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거장과 사람들] 안노 히데아키 편
수위아저씨
19335 7 8
이 기획을 연재하고 한국과 미국, 유럽, 중국의 인물들은 한번씩 언급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일본영화에 애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인물들을 전혀 언급하지 못했다. 마땅한 인물을 찾다가 찾은게 안노 히데아키다. 사실 안노 히데아키를 소개하는 것은 두려운 작업이다. 그의 집 밥그릇 갯수까지 알만한 오덕들이 이 글을 보고 "이 새끼 틀렸어!"라며 따지고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역시 안노의 작품(특히 실사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 전문가님들(a.k.a. 오덕)에게 한 수 배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일본 영화계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친 안노 히데아키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일본영화의 조금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노 모요코 원작만화 '사쿠란'
오덕의 제왕답게 안노 히데아키의 아내 역시 만화가다. 2002년 안노 히데아키와 결혼한 안노 모요코는 주요 저서로 '젤리인더메리고라운드', '꽃과 벌꿀', '슈가슈가룬', '해피매니아', '젤리빈스', '워킹맨' 등이 있다. 특히 안노 모요코는 2007년 영화화 된 '사쿠란'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해피매니아'와 '워킹맨'도 실사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일본 내에서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는 인기 만화가다. 안노 모요코는 안노 히데아키과 결혼 후 실사영화 '사랑의 문'과 '일본침몰'에 단역배우로 부부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다프트 펑크와 함께 한 마츠모토 레이지
안노 히데아키가 공공연하게 팬이라고 밝힌 '우주전함 야마토'를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다. 대표작으로 '우주전함 야마토'와 '은하철도999', '하록선장' 등이 있다. 특이할 작업은 2003년 다프트펑크와 함께 '인터스텔라5555'를 작업한 사실이다. 다프트펑크의 세련된 음악을 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적 세계관에 녹여낸 '긴 뮤직비디오'다. 아마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신선했던 모양이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최근에는 연출자보다 작가로서 더 집중하고 있다. 그의 원작인 '캡틴 하록'(2013)은 제임스 카메론이 극찬한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다.
안노 히데아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혀 다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다. 안노 히데아키는 1984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바람계곡 나우시카'의 애니메이터로 '이쪽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2013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지로의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했다.
안노 히데아키는 스스로를 미야자키 하야오의 '집 나간 아들'(prodigal son)로 표현한 바 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아들' 미야자키 고로도 애니메이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제자'들도 상당수 있다. 말 그대로 안노 히데아키는 '집 나간 아들'이지만 '집 안의 아들'들보다 실력이 출중한 건 아닌가 생각된다. 실력이 출중하거나, 아니면 더 또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는 2013년 마미 스나다의 다큐멘터리 '꿈과 광기의 제국'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재회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두 사람 외에도 스즈키 토시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존 라세터 등이 출연했다.
가이낙스 팬아트(?) 아래 인물들 중 상당수가 가이낙스의 창립멤버다.
안노 히데아키의 대학시절 영상작업에 참여한 친구들이다. 이들은 1981년의 일본 SF대회 DAICON3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간사이의 대학생들이 SF 용품점 제네럴 프로덕츠를 활동의 기반으로 DAICON FILM으로서 영상제작에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오카다 토시오는 가이낙스의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의 기획을 맡았고 안노 히데아키의 OVA '건버스터-톱을 노려라'의 각본을 맡았다. 아카이 타카미는 가이낙스 제작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감독과 각본,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으며 현재 가이낙스의 이사 겸 나인라이브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오덕지수로 안노 싸대기를 후려진다던 야마가 히로유키는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의 연출자이자 '건버스터-톱을 노려라', '기동전사 건담0080-포켓속의 전쟁' 각본을 맡았으며 최근에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연출을 맡은 바 있다. 안노 히데아키의 소시적 친구들인 이 멤버들은 사실상 프로급 오덕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성공한 덕후'?
안노 히데아키의 라이트 팬들이라면 '에반게리온'이나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정도를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안노의 하드코어 팬이라면 역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좋아할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의 또래 정도 된다면 TV에서 방영하는 '나디아'를 본 기억은 있을테지만 이게 안노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알기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디아'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기구타고 5주일'과 '80일간의 세계일주' 등 판타지 모험소설을 주로 저술한 쥘 베른은 오늘날 SF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아마 그 중에 안노 히데아키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한편 '나디아'는 만화 중에서는 유래없이 MBC와 KBS(극장판)에서 방영된 이력이 있으며 이후 투니버스 방영 당시에는 34화의 삭제된 노래들이 모두 복원된 바 있다. 총 39부작인 '나디아'의 34화는 대부분이 노래로 채워져 공중파 방영이 어려웠다.
안노 히데아키와 알게 모르게 인연이 많은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나디아'의 연출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각본에 참여한 히구치 신지는 이후 실사영화 연출에 전념한다. 그가 연출한 실사영화 '일본침몰'과 '데스 캡파'에는 안노 히데아키가 배우로 출연하며 인연의 끈을 이어갔고 2012년 '에반게리온Q'의 특전영상인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극장판의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에반게리온Q' 상영 당시 공개됐으며 '바람계곡 나우시카'에 등장했던 거신병이 도쿄에 나타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에반게리온'의 사도 이미지와 맞물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히구치 신지는 '진격의 거인' 실사판을 연출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안노 히데아키와 함께 '고질라' 신작의 연출자로 낙점됐다.
나가이 고는 '마징가Z'로 기억하는 정신건강에 좋다.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마징가Z'로 유명하지만 '데빌맨', '큐티 하니', '스케반보이', '바이올런스 잭' 등 굉장한 만화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안노 히데아키는 그의 여러 작품을 가운데 '큐티 하니'를 실사화했다. 사토 에리코와 무라카미 준이 출연한 2004년작 '큐티 하니'는 만화가 갖는 특유의 아스트랄한 세계관을 각색없이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며 많은 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혹시 '큐티하니' 팬들은 이 영화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안노 히데아키는 '오덕의 제왕'이기도 하지만 실사영화로 넘어가면 상또라이의 기질을 발휘할때가 많다. 첫 실사영화인 '러브앤팝'이나 '식일' 등은 평범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아스트랄한 작품이다. 그것은 최근 '스시타이푼'이 만드는 피와 내장과 점액의 하모니와는 차원이 다른 우주적이고 상념적인 괴팍함이다. 개인적 견해지만 일본의 여러 또라이들 중 실사영화 최고 또라이는 안노 히데아키가 아닐까 싶다. 또라이 지수로는 소노 시온도 이길 것 같다. 나가이 고의 엄청난 세계관은 1989년 미국에서 제작된 어떤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그 영화의 제목은 '톡식어벤져2'다. ...대체 무슨 인연이었을까?
마츠오 스즈키(왼쪽)과 이시이 카츠히토
안노 히데아키는 은근히 연기욕심이 많다. 솔직히 안노 히데아키의 연기력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위 두 사람은 자신의 작품 중 2작품 이상에서 안노 히데아키를 배우(그것도 주요한 배역)로 기용한 인물이다. 먼저 이시이 카츠히토는 '녹차의 맛'과 '나이스의 숲-퍼스트 컨택트'에서 안노 히데아키를 조연급 배우로 기용했다. 그는 1998년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로 데뷔했으며 최근에는 '스머글러'와 '헬로 준이치'를 연출했다. 특이할 점은 2010년 극장판 애니메이션 '레드라인'의 원안과 각본을 맡았다.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한 마츠오 스즈키는 연출자로서 경력보다 배우로서 경력이 더 많다. 안노 히데아키는 그의 작품 중 '사랑의 문'과 '콰이어트의 룸에서 만나요'에 출연했다. TV드라마와 자신의 연출작에서 주연으로도 다수 활약한 그는 안노 히데아키의 실사영화 '식일'에 출연한 인연도 가지고 있다.
'러브레터'로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 영화감독이다. 그와 안노 히데아키의 인연은 앞서 언급한 영화 '식일'에서다. 아저씨와 소녀의 기이하고 상념적인 여행을 다룬 영화 '식일'에서 이와이 슌지는 주인공 '아저씨'로 출연한다. 이 영화는 후지타니 아야코의 원작으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를 연기하기도 했다.
사실 나 역시 오래전에 본 영화라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는 이 영화의 느낌은 매우 상념적이고 괴팍하며 우울했다는 점이다. 안노의 작품들이 대체로 그 모양이지만 이건 특히 심했던 기억이 난다. 원작의 탓인가 싶기도 하지만 안노의 다른 영화를 떠올려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식일'은 꽤 안노스러운 영화인 셈이다.
그나저나 이와이 슌지는 어쩌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을까? 이 영화는 이와이 슌지의 '연기력'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다. 그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에 연기를 한 적이 없다.
'에반게리온'은 그 방대한 세계관 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을 사랑하는 덕후들이라면 "어느 캐릭터가 좋네"라며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캐릭터가 위 셋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을 보면서 "왜 누구는 없냐?"며 따지고 들 수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에반게리온'에서 제일 유명한 캐릭터가 이들 셋이라고 생각해서 이들을 언급했다.
안노 히데아키에게 이들 캐릭터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들이 그를 기억하게 된 결정적인 캐릭터는 이들 셋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노 히데아키의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면 상당기간을 '에반게리온'에 투자하고 있다. 그만큼 안노 스스로 이 작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노는 이들 캐릭터에 대해 마치 아버지(겐도?)처럼 나름의 애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보는 입장에서는 그나마 호탕한 아스카를 빼면 나머지 둘은 속 터질 지경이다. 아스카의 덕후들이라면 그나마 이해는 가지만 신지와 레이의 덕후라면 "대체 왜?"라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취향이니 존중은 한다만...
추신) 이 글은 오덕들의 댓글로 완성된다. 자, 이제 오덕들에게 다구리 맞아볼까?
추천인 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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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15:22
15.07.07.
golgo
수정했습니다. 크게 욕 먹을 뻔 했네요
15:24
15.07.07.
2등
덕력이 얕아 살포시 추천만 드립니다 ~ ㅎㅎㅎ
16:24
15.07.07.
3등
욕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이런 쪽은 잘 모르기에 보면서 많은 정보를 얻어가서 항상 감사하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
17:18
15.07.07.
이쪽이 개인적으론 더 아는 사람이 많군요 ㅎㅎ
18:19
15.07.07.
잘 봤습니다.
19:27
15.07.07.
[서], [파]를 보며 변한 신지와 레이를 보며 흐뭇했는데, [Q]를 보고는......
갸아악
22:31
15.07.07.
고맙습니다.
23:19
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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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 괜찮은 거 같은데...건버스터는 장편은 아닙니다. OVA 시리즈고요.
그건 수정하는 게 좋을 듯해요.
장편 데뷔작은 1997년 첫번째 에반게리온 극장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