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유][리뷰] 코어(2003) - 추천은 못하고 혼자 좋아하는 재난영화

[코어]는 그 무렵 시즌마다 나오던 재난블록버스터들 중 하나인 영화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이래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의 전자기장에 문제가 생기고 크고작은 이상현상 속에서 이를 간파한 주인공이

그 원인은 전자기장을 형성하는 코어, 그러니가 지구의 외핵이 멈췄기 때문이란 것을 알아냅니다.

태양풍과 우주방사선을 막아줄 전자기장이 기능을 상실하면 1년 안에 인류는 멸망하게 생겼고

전문가(과학자와 우주비행사)로 구성된 팀은 외핵을 다시 되살리기 위한 지구속 탐험에 나섭니다.

전지구적 재난을 나름 신선한 방식으로 구성한 영화는 그러나 그리 좋은 평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세기말부터 해마다 유사한 재난물들이 양산되었고 

그런 중에서도 소박한 규모의 영화는 온통 클리셰로 가득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이 올라온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어제도 재관람을 하게 되었고요.

우선 과학적 디테일과 관련해서 지적들이 많은 영화인 걸로도 압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아는바가 미천하여 자세한 언급은 넘기도록 하고...

연출적 지점에서 영화가 비판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

전조증상을 보여주고 아무도 몰랐던 위기를 일개 과학자 홀로 직관과 데이터로 증명,

그리고 위기가 무엇인지 책임자들 앞에서 어린이 과학교실처럼 설명한다거나

당사자가 직접 해결에 뛰어드는데 해결의 방법은 무려 '핵폭탄'이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 시작부터 예견할 리스트에 따라 동료들이 죽어나갑니다.

막판에 이 모든 위기의 이면에 정부의 음모가 숨어있고 

음모의 주동자에게 마지막 한 방을 먹이는 건 창백한 너드 해커고요.

온통 어디서 본 듯한 설정과 전개들이죠.

이것 말고도 미스터리나 위기의 상황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유사한 연출이 반복되는 게으름도 지적받습니다.

예컨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이지?'라거나 '맙소사, 이런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지?'

또는 '아.... 끝났어. 여기까진가 끝인가 보오.'라는 상황에서 한 인물이 무언가 지니어스한 발상을 하는 거죠

온몸으로 '유레카'를 외치는 듯한 모습 직후에 이어지는 건 '기초적 과학상식'에 입각한 해결책이고요.

(심지어 이건 교과서에도 나오는 기초상식이잖아라는 대사마저 반복됩니다)

확실히 영화는 엉성하고 야심이 없으며 각본은 게을러보이기까지 합니다만

그럼에도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불편함 없이 계속해서 위기-해결-위기의 구조를 반복하는 호흡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것을 적절히 연기해내는 캐스팅 때문일 겁니다.

일단 틀어놓으면 설렁설렁 끝까지 보게되는 영화라고 할까요.

다크나이트의 '투페이스'로 익숙할 애런 에크하트는 순수하고 영리한 몸짱 과학자라는 

자칫 우스워질 수 있는 주인공 역할에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외모와 연기를 보여줍니다.

힐러리 스웽크는 실패한 적이 없는 만능의 여성 우주비행사로 나오는데 

여주인공임에도 분량이 적은 편이지만 흔들리고 성장하는 전문가로서 여성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연기해요.

이외에도 풍성한게 등장한 스탠리 투치, 모처럼 선역으로 등장하는 체키 카료

재활용 연기 같지만 그래도 할 일은 다 하는 DJ 퀄스 등.. 익숙한 배우들로 가득하죠.

알프리 우다드도 이후 꾸준하게 해먹는 카리스마 중간관리자로 나오기도 하고요.

시대보정과 예산보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 이해해줄 법한 특수효과들도 볼만 합니다.

특히 초반 영국에서의 세때들 장면과 버질호의 지저탐험 장면들은 모두 새롭고 스릴 넘쳤어요.

(반면 로마 콜로세움 장면은 과학적 고증을 떠나서 그래픽적 효과가 너무 싼마이....)

재난물이나 소프트한 SF를 좋아한다면 넥플릭스에서 한 번쯤 봐도 좋을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

마지막 임무를 마친 버질호가 맨틀을 빠져나오는 부분만큼은 지금 봐도 무리수다 싶긴 합니다.

언옵태니움의 성질을 이용해 전력을 되살리는 건 그렇다 쳐도...

채굴광선도 없이 내려갈 적에 그렇게나 많던 위험요소는 모조리 피해가며 나왔다고?

++

재난의 발견과 해결 마지막 생존까지 남주 애론 에크하트의 몫이지만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은 델로이 린도가 연기하 브래즈 박사 덕이었죠.

언옵태니움도 채굴광선도 버질호의 설계도 모두 이 사람이 한 일이니까요.

사실상 이 영화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