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은 되게 좋아한다면서요? <신 가면라이더> 후기
어렸을 적에 봤던 특촬물은 안타깝게도 가면라이더가 아니라 파워레인저, 그러니까 전대물이었습니다
제 세대는 아마 매직포스 세대겠네요
어린놈의 자식이 파워레인저는 유치한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TV에서 매직포스 할 때마다 챙겨보던 겉과 속이 다른 녀석...
전대물 아닌 것으로는 유캔도를 봤었고요
집에 유캔도 장난감도 있었는데 열쇠를 넣고 찰칵하며 넣는 그 손맛이 죽여줬습니다
어느 순간인가 특촬물은 졸업하게 되었어요
특촬물 같은 시리즈를 따라가기엔 세상엔 따라가고 싶은 다른 시리즈가 너무 많았거든요
그러다가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로봇물이었습니다
파일럿이 거대한 로봇을 타고 나쁜 놈들을 물리치는 그 멋진 모습을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거대로봇을 좋아하다보니 어느새 제 눈앞엔 거대로봇물 가운데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난해하며, 가장 특이한 작품이 와있더군요
그렇게 전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푹 빠졌습니다
에반게리온의 다사다난한 팬들의 기다림은 끝이 났고 안노 감독은 아마 무병장수해서 천수를 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욕을 드럽게 많이 먹었으니 이제 본인이 하고 싶은,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작품을 내고 싶었겠죠
안노 히데아키를 욕하면서도 내심 에반게리온의 팬이자 안노 감독의 팬인 저에게 <신 가면라이더>는 필연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전 거진 15년 만에 다시 특촬물로 돌아왔습니다
가면라이더라는 시리즈와의 첫만남이기도 하고요
유서깊은 특촬물 시리즈를 원조 작품의 리메이크이자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작품으로 OTT를 통해 만났다는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인류의 지속 가능한 행복이라는 뒤틀린 목적을 위해 윤리를 저버린 비밀결사대 쇼커는 인간의 몸에 동물, 곤충의 DNA를 섞어 개조인간을 만드는 비인간적인 실험을 하게 됩니다
이 실험의 여파로 평범한 사람이었던 혼고 타케시는 메뚜기 DNA를 받아 변신을 하면 보통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압도적으로 월등한 개조인간이 되어버렸고 이에 평범한 삶을 빼앗아버린 쇼커를 저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대적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스크롤이 올라오면서 느껴지는건 바로 원작팬들의 환호였습니다
가면라이더, 그중에서도 쇼와 라이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보다 더 열광할 수 있는 작품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건 팬이 아닌 자들의 어리둥절함입니다
"이게... 액션영화?"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거에요
사실 이게 혹평이라기 보단 특촬물, 더 나아가서 가면라이더만이 가지는 감성에 당황스러움이 더 클겁니다
영화가 만들어진건 2023년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할리우드의 가면라이더 아이언맨을 보고 자랐어요
눈알이 회까닥 돌아가는 액션과 CG로 이미 우리들의 눈높이는 저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초반부의 액션이 당대 쇼와시대의 액션촬영기법을 사용합니다
공중제비를 도는 컷을 이어붙여서 점프력을 표현하고, 퀵줌과 70년대의 효과음을 이용해 주인공을 등장시킵니다
심지어는 싸우기 시작하는 순간 장소를 바꿔버리는 당시의 연출까지 재현합니다
2023년, 레이와 시대에 이런 낡고 낡은 연출을 사용하는 액션은 당연하게도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아니 21세기의 5분의 1이 지나간 2020년대에 이정도 낡은 액션을?
그런데도 보다보면 마음 속 흔히들 말하는 뽕이 차올라요
과거 명작의 오마주를 보는 듯한 고양감이 느껴집니다
어째서일까요?
액션장면이 굉장히 잔혹합니다
주먹 하나에 피가 한 양동이가 흩뿌려질 정도로 피가 어마어마합니다
즉 이 영화는 기존의 특촬물을 보는 저연령을 타겟팅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소리겠죠
초반에 나오는 거미오그가 루리코를 잡고 처벌하려고 할때도 두 눈을 손가락으로 터트려버릴려는 듯한 묘사로 폭력성도 띕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잔혹한 묘사도 볼 수 있는건 성인층일테죠
어린애가 음 치킨 음 치킨 하면서 논다고 로보캅이 애들 영화는 아니잖아요?
즉 이 영화는 쇼와라이더를 봐왔던 성인들을 노립니다
쇼와라이더를 보던 이들은 어릴적 자신들이 보며 고양감을 충족했던 그 액션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라이더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변신장면까지
덕후는 덕후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압니다
아마 쇼와라이더 팬이라면 어둠속에서 헬멧의 전등이 켜지며 포즈를 취하는 그 장면에선 미리 준비해놨던 하기스 매직팬티 성인용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단점이 안 보이는 작품은 아니죠
원작 에피소드 5~6개를 한 영화로 압축시킨 것 같이 너무 빠른 전개랑 과하게 소모품처럼 이용되는 괴인 캐릭터들이 아쉽습니다
거미 오그와 박쥐 오그는 너무 빠르게 퇴장하고
전갈 오그는 왜 나왔는지 이상할 정도로 등장 자체가 무의미하며
사마귀 오그는 생긴것마냥 등장 자체가 산만합니다
벌 오그가 그나마 화려했으나 빠르게 퇴장한 건 매한가지죠
거기에 더불어서 세뇌된 가면라이더 2호 이치몬지와의 대결, 메뚜기 오그 무리와의 대결, 가면라이더 0호와의 결전까지
숨돌릴 틈도 없이 전개가 휙휙 지나갑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기 보단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등장인물을 집어넣으려해요
마치 마이리틀포니의 한 에피소드인데 메인식스 모두가 제각각의 교훈을 얻는 이야기를 담으려는듯한 느낌이에요
하나에 집중하기도 어려운데 대여섯명을 우르르 등장시키는건 그냥 감독 본인이 괴인을 여럿 보고싶었다 말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마이리틀포니 시즌5 9화 다시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자막으로 보니까 다행이긴 한데 오그먼트들의 발음이 너무 뭉게집니다
헬멧 쓰고 말하는 것 같아요
아 잠시만요... 헬멧 쓴 거 맞군요
근데 이럴 거면 후시녹음을 해서 발음을 챙겼어야죠
가면라이더 뿐만 아니라 모든 특촬물이 그렇게 발음을 챙기는데 유독 여기서만 헬멧 고증을 지키네요
결과적으로 보자면 전 성공적인 작품이라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쇼와 라이더들을 노리고 쇼와 감성을 가득 담은 가면라이더 극장판이고 그때의 감성을 이해한다면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작품이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현대의 감성을 배제한 것도 아닌 것이 맨몸액션이나 CG액션도 충분히 화려합니다
특히나 벌 오그의 스피드스터 액션은 <이터널스>의 마카리 액션에 버금간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저 이야기가 좀 그럴 뿐이지 충분히 재밌는 영화
충분히 화려하고 충분한 가면라이더 특유의 중2병을 담고 있습니다
누구도 그 이상을 바라진 않겠죠
이게 마블도 아니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의 7.5점입니다
작성자 한줄평
"가면라이더는 원래 이랬다."
PS. 이거 때문에 가면라이더에 입문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게 제로원이었는데...
다시 가면라이더를 졸업하게 만드는 작품이더군요...
스누P
추천인 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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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저 촌스러움마저 고증이란 탈을 쓴 안노 감독의 유아기적 퇴행처럼 느껴지더군요. 한때 에바로 신세기의 작가로 찬사받았지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건 과거 청소년기의 덕질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있는 게 불과한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안노에게는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주목하는 작가리스트에서 그를 지우려고 합니다.
좀 궁금해집니다.

빵터졌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요일날 기대되는 작품 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