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리뷰] 스파이더맨 '당신의 모든 것을 붙잡을 웹슈팅 줄타기 향연'
(본 리뷰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약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평단과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속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번 작품은 모든 면에서 전작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확실하게 발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보는 내내 거대한 스크린이 저의 눈도, 마음도 계속해서 붙잡는 듯한 영화적 체험을 맛볼 수 있었는데, 특히 서사적 측면에서 대중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작보다 더욱 심오한 주제로 나아가려는 시도가 정말 좋았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서사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멀티버스와 스파이더맨 코믹스의 이보다 완벽한 결합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스파이더맨들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공식 설정'이라는 현실 창작자들의 암묵의 룰을, 영화 내에서 캐릭터들의 주요 갈등 소재로 사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공식 설정상 스파이더맨은 소중한 사람(서장)을 반드시 잃어야 하고, 마일스는 결국 한 명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스파이더맨들을 적으로 돌리는 선택을 하고 맙니다.
인물 관계에 조금 더 주목해 볼까요? 그웬과 마일스는 정체성 문제로 가족과의 갈등을 겪고 있는데, 우리가 청소년기에 흔히 겪을 법한 일이죠. 여기서 그웬은 아버지에게 실망해 다른 멀티버스로 떠나지만,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합류해서도 마냥 일이 잘 풀리지는 않습니다. 특히 스파이더 우먼이 그웬에게 임무를 주는 모습은 전형적인 상사와 인턴 관계를 연상시키는데, 부모에게서 독립한 청소년들이 사회 초년생으로써 겪는 일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좋은 장면입니다.
마일스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갈등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미겔과는 질서에서, 부모님과는 주권에서, 심지어는 그웬과도 갈등 관계가 생기죠. 어더유만의 특징이라면 이 모든 갈등이 거미줄처럼 유기적이고 끈끈하다는 것. 특히 미겔은 명백한 반동 인물의 위치에 서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그의 신념과 그 이면에 숨은 고독을 이해하게 되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일즈에게 더욱 공감이 가고 응원하고 싶어지며, 그웬과 다시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된다는 점에서 균형을 잘 맞춘 셈입니다.
균형을 맞춘 건 마일즈와 미겔뿐만이 아닙니다. 이쯤에서 본작의 단점을 늘어놓자면, 초반이 너무 깁니다. 본작의 초반은 부모와의 갈등 - 스팟 - 갈등 - 갈등 - 스팟 구조로 형성되어 있는데, 솔직히 멀티버스 갖고 가족 얘기 하는 영화는 이제 지겨워질 때도 됐죠. 인물만 바꾼 채 반복되는 갈등은 빨리 마일즈 좀 멀티버스로 보내 버리라고 갈망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중화시켜야 할 메인 빌런 스팟은 글쎄요. 후속작에서 얼마나 위협적인 빌런으로 등장할지 기대되긴 한다만 본작에서는 오히려 극의 템포를 늘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전작의 가장 큰 특징이였던, 코믹스 스타일을 적극 활용한 작화죠. 심지어 본작은 단순히 시각적인 현란함만으로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영화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여러 멀티버스를 방문하는 내용이 주가 되다 보니 여러 멀티버스마다 작화 스타일을 다르게 한다는 실험적인 시도가 본작에서 더욱 부각되는데요. 예를 들어 그웬의 차원은 파스텔 톤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마일즈의 차원과 다른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본작에서 유일하게 해결되는) 그웬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고 또 중화하는 역할까지 맡죠. 이 점은 후반부에 떡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작화 스타일을 단순히 스타일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하죠?
그리고 이번 작품은 스파이더맨들이 정말, 정말, 정말 많습니다. 이들을 모두 다른 작화 스타일로 그려 낸 제작진의 집념은 정말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스파이더맨 인디아와 스파이더 펑크를 비롯한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은 자신만의 작화 스타일로 자신만의 전투 스타일을 구현해 냅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스파이더맨들이 역동적인 구도로 펼쳐 내는 액션 씬은 얼마나 뛰어날까요? 본작의 하이라이트인 마일즈를 추격하는 스파이더맨들 시퀀스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파이더맨들의 입체적인 웹스윙 장면을 감상하고 있자니 그야말로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이 작품은 2부작 구성입니다.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끊어 버리고 다음 편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죠. 그러다 보니 본작만으로는 실현시키지 못한 지점이 조금 보입니다. 2부작으로 이야기를 늘리다 보니 초반부도 다른 영화의 두 배로 늘어난 기분이고, 마무리지어야 할 지점들이 모두 개방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끝맺으니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가 해결된 기분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반전과 여기서 이어지는 또 다른 국면은 후속작을 기대하기에 충분할 만큼 충격적이였고, 다시 집결할 예정인 여러 스파이더맨들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본작이 전작에 이어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한 획을 또 그어 버린 만큼, 후속작에서 한 획을 더 그어 줬으면 하는 기대감을 벌써부터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영화에도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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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표현할 거면 이렇게!
최근 마블이 멀티버스로 밀어붙여서 그런느낌이 저도 들긴해요.. ㅜㅜ
개인적으론 불쾌감 안 들어서 좋았습니다. 영화 중간에 사람 가르치는 듯한 대사나 상황 정말 싫거든요.
이상한 무리수 없이 다양한 스파이더맨 나와서 다행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