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마리오'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8가지
PBS 뉴스 아워 기사를 옮겨봤습니다.
https://www.pbs.org/newshour/arts/8-things-you-didnt-know-about-super-mario-bros
(서문은 생략)
1. 마리오는 부분적으로 디즈니와 디즈니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다.
90년대에는 뉴스 기사와 책에선 마리오가 미키 마우스보다 더 인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슈퍼 마리오: 닌텐도는 어떻게 미국을 정복했는가”의 저자 제프리 라이언은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닌텐도는 디즈니의 전술을 의도적으로 훔쳐서 마리오를 미키 마우스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곳에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1927~2013)
오랜 기간 닌텐도의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게임 사업을 하기 이전에) 닌텐도의 원래 상품이었던 트럼프 카드에 디즈니 캐릭터를 넣으려고 라이선스에 관해 상의하고자 디즈니측과 처음 만났다. 그 경험은 닌텐도를 글로벌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 영감을 주었다.
"야마우치는 일본 시장이 전 세계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라이언은 말했다.
2. 슈퍼 마리오는 원래 스핀오프였다.
마리오는 1981년 오락실 게임 <동키콩>에서 처음 등장했다. 성난 고릴라가 던진 통을 뛰어넘어 "레이디"로 알려진 여성을 구하는 모습에서 "점프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의 다른 오락실 게임들은 점점 더 빨라지거나 적이 더 많아지는 식의 단순한 도전 과제를 제시했지만, <동키콩>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다양한 레벨을 특징으로 했다.
<동키콩> 게임
결정적으로 이 게임에는 또 다른 혁신이 있었다. <동키콩>은 스토리를 가진 최초의 게임 중 하나였다. 게임 초반에 동키콩이 레이디를 납치하고 점프맨이 그녀를 구해야 한다. 점프맨이 구출에 성공하면 동키콩이 다시 레이디를 납치하기 전에 두 사람이 성공적으로 재회하는 컷신(게임 플레이 중 내러티브가 끊어지는 것)이 나온다.
3. <동키콩>은 다른 게임을 개조한 것이었고, 장인어른에게 해고당하지 않으려 한 닌텐도 임원의 노력이었다.
라이언에 따르면, 야마우치는 1960년대까지 가족 소유 회사인 닌텐도를 일본에서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사적'이었다.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야마우치는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를 고용했지만, 그의 아내 요코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반대했다.
미국 오락실에 처음 선보인 게임은 이미 인기를 끌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갤러그>와 비슷한 우주 슈팅 게임인 <레이더 스코프>였다. 이 게임은 일본에서 히트를 쳤고 3,000대가 미국으로 배송되었지만, 오락실 업주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라카와는 게임이 들어있는 오락실 기계 '캐비닛'을 1,000개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2,000개는 창고에 쌓여 있었다. 실패할 가능성과 자기 가족도 해고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장인어른을 마주한 아라카와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라이언은 말했다.
미야모토 시게루
오래된 아케이드 게임을 '개조'하고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여 플레이어의 흥미를 유발하고 더 오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2,000개의 <레이더 스코프> 캐비닛을 재활용하기 위해 아라카와는 컨버전 키트를 만들기 위한 사내 공모전을 발표했다. 우승자는 게임 디자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내 아티스트 미야모토 시게루. 그는 일본 만화에 관한 관심을 활용하여 사람처럼 보이고, 사람들이 오락실에서 동전을 계속 넣게끔 게임 플레이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을 만들었다.
4.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NES(패미컴)용으로 출시되었을 때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붕괴된 상태였다.
닌텐도와 <슈퍼 마리오> 이전에는 비디오 게임 시장이 PC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게임기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게임기 제조업체는 자신들의 게임기를 위해 만드는 게임 회사들을 거의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임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게임이 많았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 중 하나는 1982년 영화 <E.T.>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었다. 아타리가 직접 게임을 배급했지만, 급조해서 디자인되었다. 이 게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플레이할 수 없는 최악의 게임 중 하나로 여겨졌다.
휴스턴 퍼블릭 미디어의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인 ‘Engines of Our Ingenuity’에 따르면 게임기의 과잉 공급, 저질 게임, 개인용 컴퓨터와의 경쟁으로 인해 비디오 게임 매출이 최고 32억 달러에서 2년 후 약 1억 달러로 감소하는 '1983년 비디오 게임 위기'가 발생했다. 몇몇 회사는 문을 닫거나 아예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장을 떠났다.
NES
이러한 미국의 황무지에 닌텐도는 1985년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 일본에서는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을 출시했고, 1986년에는 더 널리 보급되었다. 이 게임기에는 두 개의 무료 게임이 포함되어 있었다. <덕 헌트>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바로 그것이다. 라이언에 따르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다른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1985년에 소비자가 35달러나 40달러짜리 게임을 추가로 구매하려면 최소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동급이거나 그보다 훨씬 높은 퀄리티를 갖춰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게임들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라고 라이언은 말했다.
5.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1993년에 개봉한 실사 영화는 비평적, 상업적 실패로 이어져 닌텐도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래서 닌텐도의 수장이었던 야마우치 씨는 '더 이상 영화 사업을 하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하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라고 라이언은 말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하고 세상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그의 명령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마리오를 비디오 게임 세계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라고요.”
닌텐도의 기업 문화는 자신들의 게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영화조차도 좋지 않은 결과와 연관시키는 것을 꺼렸다고 그는 덧붙였다.
“게임이 명예의 문제라는 사실이 (닌텐도의) DNA에 박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게임을 출시해서 사람들이 3,000만 장이나 사서 실망하고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돈을 쓴 값어치를 선사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해야 장인으로서, 그리고 닌텐도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요.”
일리노이 공과대학의 자연과학인문대학 학장인 제니퍼 드윈터는 1993년 오리지널 영화가 실패한 부분적인 이유로 슈퍼 마리오 게임의 정신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오의 핵심 경험은 놀이터입니다."라고 드윈터는 말했다. “오르고 점프하고 미끄러지고 탐험하는 것이죠. (마리오) 오리지널 영화에서의 핵심은 갈등입니다. (마리오 게임의 핵심은) 갈등이 아니라 경험이죠. 그 경험을 어떻게 옮겨야 할까요?”
6. 충돌하는 마리오 레이싱 게임이 수많은 모방작을 낳았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가장 영향력 있는 마리오 게임이 아니다. 1위는 게임계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뚜렷한 유산을 남긴 레이싱 게임인 <슈퍼 마리오 카트>가 차지했다.
"(그 게임이 나오고) 2년 동안 50개의 표절 게임이 나왔을 정도로, 이전까지 그러한 카트 레이싱 게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라고 라이언은 말했다. "속도에 중점을 맞춘 게임들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히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게임은 없었죠.“
또한 게임 업계에 기존 지적 재산(IP)을 활용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유용한 비즈니스 전략도 제시했다. 애니메이션풍의 인기 캐릭터를 가지고 완전히 독창적인 새 비디오 게임으로 제작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레이싱 게임에 적용하는 것은 훨씬 쉬웠고, 애니메이션풍 캐릭터를 보유한 다른 회사들도 자체 레이싱 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다.
7. 루이지는 형에게 가려졌지만, 그 덕분에 특별한 힘을 얻게 됐다.
라이언의 책에 따르면 루이지는 처음에 2인용 플레이어 옵션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게임이 '마리오 브라더스'였기 때문에 마리오는 공동 주연이 필요했다. 게임의 그래픽은 여전히 제한적이었지만, 오리지널 <동키콩>에서는 3개에 불과했던 색상이 새 게임에서는 6개로 늘어났다. 미야모토와 닌텐도는 루이지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팔레트 스왑(palette swap)'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루이지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마리오의 복사본이지만 빨간색 대신 녹색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이후 슈퍼 마리오 게임에서 루이지는 더 높이 점프하거나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등 약간 다른 능력이 추가되었지만, 캐릭터의 조작은 더 어려웠다.
‘미야모토 시게루: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동키콩, 젤다의 전설’의 저자 드윈터는 마리오가 시리즈의 주역이자 회사의 얼굴이기 때문에 "과잉 통제"를 받았다고 말한다. 루이지는 조수로서 더 다재다능해졌다.
"루이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더 얼빠진 캐릭터가 될 수 있었죠."라고 드윈터는 말했다.
“루이지는 부수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루이지에게는 일탈적인 성격이 허용되며 때로는 내러티브 구조를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는 공주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요. 그래서 마리오가 이야기 속에 갇혀있는 것과는 다르게 자유롭죠.”
8. 마리오의 적수 이름은 ‘국밥’에서 따왔다.
게임의 주요 악당인 바우저(미국식 명칭)는 크고 불을 뿜는 용 같은 거북이로, 초기 게임에서는 ‘쿠파’라고 불렸으며, 일본 원어로는 ‘대마왕 쿠파’라고 불렸다. 미야모토는 인터뷰에서 쿠파라는 이름은 밥과 함께 먹는 수프 같은 스튜인 한국 음식 ‘국밥’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인터넷 문화 사이트 ‘Den of the Geek’의 매튜 버드는 미야모토에게 영감을 준 일본 만화에선, 음식 명칭을 따서 캐릭터 이름을 짓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드윈터는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중국어와 중국 한자를 포함하고 있으며,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쿠파라는 명칭은 결국 쿠파 왕의 수많은 거북이 부하들의 이름이 되었고, 바우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 바우저란 명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드윈터는 "쿠파"라는 단어가 일본 전설에 나오는 개구리 인간과 비슷한 생물인 "캇파"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게다가 마리오 게임의 많은 측면과 마찬가지로 이 단어는 쓰는 것이 그냥 재미있다.
"재미있고 귀엽게 들리는 단어죠."라고 드윈터는 말했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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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닌텐도 사장이 된 건 마리오가 나오고 한참 뒤인 2000년부터라 말이 안 되죠.
덕분에 알아갑니다!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