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엘리멘탈] 정말 모험을 해야할 주체는 어디?

한때 픽사 작품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토이스토리, 월이, 몬스터주식회사, 인크레더블....
매번 새로운 관점과 신박한 설정을 매력적인 연출로 포장해서 내놓으며
아직 미완이던 3D 애니메이션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듯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픽사의 폼이 떨어지고 평작들을 내어놓기 시작하면서
조금 시큰둥해져버렸어요.
더 정확히는 다른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들과 더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죠.
이번 [엘리멘탈] 역시 이런 픽사의 난맥상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결점 없는 애니메이션에 화려한 효과를 보여주고
캐릭터 디자인과 서사구조도 예전 픽사 작품 만큼은 해주고 있어요.
전하려는 주제는 명확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방식은 새롭습니다.
이민자 차별과 자본주의 사회 계급갈등 등의 요소를
원소정령 같은 애들의 세계를 빌려서 풍자한다니 색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딱 거기까지더라고요...
가장 큰 문제점은 모험을 하지 않는 제작과 기획이었습니다.
이 정도 판을 깔았으면 제대로 풍자를 해야 할 텐데
그냥 '나 풍자 조금 넣었어요' 정도의 겉핥기만 하고 있어요
혹여나 그런 시도를 통해 생길지 모를 반발을 매우 의식한다고 해야 할까요?
예컨데 엠버의 불 종족은 어떤 이민자 커뮤니티를 풍자하는 걸까요......
억양이나 분위기에서 히스패닉의 정서가 짙지만 어떤 부분은 인도계 같기도 하고
심지어 감독 취향인지 몰라도 한국을 비롯한 동양식 큰절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수자로서 이민족의 표지를 이것저것 섞어뒀어요
상대역이 물 종족 역시 WASP를 중심으로 한 백인중산층일 것 같지만
종족의 특성보다는 경제적인 관점만을 강조합니다.
미국 본토 사람이 보기에는 보다 명확하게 구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3자 입장으로 보면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묘사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어요.
그보다 나쁜 점은 위기와 갈등의 지점입니다.
이 영화는 따지고 보면 '악역'이 없어요.
4원소의 세계를 통해 현대 미국의 인종/민족적 갈등을 풍자한다는 틀을 만들고 보니
악역을 어느 특정 원소로 지정하면 곤란해져 버린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 곳곳에 악역이 있어야 할 자리가 남아 있어요.
가장 대표적으로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갈라진 수문벽 같은 거요.
정석적인 드라마라면 이 부분에 악역의 음모가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실재로 지금도 그런 떡밥이 곳곳에 숨어 있어요.
(초반에 '엔진오일 맛'이라는 부분이 왜 그리 강조가 됐을까요?)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나면 결국 악역이나 음모는 없습니다.
그저 게으른 행정가와 템퍼 글래스의 부실 정도가 문제일 뿐이죠.
개인적으론 대본, 또는 제작 과정에서 수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의심이 갑니다.
그렇게...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세계, 즉 우물 밖으로 나가 모험을 하지만
영화 자체는 그 어떤 모험도 시도하지 않는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심심한 전개와 밋밋하고 뜬끔없는 위기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막판에 살짝 눈시울 습기차게 만드는 거 보면
픽사의 능력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험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SNS워리어들의 원하는 게 아니고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란 말입니다.
디즈니가 입을 틀어막고 있는 거라면 당근을 들어주세요 픽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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