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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무엇이 정물로 남는가'.

푸돌이 푸돌이
7673 9 6

저는 영화를 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감성적인 사람이라 말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현명한 사람도 아니고요. 특별한 사람조차 아닙니다.
전 그저 공감받고 싶은 단 하나의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봅니다. 영화를 보고, 저의 삶을 느낍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 하는 이 세상에서, 온전히 영화만이 제 삶을 이해해준다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곧 있으면 다 부질 없어질 눈물을 흘리며 제게 달려와 안기는 영화의 품을 힘껏 끌어안습니다.

 

잠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걷고 만져 봤던 이 세상이 - 여러분만의 세상이 - 그저 툭 내뱉은 한 마디에 전부 담겨있다면?
그리고 그걸 듣는 이는 또 무슨 한 마디를 내뱉을까요?
지금부터 그런 '생각'에 관한 작가주의 오락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다같이 생각해봅시다.

 

[스포일러가 포함 된 리뷰입니다.
읽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1. 제목의 재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모든 것과 모든 곳은 한꺼번에'.

 

이 말은 단지 작품의 중심 소재인 '멀티버스'만을 일컷는 건 아닐 겁니다.
아시다시피, 영화가 움직이는 원동력은 '상상력'이라는 틀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데,
영화는 과거에서부터 쭉 올라 온 고질적인 사회 문제와
불가피한 또는 불확실한 삶에 들이닥치는 혼란, 
'삶'이라는 기나긴 역사 - 고통과 행복을 동반한 - 를 품은 행성이 얼마나 빌어먹게 부질 없는 지
이런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모든 것과 곳에서의 눈물들을 포괄하는 제목이기도 하면서
이런 복합적인 목소리를 단 한꺼번에 담아낸 작품의 재치를 뜻하는 이중성 또한 지닌 탁월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2. 전작과의 특이점과 발전.

 

작품은 시종일관 재기발랄한 연출과 상상력을 지닌 채,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다니엘 감독들의 전작과는 사뭇 다른 방식인데,
전작 <스위스 아미 맨>은 마치 1부, 2부로 나뉜 것마냥
낯설지만 유쾌하게 용기의 미학을 다룬 초반부와는 달리
중반부 이후 극도로 우울해지는 작품의 분위기와 연출, 멜랑꼴리적 측면에서 용기의 부질 없음을 다뤘다는 점에는
극명히 차이가 나는 작품이었습니다만
이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1부, 2부, 3부로 나뉘기까지했지만
작품의 틀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뉜 게 아닌, 단지 주제의 변주로만 나뉜 것이었음에서 작품은 감독들의 현란한 발전을 보여준 것 같기도 합니다.

 

3. All At Once.

 

작품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보자면,
주인공 '이블린 왕'이 세상과 함께 눈을 뜨며
아버지의 엄한 교육과 함께 자라나 
학창시절부터 만나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이끌려 가족을 정물로 남겨둔 채,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서 그와 함께 미국으로 향했고
앞으로를 함께 할 세탁소를 운영하며, 연락두절이 된 가족이 걱정되고
어느새 불안을 동반한 임신을 하고, 다른 행성을 낳고
그 행성의 모든 곳들이 모든 것들로 인해 행복해져가고, 파괴되어가는 것을 보게되고
요동치는 삶의 굴곡에 지쳐가며 자신에 사로잡힌 채
고단하고 난잡한 삶의 모든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기 시작하고
끝끝내 세금, 아버지, 가족 등 정물이었던 '모든 것과 곳'들이 자신의 행성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의 혼란을 느끼게 되기까지.

 

그런 단순하기 그지없는 기하학적 고통들은 누구로부터 오는 것일까?
이것들 때문에? 저것들 때문에? 너희들 때문에?
설마, 나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 두 감독들은 '한꺼번에' 대답합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실, 세상의 잘못도 아닙니다."

 

4. Everything Everywhere.

 

노력과 고통은 각 자의 행성에 따라 근원은 달라도 정도는 같습니다.
우리는 대개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특히 가족이라면 더 그렇죠.
우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이해하려는 대상은 그걸 모릅니다.
실질적으로는 우리 자신도 그걸 모릅니다. 허풍일지도, 진실일지도
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충돌 앞바지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실상 간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은 언제였는 지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당신은 아주 작은 몸집으로 당신의 머리 위에 삽 하나를 든 채 서있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할 일이라고는 삽을 들고, 미친 듯이 파는 일 밖에는 없죠.
"이 곳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가는 시간이 흘러 죽고 말 거야." 라는 말을 늘여놓고
미친 듯이 머리를 파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죠.
하지만 어느새 위를 올려다보니,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팠던 걸까, 당신은 뇌라는 미로에 갇히고 말았군요.
다시 올라가보려 애쓰지만, 어쩌겠나요.
대책없이 사다리도 안 챙겨 온 당신인데.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 안에서 해매이다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요.

 

인간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은 변명할 필요도 있고요.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솔직과 변명 사이에 정물인 상태로 세상을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두 귀를 꾹 닫은 채, 오로지 자신을 집중 조명하며 규칙적인 정물로서, 돌로서
세상을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케 호이 콴이 연기하는 이블린의 남편 '웨이먼드'는 물건마다 눈알 장난감을 붙여놓고는 하는 천진난만한 행동을 보입니다.
모든 것과 곳을 긍정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은 '모든 거절과 실망의 순간들'을 함축한 것만 같습니다.
이블린은 그런 남편을 못 마땅해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일을 더 망치기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웨이먼드가 이블린에게 건넨 한 마디.

 

"친절을 보여줘"

 

웨이먼드의 인생이 지나갑니다. 남을 위한 긍정적 친절로 그득했던 그의 삶.
이블린은 갇혀버린 자신의 뇌 안에서 눈알 장난감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이의 삶에 귀 기울여봅니다.
눈을 감고, 눈을 떠 봅니다.
어느새 삽 하나를 들고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와있는 이블린.
삽을 집어 던지고, 손에 쥔 눈알 장난감을 이마에 붙여봅니다.
그리고 다른 세상의 자신을 연결해주던 헤드셋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두 귀를 열어봅니다.

 

5. 서로가 있다면.

 

작중 가장 흥미롭고 또 제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곳은 '핫도그 손 행성'이었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패러디로 보이는 '핫도그 손 유인원 (?)'이 인류의 진보를 보여줄 기존 유인원을 죽이고
핫도그 손 세상이 되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인 이 행성에서 새가 짝짓기를 하는 것마냥 손으로 교감을 나누고
발로 생활하는 모습은 가히 미쳤다싶을 만한 코미디로 웃음을 자아냈지만
이 행성에서의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연기하는 '디어드리'가 발에 장애를 가진 여성이자
이블린의 진심어린 사랑을 원하는 여성이란 것이 밝혀지자 
마음 깊이 새겨진 흉터를 사랑으로 공감해주길 갈망하는 저의 모습과 닮아보여 눈물이 많이 났던 에피소드였습니다.

 

'라따구리' 에피소드도 많이 울었던 곳 중 하나인데,
라따구리가 잡혀갈 때, 정물인 상태로 
"난 이제 혼자야"라며 한탄하는 셰프를
이블린이 움직여주고, 그의 용기를 일깨워 줌으로써
<스위스 아미 맨>과는 달리 폼나게 떨어지는 - 토이스토리 패러디 - 인간의 용기,
서로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믿음과 마음의 또 다른 눈을 
긍정적인 표현력으로 엮어내어 눈물샘을 자극해내기도 합니다.

 

6. 정물_ 규칙을 상실한.

 

감히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돌 이블린과 돌 조이의 세상은, 마치 그들이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 지 보여줍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싸움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들만의 공간에서 번복되며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정물처럼 지속되어 오는 순간과 순간의 고통은, 서로를 충돌 앞바지에서 마주할 수록 심해져만 갑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웨이먼드의 인생처럼 '친절'을 보이고
마음의 눈을 뜨고, 정물이었던 섭리를 깨려든다면
- 누군가는 한심하기 그지없이 
'베이글'을 먹는 것처럼 손 쉽게 세상과 작별하려 들겠지만 -
그 여파 속에서 당신은 서로에게 사무쳐
서로를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미소 짓고
서로와 교감하며, 서로를 위해 올라온 삶의 산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마침내, 서로를 향해 폼나게 떨어지며
서로를 힘껏 끌어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충돌하고 말 것이고요.

 

그게 우리가 사는 삶입니다.
정물 아닌 삶.

 

7. 뭐라고 하셨죠?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들이 외칩니다.

 

"모든 것과 모든 곳은 한꺼번에!"

 

자기자신의 무덤에서 생매장 당하지 않고
방금 막 따끈따근하게 빠져 나온 우리는 말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리뷰

_ THE END.

IMG_926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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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멋진 평 잘 봤습니다.

막장스런 볼거리 +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위안을 주는 영화였어요.

16:59
22.10.16.
푸돌이
삭제된 댓글입니다.
17:30
22.10.16.
profile image 3등
영화 정말 좋았습니다
올해 베스트중 하나였어요

글도 넘 잘쓰셨네요!
18:28
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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