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삼체 - 간단 후기(노 스포)
지금은 약간 소원해진 후배 감독이랑 책 하나를 놓고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배는 주로 SF에 관해 조예가 깊은 친구였고, 저는 추리스릴러를 위주로 탐독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서로 같은 책에 꽂히면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그 작가를 위시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링월드가 주제인 날도 있었고, 까마귀의 엄지가 주제인 날도 있었습니다. 마이클 코넬리가 다루어지는가 하면, 시계 태엽 오렌지가 술안주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 아마도 그나 저에게 이러한 잉여들의 지식 놀음은 서로에 관한 존재론적 담론을 나누는 생존의 한 방점이기도 했지요.
10년쯤, 11년쯤 전이었나.
그날, 그밤에, 하루를 세우며 나누었던 작품이 <삼체>였습니다.
발간된 1권으로, 책 주변에 대한 설명이나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터라 구글링을 하고 관련된 이론이나 나눌 이야기로 밤을 새던 그때는, 류츠신이 각광을 받을 거라는 데 이견 없는 예찬을 했더랍니다.
중국의 역사와 철학, 거기에 최신 과학이론을 접목한 책은 새로울 것 없는 것들을 새롭게 엮었고, 별것 아닌 것들을 경탄의 위치로 올린 역작이었습니다. 다들 SF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SF를 소화하내는 구매력 있는 독자가 1천 명이 채 되지 않는 한국에서 출간된 것도 신기했지만 이후 잔잔하게 일어나는 반향 또한, 물론 저는 더 거대하게 일어날 거라 속단했습니다만, 분명 의미 있었습니다.
그 원작이 드라마화 되었습니다.
지난해였었나요, 익무에서 손별이 님께서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 주셨습니다.(불법 아닌. 지금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보았던 삼체는,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약간 중국화된 드라마였습니다.
이번 넷플릭스 삼체는, 각색된 느낌이 납니다만, 그 나름대로 원작을 잘 살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한 상황을 통해, 그 현상을 대하는 과학자들의 모습과 이를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 출발한 교차를 통해 인류의 역사, 전쟁의 상관성, 과학의 진화, 미래에 대한 역설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디스토피아적인 상황 또는 과학이 만든 재앙에 가까운 특정 상황이 도래했을 때, 일반인이 아닌 고도의 과학적 지식을 지닌 특정인의 대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음모론이라 할 수 있는 특정 세력의 움직임을 다룬 드라마에 비해 <삼체>는 높은 확률로 과학자 내지 석학이라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삼체>에서 다루어지는 과학적 이론이 책에서 설득력 높은 장광설로 다루어졌다면 드라마에서는 빨리 흘러버려 아쉬운 측면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보고자 하는 방향에서 보이는 것이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SF가 가진 순기능 중에는 순수한 지식에 대한 탐구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래에서 온 전사가 타임머신을 타고 올 수 있는 것도, 또 만년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 또한 이러한 과학적 상상력이 잉태한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삼체>에는 이러한 결과물에 대한 열매보다는 그 결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순수한 SF적 지식 탐구에 더불어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보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우 놀라울 정도의 끔찍한 장면이 있기도 하고, 조금은 정상이라 보기 힘든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보입니다만, 그 역시 특정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 즉 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SF는 추리 스릴러와 결이 다르고, 분명하게도 판타지와 결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야말로 정통 SF입니다!!! 살짝 양념만 묻었거나 오로지 상상으로만 쓴 게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 정확하고 의미 있는 과학적 이론과 이론을 발전시킨 실행 역시 포함된 정통 SF!
덧붙여 추리 스릴러에 정통하거나 전문가라고 하나, 저는 추리 스릴러가 SF나 판타지보다 낫다 또는 못하다 같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개인의 취향이거든요. 다만 우리가 접하는 SF 중에서 단순히 상상만을 끌어와 잡설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이론 과학을 실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모해 보고 이를 과학자 스스로도 탐독할 수 있는 정통 SF는 드뭅니다. 말하자면 그 수많은 SF 작가들이 있었음에도 아서 클라크가 지금껏 회자되는 이유라고 말한다면, 나쁘지 않은 비유가 아닐까.
시즌1이 조금 밋밋하게 끝나기는 했습니다만! 가히 최고 수준의 SF드라마였다, 말해주고 싶네요. 부디 용두사미로 끝내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시즌1은 그 나름 거대했으나 빌드업 단계에서 끝을 내버려 호불호 응당 있을 듯하더이다. 그러나 흡입력 있고, 아는 만큼 보이는 좋은 드라마였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원작 읽어보시고 드라마 보시기를 권합니다.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겁니다. 류츠신도, 삼체도!
한줄평하자면!!!
이론과학과 실행과학, 외계인과 인간 사이에서 과학적 결론에 다다르는 석학의 인간적 행태를 맛보게 해주는 정통 SF 드라마!!!
추천인 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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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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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얼른 보고 싶네요. 질질 끌지 말고 얼른 끝내 줬으면 싶은 맘은 욕심이겠죠.
소설이 아주, 그냥, 대박이었습니다.
하나의 작품으로 하루를 얘기 나눌 수 있는 지인 분이 계시니 좋으네요 +_+
기대됩니다!
'SF 중에서 단순히 상상만을 끌어와 잡설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이론과학을 실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모해 보고 이를 과학자 스스로도 탐독할 수 있는 정통 SF' 이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드라마를 다 보고 오늘까지 책을 읽고 있는데 소설 속의 장면을 재현한 걸 보니 원작 팬들이 아쉬울 순 있어도 못 만들었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아..음..SF물은 전통적으로 취약한 편인데 괜찮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듄도 제 취향이 아닌데 도전하기가 꺼려지는데 워낙 이슈(?)가 되다보니 안볼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