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과 타란티노 감독님 34살시절 한국에서 만담 인터뷰
이거 이후에 박찬욱감독님이 "당연하게도 타란티노는 비디오 안보내줬다." 이럼ㅋㅋ
그리고 이후 칸영화제에서 만났죠...
1994년, 박찬욱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만남
<펄프픽션>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1994년 박찬욱 감독과 만났다. 그리고 10년 후, 타란티노는 칸에서 박찬욱 감독에게 심사위원대상 트로피를 건넸으니, 인연은 인연인 듯하다(박찬욱 감독이 칸에서 타란티노 감독을 만났을 때, 그때 인터뷰를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인터뷰한 일은 기억나는데 그 인터뷰어가 당신이었냐면서 반가워했다고 한다).
통역은 당시 박찬욱 감독의 친구였던 이무영 감독이 맡았다. 이무영 감독의 회고에 의하면, 그날의 인터뷰는 멀리서 온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친근하고 유쾌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타란티노 감독 자신이 워낙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을 많이 알았다(LA 비디오 가게에서 일할 때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단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 한식집에서 갈비와 불고기를 시켰는데 너무 잘 먹었고, 소주를 거의 물처럼 마시는 모습이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고. 박찬욱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은 그렇게 주거니받거니 하면서도 전혀 취기 없이 많은 얘기를 했다. 자기들끼리만 아는, 당시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무명작가들에 대한 얘기를, 한국 땅에서 낯선 서양인과 그렇게 밤이 저물어 가는 동안 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기억이었다고 이무영 감독은 전한다.(편집자 주)
(이하 기사는 <스크린> 1994년 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1994년, 박찬욱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만남
역시 그답게 핏빛 재킷과 붉은 시곗줄, 운동화로 치장하고 타란티노는 나타났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 영화를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어떤 경우는 오히려 내가 인터뷰이가 된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할 때는 갑자기 배우의 자세로 돌변해 무척이나 폼을 재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어떤 각도와 높이에서 찍혀야 자기 얼굴이 멋지게 나오는지를 다년간 연구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몸짓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으며 성실하고 솔직한 장난꾸러기였다.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통해 숙달된 테크닉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기계적으로 대꾸한다는 인상은 전혀 주지 않았다.
박찬욱_<저수지의 개들>을 감동적으로 보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이하 타란티노)_어떻게 보았는가, 한국 개봉이 안 된 걸로 아는데?
박찬욱_수입된 레이저디스크로 보았다.
타란티노_하긴 영화광들이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더라. 나도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무단복제를 해서라도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유명해지고 주목받는 것이 아니겠나. <저수지의 개들>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내가 한국에 왔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박찬욱_한국인 가게는 털기 힘들다는 대사가 <펄프 픽션>에 나오던데(한국인 가게 주인들은 영어를 잘 못해서 “금고 열어!”라는 말도 못 알아 듣고 무작정 총을 꺼내 쏘아댄다는 내용의 대사가 나온다) 어쨌든 그 영화로 한국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게 된 것을 먼저 축하한다
타란티노_그런 묘사는 철저히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한국인들을 특히 혐오하는 건 절대 아니다. LA 코리아타운에 산 적도 있어서 한국인들과는 친하게 지낸다. 당시 도너츠 가게를 하는 한국인 가족을 알았다. 그 4인 가족은 너무나 열심히 일했고, 특히 아버지는 새벽 2, 3시에도 항상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면 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봐, 저 아저씨는 잠을 전혀 안 잔다구! ”LA 폭동 당시 난 암스테르담에 있었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폭동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 가게가 안전할까였다. 나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거기로 달려가 보았다. 다행히도 무사했다.
박찬욱_창작의 아이디어들은 주로 어디서 얻나?
타란티노_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내가 평생 보아온 영화에서 얻은 아이디어, 둘째, 인생 경험에서 비롯되는 아이디어.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라. 그들은 분명 자기나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내용을 이용할 것이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나는 라울 월쉬나 하워드 혹스 같은 스토리텔러다. 남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언제나 내 버전으로 소화해낸다.
박찬욱_구체적으로 당신 작품을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타란티노_<저수지의 개들>의 경우, 여러 못된 녀석들이 거리로 나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펄프 픽션>은 오랫동안 하이스트 필름(heist film, 은행 따위를 터는 강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 나오지 않았다는 데 착안해서 만들어졌다. 이것은 범죄영화의 앤솔로지 같은 것이다. 많은 하이스트 필름의 클래식을 참고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 방식으로 해석했다. 큐브릭이 경마장 금고를 털어 보지 못했던 것처럼 내게도 킬러나 복서의 경험 따위는 없다(스탠리 큐브릭의 <킬링>을 두고 한 말. <저수지의 개들>은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2차대전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당연히 내 경험이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난 거기 없었으니까. 그러자면 남의 영화를 참고하는 수밖에 없다.
박찬욱_그렇다면 창조자로서의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타란티노_그러나 인물과 대사는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 진실을 말하라! 오직 진실을! 이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쓰레기(bull shit)일 뿐이다. 진정한 작가라면 자신이 만든 작품을 놓고 철저히 솔직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여자친구와 막 헤어졌다 치자. 그렇다면 범죄영화를 찍든 첩보영화를 찍든 그 스토리와 캐릭터들 속에 어떤 형태로든 그 감정이 들어가야 한다(그는 실제로 다음 작품으로 첩보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박찬욱_현재 세계, 특히 미국에서 새롭게 진출하는 중요 작가들은 거의 영화학교 출신이다. 당신이 영화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손해본 건 없는가?
타란티노_전혀 없다. 영화학교 출신들은 학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영화를 배웠을지 모르지만 난 평생 영화만을 연구했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연출 공부이다. 그리고 나는 6년 동안이나 배우 수업을 했다. 요즘 감독들 대부분은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어떤 배우에게서든 그의 최선을 뽑아낼 자신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는 셈이다. 코폴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영화감독이 되려 한다면 제일 먼저 무대에서 단막극을 연출해 보라. 카메라는 잊어버리고 블로킹(blocking, 배우를 연출하는 것)을 구상하면서 드라마를 이해하라. 배우들과 함께 일하면서 같이 호흡하는 법을 배우라. 카메라를 아무리 잘 알아도 배우 없이 뭘 하겠는가?”
박찬욱_당신은 스토리 보드를 작성하는 편인가?
타란티노_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에 문장으로 자세히 기술된 쇼트 리스트를 만들 뿐이다. 당신은 어떤가?
박찬욱_나도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 스토리보드는 만든다(할리우드에선 감독이 그림을 잘 그릴 필요는 없다.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를 고용하면 되니까)
박찬욱_당신은 인디로서 <저수지의 개들>을 찍었고, 메이저 자본으로 <펄프 픽션>을 만들었다. 당신의 정체가 뭔가?
타란티노_작품에 따라 다르다. 만약 내가 <펄프 픽션>으로 데뷔해서 성공했고 <저수지의 개들>을 다음 영화로 선택했다고 하자. 이제 내가 인정받았다고 해서 거기에 로버트 드 니로와 더스틴 호프먼을 캐스팅하고 수천 만 달러를 쏟아부어야 하겠는가. 저예산에 맞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는 법이다. 자본가들이 상업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내 생각에 아니면 아닌 것이다. 저들의 상업적 판단과 내 것이 일치하면 아낌없이 대자본을 투자한다. 내 모든 작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브라이언 드 팔머의 <언터쳐블>의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가 자본가와 야합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그 영화는 많은 예산과 스타들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자본가들도 그 점을 인정했던 것이다.
박찬욱_인디 작가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타란티노_무조건 찍어라. 앉아서 말만 하는 것은 바보짓(bull shit)이다. 세 가지 제안이 있다. 첫째, 돈이 생길 때마다 16밀리 필름을 사서 냉장고에 저장하라. 매일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필름에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당신은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그럴 돈도 없다면 비디오로 찍어라. <펄프 픽션>에도 하이-S밀리로 찍은 장면이 있었다. 편집에서 삭제되었지만. 이런 큰 영화에서도 가능한 발상인데 인디 작가가 왜 두려워하는가. 셋째, 게릴라 정신으로 찍어라. 적은 돈으로 <스피드>를 찍으려 하지 마라. 어떤 천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찍고 싶은 것들만 찍어라.
박찬욱_인디의 영원한 스승 몬트 헬먼(Monte Hellman, 미국의 저예산 인디 영화감독. 동업자이기도 했던 로저 코먼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 <슈팅 The Shooting>(67) <투 레인 블랙탑 Two-Lane Blacktop>(71) 등은 컬트 클래식이며, 타란티노는 그에 관한 글을 쓰기까지 했다)이 <저수지의 개들>을 프로듀싱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타란티노_<저수지의 개들>의 각본을 완성하자마자 평소 존경하던 그를 찾아갔다. 그런데 읽고 나더니 자기가 연출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하지만 <저수지의 개들>은 내가 연출해야 할 작품이었으므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내 영화를 도와주겠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당신은 그의 영화를 본 적 있는가?
박찬욱_알기는 하지만 영화는 못봤다.
타란티노_주소를 알려 달라. 비디오테이프로 몇 편 보내주겠다(내가 재빨리 종이와 펜을 꺼내들고 크고 또박또박한 글씨로 주소와 이름을 적어주었음은 물론이다).
박찬욱_그렇다면 하비 케이틀과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가?
타란티노_그와 나 사이에 친구가 있어서 각본을 읽게 해주었다. <저수지의 개들> 각본을 좋아한 그는 출연뿐 아니라 배우 섭외 등 영화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의 도움으로 많은 배우들이 섭외되었고 심지어 데니스 호퍼까지도 소개해 주었다(데니스 호퍼는 <트루 로맨스>에 출연하고 나서 “타란티노는 90년대의 마크 트웨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다른 일로 바빴다. 하비는 고마운 사람이다. 당신도 그를 좋아하는가?
박찬욱_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배우이다. 특히 <나쁜 경찰 Bad Lieutenant>은 압권이었다.
타란티노_나도 아벨 페라라 감독을 존경한다. <바디 에일리언>은 굉장하다. 여기서 멕 틸리의 연기는 정말 섬뜩하다. <스네이크 아이>에서 제임스 루소와 하비 케이틀이 싸우는 장면을 보았는가?
박찬욱_물론 보았고 당연히 감동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한국에 개봉되었다.
타란티노_(눈이 휘둥그레지며) 정말인가? 그런 영화가 개봉되는데, 왜 <저수지의 개들>은 안 되는가?
박찬욱_아마도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은 경찰을 잡아다가 귀를 자르고 모진 고문을 하는 장면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당신 작품들은 막상 자세히 보면 육체적인 폭력 장면이 세부까지 시각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대단히 끔찍하고 잔인한 영화로 느껴지지 않는가.
타란티노_(그는 무척 흐뭇하고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정확히 보았다.
박찬욱_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가수는 톰 웨이츠이다(밥 딜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포크로 출발한 싱어 송 라이터. 현재는 아방가르드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코폴라의 <원 프롬 더 하트> 영화 음악을 맡았었고, <드라큘라> <피셔 킹>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도 캐스팅하려 했다고 들었는데?
타란티노_<저수지의 개들>의 대본을 보여주자 그는 한 권의 시집을 읽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시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건 최고의 칭찬이 아니겠는가. 비록 <저수지의 개들>에 출연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훌륭한 배우이기도 하다. 짐 자무시의 <다운 바이 로 Down by Law>를 보면 안다.
박찬욱_<펄프 픽션>의 호모 섹슈얼 가게 시퀀스는 토비 후퍼의 <텍사스 살인마 The Texas Chain Saw Massacre>를 연상시키던데?
타란티노_그랬나? 내가 생각했던 영화는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 Deliverance>이었는데, 완성하고 보니 <텍사스 살인마>가 되어버렸다. 내가 보아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둘 다 굉장한 영화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
박찬욱_거기서 한 사내가 입은 검정 가죽옷은 웨스 크레이븐의 <공포의 계단 The People Under The Stairs>과 흡사했다. 그 영화를 보았는가?
타란티노_보았지만 거기서 가져온 아이디어는 아니다. 그런 의상은 미국에서 사도마조히스트들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박찬욱_(영국의 영화 월간지) <엠파이어>에서 <저수지의 개들>과 <용호풍운>을 비교한 기사를 실었는데 보았는가?
타란티노_매우 재미있는 분석이었다. 물론 나는 그 영화를 보았다. 나는 임영동의 열렬한 팬이다.
박찬욱_<투캅스>라는 한국영화를 보았는가?
타란티노_LA에서 보았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다. 특히 선배 형사가 용의자를 앞에 놓고 자해하는 장면은 포복절도할 만한 것이었다. (인터뷰는 여기서 일단 중지되었다가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속개되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여비서와는 달리, 그는 매운 양념이 잔뜩 버무려진 게장을 조심스럽게 시식하기도 했다.)
박찬욱_당신 영화 두 편 모두 음식점에서 시작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타란티노_미국에는 24시간 여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많이 있다. 그런 걸 다이너(diner)’라 부른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이너는 내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이 영화에 표현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각본을 쓴 <트루 로맨스> 역시 술집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렇듯 소박하고 단순한 대답을 일삼는 그의 태도는 확실히 현학적인 비평가들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박찬욱_당신의 영화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이 현란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런 글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되는가?
타란티노_내 영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든지 단지 오락영화로 생각하든지 다 좋다. 나는 내 느낌대로 만들고, 보는 사람도 자기네 느낌대로 평가할 뿐이다. 그런데 가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읽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좋다. 감독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사상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걸 찾아내는 게 비평가들의 일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무조건 칭찬만 하는 사람들보다는 제대로 알고 욕하는 사람이 더 좋다는 점이다.
박찬욱_당신이 토니 스코트의 영화를 좋아해서 <트루 로맨스>의 시나리오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리버 스톤도 좋아하는 감독인가? (올리버 스톤도 타란티노처럼 시나리오를 많이 썼던 감독이다. 또 재 능 있는 젊은이들의 영화를 제작해 주면서 후원하기로도 유명하다. 타란티노도 벌써 후배인 로저 에버리의 놀라운 데뷔작 <킬링 조이>를 제작한 바 있다.)
타란티노_나는 그의 영화 대부분을 혐오한다. 특히 <7월4일생>은 끔찍하다. <살바도르> 정도는 봐줄 수 있지만(가만히 앉아있던 그의 여비서도 <살바도르>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박찬욱_나는 <악마의 손 The Hand>이 그의 유일하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타란티노_아, 맞다! 그 영화가 최고다.
박찬욱_<저수지의 개들> 오프닝에서 마돈나의 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있다(‘Like a Virgin’에 대한 논쟁.
타란티노 자신이 연기한 미스터 오렌지는 이 노래가 성기가 큰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리는 한층 더 뻔뻔하고 음탕한 성차별주의로 발전한다).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공격 당하지 않았는가?
타란티노_비난받은 적 없다. 페미니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내 영화를 좋아한다. 마돈나 자신도 그 대화가 멋진 것이었다고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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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척 흐뭇하고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가 킬링포인트 ㅋㅋ
덕후도 이런 덕후들의 대화가 없는 것 같네요 읽는 내내 머리가 어질어질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