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15
  • 쓰기
  • 검색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 - 1960년대 엄마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존기. 강인한 생명력과 핏줄의 뜨거움. 걸작.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2760 8 15

 

 

1960년대는 다 못 살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못살고 가난에 찌들어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던 소년의 이야기다. 1960년대 못살던 사람들조차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냐고 불쌍해했던 소년의 생존기이다. 1960년대에는 이 영화가 눈물바다를 쏟게 만들던 영화였다. 다 못살았으니까 이윤복소년의 비극에 대해서 공감하기 쉬웠고 그래서 다들 함께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이윤복소년의 가난에 대해 공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윤복소년의 생존본능과 가족에 대한 끈끈한 애착이라는 점에서 감상의 포인트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무려 대가급 감독 김수용 감독과 대가급 각본가 신봉승 그리고 대가급 배우들 신영균, 조미령, 주증녀 등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최선의 연기를 펼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빛을 발하게 하는 사람들은 아역배우들이다. 60년 정도 지난 지금도 스크린을 찢고 아이들의 절절한 절규가 들려오게 만드는 정도 명연이다. 

 

 

 

아버지는 장애인에 도박중독자이고,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에게 질려 집을 나갔다. 소년 이윤복은 누이동생 순나와 함께 더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산다. 아버지는 짐이나 안 되면 다행이다. 매일 아프다고 (어디가 아픈 지는 모른다) 앓는 소리를 아이들에게 해대며 동냥해오라고 아이들을 재촉한다. 아이들이 돈이라도 동냥해 오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싱글벙글 도박장에 달려가 다 잃고 돌아온다. 아버지가 이 모양이니, 윤복은 (자기도 초등학생이면서) 껌을 팔러다니고 구걸하면서 동생들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윤복의 여동생 순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마치 자기가 엄마라는 듯이 동생들을 돌보려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어디 가서 식모를 할까 어디 가서 껌을 팔까 혹은 구걸을 할까 머릿속에 그 생각뿐이다. 밑의 동생 둘은 아직 철이 없어서 먹을 것 재촉하며 윤복과 순나의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껌을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팔고 동냥을 다니며 동생들을 먹인다. "식모살이하면서 돈을 벌면 지금보다야 낫게 살지 않겠나"하는 말이 초등학교 저학년 입에서 나온다. 아버지는 이런 윤복과 순나를 돕기는 커녕, 밑의 동생 둘과 함께 투정을 하며 윤복과 순나의 어깨에 짐을 더한다. 

 

실제 윤복의 일기에 바탕을 두고 만든 영화이기에 현실성이 매우 강하다. 1960년대 대구의 모습이 보이는데,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없는 산에 닭장만도 못한 집들, 사막같은 가난한 공간 속을 좀비처럼 배회하는 사람들 - 매우 인상적이다. 사막에 여기저기 흙집들이 있는 수준이다. 윤복과 순나가 동생들을 데리고 함께 생존해 가기에는 너무나 처절하다. 

 

 

 

윤복은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흙담집에 사는데, 이 흙담집은 벽 하나가 허물어져서 속이 다 훤히 들여다보인다. 윤복은 아침, 점심, 저녁을 밖에 나가 동냥해다가 동생들을 (그리고 아버지를) 먹인다. 그 중간에 하는 일은 껌을 들고 다방, 댄스홀, 길거리를 다니며 파는 것이다. 그러다가 붙잡혀서 닭장차에 실려 고아원으로 끌려가기도 한다. 고아원에서는 차라리 먹을 것 제대로 먹고 새옷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동생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윤복의 눈에 비치는 것은, 댄스홀에서 즐기는 부유한 남녀들과 자기에게 차가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이 영화가 그렇게 감동을 주지도 걸작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것들을 뚫고 윤복의 처절한 생존본능과 몸부림이 스크린 바깥으로 뛰쳐나온다. 어린 윤복은 마치 인류를 대변하는 거대한 존재같다. 이 가난만으로 부족하다는 듯이, 윤복에게 시련들이 닥친다. 깡패들에게 납치가 되어 앵벌이가 될 뻔하기도 하고, 돈을 뜯기고, 고아원에 끌려가고, 간신히 마련한 구두닦이통을 빼앗긴다. 하지만 윤복은 생존에 회의를 품지도 전락하지도 않는다. 윤복이 그 가난에도 불구하고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정신력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혼까지 전락하여 인생에 패배하도록 만들지 않는 처절한 생존본능과 정신력이 윤복을 지탱한다. 이것이 아주 감동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순나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하다. 이 가난한 가족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이 윤복의 정신력과 순나의 모성애다. 못난 아버지와 무책임하게 집을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서, 윤복과 순나는 가족들에게 사랑을 준다.  심지어 학교를 가기에도 어린 윤복의 동생들조차 그 어린 영혼 밑바닥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생에 대한 강한 긍정을 보여준다. 여섯 일곱살짜리 투정만 부리던 누이동생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빠를 위해서 길거리에 나가 구걸을 해서 푼돈을 벌어온다.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이 가난과 비참의 밑바닥에 떨어진 아이들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학교도 못들어가고 여섯 일곱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가 이미 철이 다 들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두고, 가난한 아이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는 영화라고 해선 안될 것 같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의 관객들보다 더 거대하다. 어린 아이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의지력 그리고 생존본능은 정말 처절하고 간절해서 관객들은 이 아이들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이 영화는 어느 사실주의영화 그리고 사회고발영화보다도 더 비참하고 가난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사실주의영화로 보기 어려운 것은, 그 사실적인 표현에 감상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윤복과 그 가족들의 비극을 간절하게 살려내기 위한 도구로써 사실적인 표현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신파조 영화가 아니다. 대가 김수용감독의 작품이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사 황금기인 1960년대 작품이 그럴 리 있겠는가? 영화는 김수용 감독 고유 스타일이 살아 있는 걸작이다. 화면은 투명하고 수채화적이다. 표현은 아주 간결하고 서정적이다. 등장인물들의 연기는 세련되고 정확하고 깔끔하다. 구성면에서 허술하다거나 없었으면 하거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이 없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명확하게 살려낸다. 김수용 감독 특유의 개성이다. 갯마을, 산불, 안개 등을 연상시키는 걸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난 것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걸작 로코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강대진 감독의 걸작 마부였다. 그 정도 걸작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거기 가까이 근접하기는 할 정도다.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영화였는데, 대만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영화라고 한다. 이런 걸작이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사라졌더라면 얼마나 비극이었을까?  

 

 

** 윤복의 일기는 지금도 출판되어 나오고 있다. 윤복의 동생이 형을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직도 출판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진 형제들의 간절하고 강렬한 우애 - 그것은 진실이었다. 무려 57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8

  • 셜록
    셜록
  • 슈하님
    슈하님
  • hera7067
    hera7067

  • miniRUA
  • 핑크팬더
    핑크팬더
  • 다크맨
    다크맨
  • 카란
    카란
  • golgo
    golgo

댓글 15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지금은 신파로 볼 수 있겠지만, 당시엔 리얼리즘 영화였겠어요.
20:50
22.10.17.
BillEvans 작성자
golgo
저는 오히려 반대로 당시엔 신파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리얼리즘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관객들의 마음 속에 있던 "아이들의 슬픔에 감동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영화가 굉장히 깨끗하고 깔끔합니다. 수채화 같습니다.
20:58
22.10.17.
profile image 2등
제목만 들어봤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소개 감사합니다
21:02
22.10.17.
BillEvans 작성자
카란
유튜브에 리매스터링되어 올라와 있습니다. 걸작의 감동을 이런 글 하나가 백분의 일이나 포착할 수 있으려나요.
21:11
22.10.17.
profile image 3등
정말 많이 울었던 영화였습니다 ㅠ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21:29
22.10.17.
BillEvans 작성자
다크맨
지금 보아도 눈물이 나오더군요. 나는 냉정하다 하는 사람도 눈물 찔끔 맺히는 정도는 경험할 듯합니다.
21:31
22.10.17.
profile image

제목만 들어도 슬픈 영화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1977)>, <혼자 도는 바람개비 (1991)> 같은 영화들도 있었지요.. ㅠㅜ

21:29
22.10.17.
BillEvans 작성자
핑크팬더
그런 영화들이 있었지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정도 감동을 지금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21:37
22.10.17.
profile image

개인적으로 저하늘에도 슬픔이를 이희재 화백의 만화로 접했습니다.

 

x9788934962830.jpg

21:09
22.10.19.
BillEvans 작성자
hera7067

이런 책이 있었군요. 만화의 세계도 참 넓고 깊네요.

11:27
22.10.20.
profile image
hera7067
이 쪽도 대단한 명작이지요. 아홉살인생,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와 더불어 이희재 화백의 작품은 다 훌륭합니다.
18:56
22.10.23.
BillEvans 작성자
내일슈퍼
지금 봐도 눈물이 나더군요. 김수용 감독은 굉장한 거장이라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했습니다.
08:16
22.11.2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파문]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1 익무노예 익무노예 1시간 전11:36 290
공지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시사회에 초... 17 익무노예 익무노예 3일 전20:03 2678
공지 (오늘 진행) [총을 든 스님] 시사회 당첨자입니다. 4 익무노예 익무노예 3일 전19:54 2026
HOT 참신하고 독특한 종교심리스릴러 "콘클라베" 2 방랑야인 방랑야인 37분 전12:06 281
HOT 디즈니+ <애콜라이트> 한 시즌 만에 제작 중단한 이유 3 카란 카란 2시간 전09:58 1257
HOT <노스페라투> 캐릭터 포스터 공개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0:24 397
HOT 워너, '수퍼맨' 내부시사회 후 "긴장":... 4 NeoSun NeoSun 56분 전11:47 789
HOT '무파사 라이언 킹' 오프닝 흥행 참담한 수준, &#... 3 NeoSun NeoSun 1시간 전11:35 542
HOT 오늘의 쿠폰 소식입니다^-^ 보고타 시빌워!! 4 평점기계(eico) 평점기계(eico) 4시간 전08:41 874
HOT <하얼빈> 1주차 현장 증정 이벤트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0:28 528
HOT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2 참가자 6명 영상 / ... 2 NeoSun NeoSun 2시간 전10:01 609
HOT [하얼빈] 사전 예매량 40만장 육박 1 시작 시작 3시간 전09:01 708
HOT 크리스토퍼 놀란 작품들 로튼 리스트 7 NeoSun NeoSun 4시간 전08:42 692
HOT <검은 수녀들> 스틸 공개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8:42 703
HOT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 뉴스틸 - 메이슨 테임... 4 NeoSun NeoSun 4시간 전08:28 702
HOT 더티 더즌 프로덕션-래디컬 미디어,타이탄 잠수함 폭발 다큐... 2 Tulee Tulee 4시간 전08:02 324
HOT 라이온스게이트,심리 스릴러 <더 하우스메이드> 2025... 2 Tulee Tulee 4시간 전08:02 400
HOT 앤셀 엘고트,세실리아 아헌 소설 '이프 유 쿠드 씨 미 ... 2 Tulee Tulee 4시간 전08:01 361
HOT 마릴린 먼로,사진 몇가지 4 Sonatine Sonatine 4시간 전07:48 571
HOT 톰 홀랜드 My favourite day of the year 2 e260 e260 5시간 전07:27 522
HOT 아리아나 그란데가 올린 ‘위키드’ 세트장 샷들 1 NeoSun NeoSun 12시간 전00:43 714
HOT 디즈니 플러스) 왓 이프 시즌3 1화 - 초간단 후기(약 스포) 5 소설가 소설가 12시간 전23:50 1282
HOT 2024년 12월 22일 국내 박스오피스 2 golgo golgo 12시간 전00:01 1718
1161530
image
NeoSun NeoSun 8분 전12:35 88
1161529
image
GI 16분 전12:27 93
1161528
image
중복걸리려나 19분 전12:24 79
1161527
image
시작 시작 25분 전12:18 116
1161526
normal
Opps 27분 전12:16 161
1161525
image
방랑야인 방랑야인 37분 전12:06 281
1161524
image
NeoSun NeoSun 43분 전12:00 239
1161523
image
NeoSun NeoSun 49분 전11:54 191
1161522
image
NeoSun NeoSun 56분 전11:47 789
1161521
image
익무노예 익무노예 1시간 전11:36 290
116152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1:35 542
1161519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1:19 176
1161518
image
영화10도 2시간 전10:42 589
1161517
image
RandyCunningham RandyCunningham 2시간 전10:41 327
1161516
image
카스미팬S 2시간 전10:39 223
1161515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0:28 528
116151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0:24 397
1161513
normal
아이언하이드 아이언하이드 2시간 전10:15 335
1161512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0:01 609
1161511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09:58 1257
1161510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9:18 515
1161509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9:09 432
1161508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9:03 379
1161507
image
시작 시작 3시간 전09:01 708
1161506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8:54 437
1161505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8:47 433
1161504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08:42 692
116150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8:42 703
1161502
normal
평점기계(eico) 평점기계(eico) 4시간 전08:41 874
1161501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08:37 411
1161500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08:32 478
1161499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8:32 162
1161498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8:29 275
1161497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08:28 702
1161496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8:28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