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2015년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내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거리에 있던 노점상에 걸려있던 기념품 티셔츠였다.
빨간풍선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소녀가 프린트된 티셔츠였는데,
영국 국기가 프린트된 티셔츠 옆에 그 소녀가 있는 티셔츠가 압도적인 수량으로 걸려있었다.
대체 이 소녀는 누구일까?
<뱅크시> '풍선과 소녀'
예쁘기는 한데, 티셔츠에 있는 프린트가
국기만큼이나 영국을 대표하는 수비니어라는 것도 의아했다.
소녀의 정체를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서였다.
신랑이 뱅크시의 팬이었던 것이다.
오른쪽 종아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문신할 만큼, 그림을 사랑하는 그는
뱅크시의 'Flying Copper'를 자신의 왼쪽 종아리에 넣고 싶어했다.
<뱅크시> 'flying copper'
영화 '뱅크시'는 그가 영국이 사랑하는 예술가 1위가 되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시작은, 그래피티였다.
댄스 크루처럼, 그래피티에도 크루가 존재했는데
그는 그 크루에서 잘 알아주지 않지만, 매우 성실했다고 한다.
당시 그래피티는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항상 숨어서 작업을 하고
도망다녀야 했다.
그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자주 가던 곳은 브리스톨이라는 우범지대였다.
그래피티는 학생들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벽에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한 선생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브리스톨만의 문화였다.
규칙도 없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브리스톨의 그래피티는
뱅크시에게 삶의 역동성과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래피티스트로서 꾸준히 활동을 해오던 뱅크시는
자신의 그래피티에 메시지를 담기 시작한다.
당시의 그래피티는 얼마나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지, 얼마나 잘 그리는지 기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에 비해, 뱅크시는 공간을 활용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래피티로 표현하는 '개념 미술가'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그림에는 사회, 문화적 흐름이 담겨있었고, 신념이 담겨있었다.
그가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반전, 예술의 상품화에 대한 비난, 다양성 인정 등으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뱅크시의 그림은 사람들이 단박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고, 미적으로도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뱅크시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그림이 나에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고, 내가 그것을 듣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서이다.
어렵기만한 그림과 나 사이의 거리를 확 좁혀질 수 있게 도와준 작가가
뱅크시이다.
또한 공간(그림을 그릴 벽)을 선택하는데 있어서의 대범함과
그 공간과 그림이 호응하게 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위트와 영리함도 좋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경에 세워진 분리장벽에 그린
'꽃을 던지는 남자'는 뱅크시가 예술가로서, 그리고 사회운동가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장 강렬하게 표현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뱅크시> '꽃을 던지는 남자'
그가 사회에 다소 반항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재능있는 예술가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직접 팔레스타인 국경까지 가서 분리장벽에
평화의 메시지를 다소 과격하게 담는 혁명가로서 진화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 알았다.
내 바탕화면에 스타일리쉬하고 멋있어서 배경화면으로 쓰고 있었던
'꽃을 던지는 남자' 그림이 팔레스타인 장벽에 새겨진 그림이라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갤러리의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라,
화폭에서 뛰어나와 세계에 직접 목소리를 내어 외치는
그의 그림은 '아트 테러'라고도 불리운다.
예술은 거울이 아니다, 망치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처음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그림에 매겨진 가격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만장자, 억만장자, 조만장자와 같은 사람들은
집과 차, 요트, 경비행기까지 구매하고 나면,
그 다음에 살 것은 그림뿐이라고 한다.
가끔 뉴스에서 현대미술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된 작품들과
낙찰된 가격(보통 몇 천억원 이상)을 볼 때 마다 상기되는
그림과 나 사이의 갭(gap)만큼이나
그림은 나에게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었다.
그림도 이해가 안갔지만, 그림 시장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뱅크시는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가는 그림 시장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그림은 몇몇 돈 많은 엘리트들이 즐기는 비싼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기 위해
그는 고고한 갤러리들을 찾았다. 그리고, 명화와 명화 사이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기습적으로 전시했다.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에 걸린 뱅크시의 그림은
숨은 그림찾기처럼 기존 명화들과 잘 섞여들어가도록 제작되었는데,
묘하게 명화를 패러디해서 위트를 더했다.
예술을 겉치레로 여기고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아트 테러' 였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미술 경매장으로 이어졌다.
2018년 자신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소더비 경매에 나왔을 때
16억원에 낙찰되었다.
그날 마지막 작품이었고, 하이라이트였다.
낙찰된 후 낙찰봉이 땅땅땅 울리는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풍선과 소녀'의 그림 절반이 밑으로 파쇄되어 내려갔다.
그 순간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진행 중, 진행 중, 완료(Going, Going, Gone)'라는 글이 게시되며
경매장의 그림을 파쇄한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액자 안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촬영하여 공개했다.
그림이 상업적으로 치닫는 미술 경매시장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여주는 행위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추후 약 20배가 넘는 가격으로 다시 경매시장에 등장한다.
경매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새로운 예술이 탄생한다는 의미가 담긴 작품으로서,
현대미술에 갖는 그 의미와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뱅크시의 의도와는 다르게, 새로운 가격표가 붙어버린 것이다.
뱅크시가 절반을 파쇄한 이 그림은 영화 뱅크시의 포스터 이미지 이기도 하다.
자신이 미술 경매시장에 폭탄을 던졌는데,
그 폭탄의 가치가 20배가 넘는 가격표를 달고, 다시 경매시장에 등장하는 아이러니...
미술시장은 머니러시의 시대에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의 시장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확장되고 있다.
영화 '뱅크시'는 이 그림 이후의 뱅크시 행보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나의 평점은 10점 만점 중 10점이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 보다는 영화에서 소개된 뱅크시의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과 감동이 컸다.
"예술은 거울이 아니라, 망치이다"
현실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현실을 깨부수는 게 예술이라는 이 명제를
가장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뱅크시.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릴지 궁금하다.
지난 번 그림 파쇄사건이 안 좋게 끝났으니(그림 값은 올랐지만, 그의 의도와 달랐기에)
이번에는 혹시 갤러리에 쥐떼들을 몰고 오는 건 아닐까...
아니다, 뱅크시는 아름다움도 동시에 추구하기에 그러진 않을 것이다.
다만 다시 한 번 우리들의 뒤통수를 쎄게 쳐주길 기대하고 있다.
슈터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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