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고 (스포O)

요즘 '브로커' 때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쭉 훑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최근에 봤는데요.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이 있어 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잘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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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굉장히 차가운 사회 비판을 포함한 영화와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포함하는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이 두가지로 정의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하여금 어른들에게 기적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영화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만이 가지는 장점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영화적 이미지일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대사에 의존하여 전개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영화적 이미지를 통해 전개된다. 그의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 정서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정지와 침묵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가장 집착하는 것은 죽은 자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의 불행은 말로써 표현되지 않고 아이들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특징은 차가운 리얼리즘으로 가득한 그의 영화에 마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하마구치 류스케와 정반대의 스타일을 가진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플롯은 심플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따로 떨어져 사는 형제 코이치와 류노스케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신칸센 열차가 교차하는 곳에 기적을 빌러 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간단 명료한 틀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펼쳤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큰 틀이 아니라 그 안의 디테일이다. 이 영화의 컨셉을 간단히 이야기한다면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의(물론 그 아이들 보다는 행복한 아이들이겠지만) '원더풀 라이프'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아이들은 각자 그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한 형제이지만 이혼 가정으로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 류노스케의 같은 반 여자 동급생 메구미는 여배우가 되고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상황적 이유로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코이치의 친구 유는 도박 중독인 아버지와 함께 산다. 또 코이치의 친구 신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반려견 마블이 급사한다. 이러한 아이들이 모여 다같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를' 기적을 향해 달려간다. 이러한 디테일이 어떻게 보면 평이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명장면은 아마 기차가 교차하고 화산이 폭파하는 그림이 나오면서 등장하는 일련의 몽타주,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의 기적을 바라는 장면일 것이다. 영화에서 마침내 기차가 교차하게 되고 코이치의 마음 속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지나쳐온 것들에 대해 회상하게 된다. 코이치의 세계에 존재하던 것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이 원래 바라던 기적을 바라지 않게 된다. 결국 코이치에게 소중했던 것은 단순히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를 지나쳐온 순간순간들 모두가 소중했던 것이다. 결국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코이치의 삶에, 그리고 관객들의 삶에 영화적 마법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힘차게 자신의 삶에 바라는 기적을 힘차게 외치게 된다. 우리가 지나온 삶의 족적을 축복하면서 미래를 향한 뜨거운 기도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퀀스는 아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코이치가 살고 있는 가고시마 현에는 항상 화산이 분출되고 화산재가 뿌려지고 있다. 화산이 분화하고 화산재가 온 동네를 덮음에도 코이치 동네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모두 자신의 삶을 산다. 코이치는 이런 동네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양상은 코이치가 아버지와 자신의 동생과 떨어져 사는 것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연관이 있다. 코이치의 동네에 사는 각각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사연이 있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하루하루의 삶을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화산재가 쌓이면 화산재를 털고 그런 대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코이치는 결국 이러한 세계의 원리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도 자신의 삶 주변에 일어난 크고 작은 불행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코이치의 성장영화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논리에서 기적이란 허무한 것이다. 기적을 빌고 집에 돌아온 메구미가 어머니에게 배우가 되기 위해 도쿄로 갈 거라 말해도 그의 어머니는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한다. 신의 반려견인 마블도 다시 깨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달린다. 기적을 향해 달린다. 결국 기적이 무의미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끊임 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모두의 삶에 품어진 기적을 향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은 염원일지도 모른다.
영화를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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