급합니다. 두번째가 얼마전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 리부트. 작중 교사인 폴 러드가 수업 땡땡이칠때 무려 초등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틀어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악령에 씌여 괴물개로 변하죠.) 쿠조의 유명세를 잘 보여주는 장면들인듯 합니다^^
지금 찾아보니 유일하게 웨이브에만 올라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