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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국화 이야기 (1939) 참 희한한 영화.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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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배우들의 얼굴 한번 클로즈업으로 보기 힘들다. 카메라는 그냥 등장인물들을 멀찍이서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눈을 감으면"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을 잡아내는 방식 있지 않은가? 멀찍이서 그리고 절벽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길을 지나가는 인물들의 한명으로서 주인공들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영화적 간섭으로 주인공들을 강조하지 않는다. 주인공들도,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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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미조구치 겐지 스타일이 이거다. 아니, 여기에다가 하나 더 있다. 주인공들 앞에서 그들을 가로막는 대상들이 흔히 등장한다. 가령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에 나무가 있다거나 문턱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이 있다거나 말이다. 보다가 보면 "그 문턱 좀 치워 줘"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거기에다가 롱테이크. 등장인물들의 동작을 어떤 식으로 편집하거나 강조하거나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다. 가령 주인공이 화를 낸다. 그러면 클로즈업으로 주인공 얼굴을 비추며 표정과 어조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이를 표현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멀찍이서 문틀 속에 주인공이 앉아 말하는 것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거기에다가 카메라 위치는 주인공이 앉은 바닥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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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건이랄 것도 없다. 누군가를 악역으로 만들어 대립구조로 간다거나 사건을 일부러 만들어내지 않는다. 굉장히 스토리 전개가 평이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절제된 영화인가?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엄격성, 절제성, 순수성, 차가움 - 이런 것은 또 이 영화의 본질이 아니다. 일본적인 미랄까, 예리하고 정교한 아름다움, 애절함, 다른 이미지들을 뚫고 앞에 나서지 못하는 주인공의 안타까움, 굉장히 표정이 풍부한 정적 - 이런 것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굉장히 따스한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전형적인 신파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주 참신하고 다정다감하며 순결해 보인다. 감정과잉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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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배우 명인 가문에 양자로 들어간 기쿠는 사실 배우로서 그저 그렇다. 아버지 후광 때문에 주변의 모두가 아첨한다. 하지만, 동생의 유모 오토쿠만은 그에게 정직한 평가를 해준다. 기쿠는 오토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분 차이가 엄청나다. 오토쿠는 기쿠에게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하며, 기쿠가 가부키계의 혜성으로 등장할 수 있게 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 

 

전형적인 신파조 이야기라고?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가령 기쿠와 오토쿠가 서로 이야기하며 사랑을 확인하며 걸어가는 장면 - 

굉장히 분위기를 살리고 로맨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가며 클로즈업으로 그들의 표정을 한껏 보여주고 그러는 것이 보통 아닌가?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멀리 아래에서 두 주인공들이 걸어가는 것을 찍는다. 그러니까, 두 주인공들은 시냇물이 흘러가는 둑길을 걸어가는데, 카메라는 시냇물 아래로 내려가 멀찍이 위를 바라보며 찍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롱테이크로 두 주인공들이 걸어가면 

함께 같은 스피드로 움직이며 찍는다. 두 주연배우들이 굉장히 감정을 넣어서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틀림 없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 두 주연배우들이 감정을 화면 바깥으로 흘러내어 관객들을 깊이 감동시키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멀찍이 있다. 그것도,

관객들보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걸어간다. 신파조이자 감정 과잉이 이 영화에 들어올 여지가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건조하거나 엄격한 것은 아니다. 이런 연출의 결과는, 안타까움, 애절함, 다가올 듯 말 듯 계속 이어지는 순수한 감정이다. 정교함이다. 이 장면에는 이런 연출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신분 때문에 결합하지 못하는 두 남녀가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서로 내보이는 장면이니까 말이다. 

 

자기 힘으로 가부키계에서 성공해보이겠다고 집을 나간 기쿠는 무명배우의 설움을 톡톡히 받는다. 역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니, 자기 능력을 보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기쿠를 찾아온 오토쿠는 삯바느질에 고된 노동을 해가며 그를 뒷바라지한다. 

그렇다면 기쿠는 오토쿠의 내조에 힘입어 성공을 거두는가? 아니다. 그는 점점 더 추락하며 실패자가 되어간다. 오토쿠의 내조는 헛수고가 되었다. 오토쿠는 기쿠의 가족을 찾아가 기쿠를 다시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기쿠를 떠난다. 

이렇게 이 영화는 값싸고 자극적인 스토리로 관객들에게 희열을 선사하지 않는다. 기쿠가 "내가 잘못했다"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결말이다. 오토쿠는 기쿠를 뒷바라지하느라 건강을 해쳐 사경을 헤메는데, 그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는 그냥 헛수고다. 이렇게 신파조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벗어나 가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기쿠가 가문의 후광을 업고 자기 노력까지 더해서 가부키계 스타가 되는 동안, 기쿠는 생명력을 모두 소모하고 죽어간다. 

 

영화는, 기쿠가 가부키계에서 성공하고 환호하는 관객들 앞에서 승리감 넘치는 행진을 할때, 비로소 후련한 클로즈업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후련한 승리감 넘치는 클로즈업과 교차해서 다다미방에 누워 죽어가는 오토쿠를 멀찍이서 방바닥과 같은 높이에 카메라를 놓고 보여준다. 이 대비가 아주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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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특이한 영화였다. 분명 신파조영화인데, 결과적으로 주제는 신파조 주제인데, 연출이나 스토리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런 원거리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또 깔끔하고 수준 높은 신파조영화가 되었으니, 뭐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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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lgo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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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으면서 개그가 빠진 채플린 시티 라이트 같은 느낌인가 싶었네요. 39년 작품이면... 신파라고 치부하기 힘든 시대이고..
07:36
22.11.22.
BillEvans 작성자
golgo
영화가 참 미묘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시면 산뜻한 충격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12:22
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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