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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보내주며, <8월의 크리스마스>

음악감독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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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jpg

군산으로 가족여행을 가기 전, 어머니께서 꼭 보고 가라며 추천해주신 영화입니다. 별로 관심이 없던 영화라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군산의 명물인 초원사진관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관람했습니다. 이때 안 봤다면 아마 많이 후회했을 것 같네요.

<8월의 크리스마스>는 허진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비록 지금은 과거의 명성에 걸맞는 영화가 나오고 있진 않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연이어 나왔었던 그땐 허진호 감독 필모그래피의 정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님이 왓챠피디아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줄평을 "지난 20년간 한국 멜로는 결국 허진호였다"라고 남겨 주셨는데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어서 방구석1열에서 이 영화를 다뤘을 때 줄거리와 명장면, 드리고 결말까지 모두 알아 버렸습니다.... 그땐 어차피 볼 일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만약에 그때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면 여운이 더욱 깊지 않았을까 싶네요. 1998년 개봉 당시 보신 분들이 부럽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인 정원한석규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서울에서 초원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초반부터 공개합니다. 어떤 병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아마 암이 아닐까 싶네요.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별 일 없이 잔잔한 하루들을 살아가던 정원은 어느 날 초원 사진관에 찾아온 주차 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을 만나게 됩니다. 첫만남은 그리 좋진 않았지만 서로 친해지며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엔 좋은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겠습니다.

초원 사진관에서의 정원과 다림

초원사진관.jpg

잠시 눈을 감은 다림에게 정원이 선풍기를 쏴주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 둘의 사랑은 이때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르겠네요. 잔잔히 깔리는 음악 또한 인상적입니다. 설렘으로 가득찬 장면입니다.

 

정원은 모를 다림의 웃음

설렘.jpg

다림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던 중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정원과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계속 가는 정원에 다림은 실망하는데요, 정원이 방향을 돌려 다시 오는 소리를 들을 때의 다림의 몰래 웃는 그 미소는 잊히지 않네요. 결국 정원은 다림을 목적지에 데려다줍니다.

 

아버지 이거 누르시고 4번이요 4번

4번.jpg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달은 정원이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3분간의 롱테이크씬입니다. 한석규 배우의 답답함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력도 일품이고, 신구 배우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을 표현한 연기도 일품입니다. 이 장면 뒤에 신구 배우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도 너무 슬펐네요..

 

 결국 떠나간 정원의 마지막 말

8크 엔딩.jpg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대사가 없습니다. 정원의 죽음과 함께 영화에 침묵이 찾아왔죠. 다림은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사라진 후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정원에 화가 나 초원사진관 유리창에 돌을 던지기까지 합니다. 어느덧, 진짜 크리스마스가 찾아옵니다. 거리 곳곳에 눈이 쌓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림은 초원사진관에 걸려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미소를 짓습니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정원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잔잔하게 깔리고,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정원의 선택은 때론 이기적으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이기적인 놈처럼 보여야 다림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다림이 마지막에 정원의 죽음을 알았을지 몰랐을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녀가 그를 용서했다는 겁니다. 어쨌든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한석규 배우가 직접 부른 영화의 주제가 <8월의 크리스마스>가 흐릅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듭니다. 영화가 끝났을 땐 단순히 먹먹해질 뿐이었는데, 엔딩곡을 들으니 목이 막혀오고 눈물이 차올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을 관람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날 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영화가 끝나고 정훈희, 송창식이 부른 <안개>가 흘러나오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전 이런 영화들이 좋습니다. 담담하게 제 마음속을 파고드는 영화들. 한국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순간입니다. 

잔잔한 멜로와 언젠간 다가올 죽음에 대한 허진호의 생각이 듬뿍 들어간 한국 로맨스 걸작, 8월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Screenshot_20220625-222729_WATCHA PEDI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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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음악감독지망생
삭제된 댓글입니다.
22:31
22.06.25.
...0000
삭제된 댓글입니다.
23:50
22.06.25.
profile image

명작이죠..이미 몇 번 본거지만 얼마전 군산 놀러가기 전 일부러 다시 또 봤습니다. 겨울을 표현하는 눈이 안오는 날은 솜이랑 소금으로 대체해서 진행했다는 말이 있던데..나무 괜찮았겠죠? ㅠㅠ

04:21
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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