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넷플릭스 '야쿠자와 가족' 초간단 리뷰
1. 일본인들은 의식(儀式)에 대한 집착이 큰 편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 뉴스에 소개된 코로나19 현황 영상(그래프를 손으로 그려서 벽에 붙이다가 천장 뚫어버린 모습)은 웃기에도 애처로운 일본의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일본의 공무원이 출입증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건물마다 출입증이 달랐던 보안시스템이 이제서야 통합된 것이다. 일본은 한때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샤프 등 가전의 최첨단에 서서 세계 경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고 기간산업도 침체에 접어들었다. 여기에는 의식에 대한 일본인의 고집이 그대로 담겨있다. 어떤 일본인은 의식에 대한 이같은 고집이 일본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영화 '신문기자'를 연출한 후지이 미치히토도 그런 생각을 한 듯 하다. 그가 넷플릭스에서 만든 영화 '야쿠자와 가족'은 형식에 대한 고집의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지 다루고 있다.
2. 야쿠자는 의식을 중요시하는 집단이다. 그리고 시대에 흐름에 의해 가장 빠르게 몰락한 집단이다. 1999년 겐지(아야노 고)는 아버지를 잃고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야쿠자에 가입하게 된다. 부모가 없었던 어린 겐지에게 야쿠자는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된다. 조직에 중간간부로 올라선 겐지는 2005년 경쟁조직의 간부를 살해하고 감옥에서 14년간 복역한다. 그리고 겐지가 감옥에서 출소했을 때 세상은 변해있었고 40살을 바라보던 겐지는 '구시대의 사람'이 돼버렸다. 겐지는 20대 때 만났던 유카(오노 마치코)와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야쿠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겐지뿐 아니라 유카까지 무너지게 만든다. 야쿠자의 삶을 청산하려고 했던 겐지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겐지를 나락으로 빠뜨린 것은 일본의 폭력단 배제조례다. 해당 조례의 전신이 된 폭력단대처법은 1991년 만들어져 야쿠자의 범죄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보다 더 강화된 폭력단 배제조례는 2011년 시행돼 야쿠자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제시키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진 대로 야쿠자 출신은 취업이나 경제활동에 큰 제약을 받는다.
3. 겐지를 가로막은 폭력단 배제조례는 '시대의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겐지가 야쿠자에 가입하는 단계에서부터 가입의식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경쟁조직과 (법적 근거가 없는) 구역을 나누고, 형식적인 선물을 하고, '의리'와 같은 이상적인 것을 강조하는 문화는 야쿠자의 전형적인 정서다. 영화가 보여주는 야쿠자의 활동들은 대단한 생산성이나 합리를 찾기 어렵다. 막말로 '쓸데없는 짓'이다. 부조리하고 구시대적인 질서에 충성하던 겐지는 결국 조직의 복수를 대신 하고 감옥으로 간다. '쓸데없는 일'에 인생의 14년을 건 셈이다. 그 사이 폭력단 배제조례가 생겼고 겐지뿐 아니라 함께 활동한 류타(이치하라 하야토)의 삶까지 옥죄어온다. 앞서 폭력단 배제조례는 이 이야기에서 변화한 시대의 흐름과 같다고 했다. 다만 그 시대의 흐름에 일본인들은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는가. 영화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부조리를 보여준다. 이는 사실상 폭력단 배제조례에서 비롯된 것이다.
4. 겐지는 류타가 일하는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평범한 삶을 준비한다. 그러나 우연히 겐지와 류타가 야쿠자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이는 유카가 일하는 시청 동료들에게도 흘러가게 된다. 유카의 직장상사는 주변의 눈을 의식해 유카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 겐지와 류타 역시 직장을 잃게 되고 류타의 아내와 아이는 류타를 떠나게 된다. 이는 시대의 흐름이 반드시 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야쿠자 출신'이라는 족쇄는 갱생의 의지를 가지고 있던 겐지와 류타를 다시 범죄 속으로 내몬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던 유카와 그 딸에게도 영향을 준다. 법과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구시대적이다. 일본은 가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정통성을 계승해 전통문화를 지키는 역할을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직업 선택을 제한하는 역할도 한다. 계승하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 계승해야 한다(혹은 계승될 것이다)라고 믿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것에 책임을 강요한다. '야쿠자와 가족'이 지적하는 일본문화의 부조리는 여기에 있다.
5. 후지이 미치히토의 '신문기자'는 일본에서 보기 힘든 사회고발 영화였다. 특히 아베 신조의 사학비리 스캔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 제작단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정치 스캔들과 이를 폭로하려는 정의로운 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조금 다른 면을 보여준다. 통상 정의로운 측이 승리하거나 승리의 희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신문기자'는 철저하게 희망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순종을 미덕으로 삼는 일본의 정서와 이를 악용하는 거대권력의 시너지에서 비롯됐다(일본의 역사에서 저항을 통해 성취를 이룬 사례는 없다). 순종의 미덕은 일본영화계에서 사회고발 영화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증명된다. '야쿠자와 가족'은 반항적이었던 세대들에게 순종을 강요한 어떤 조례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사회악인 야쿠자를 몰아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지만, 거기에는 '교화'가 없다. 위협적인 존재였던 야쿠자를 순종시킨 것은 일본사회가 이룩한 성과일 것이다. 여기에 소문에 민감하고 연대책임을 묻는 기이한 국민성은 어떤 사람들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6.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한다. 겐지를 따르던 어린 츠바사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야쿠자가 하던 일들을 하고 있지만, 무작정 폭력으로 해결하는 대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한다. 야쿠자로부터 제의를 받기도 하지만, 야쿠자 자체를 구시대의 산물로 만들어버린다. 겐지에 의해 피해를 본 유카의 딸은 나중에서야 겐지가 아버지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츠바사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 합리적인 청년과 과거에 의해 상처를 입은 어린 소녀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이 겐지의 나쁜 면을 이야기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즉 이들은 온전히 과거를 부정하는 세대가 아니다.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받아들여 합리적으로 현재를 살려고 할 것이다. 이는 과거(아버지)를 부정하려 한, 과거(야쿠자)에 의해 몰락한 겐지와는 다르다. 감독이 바라본 일본사회의 미래는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합리적으로 찾아내 습득하고 부정적인 것을 버리려는 세대에 의해 희망적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의 두 남녀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7. 결론: 후지이 미치히토는 일본영화계에서 아주 귀한 사람이다.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이 탁월하고 생각하는 바를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다. 보수적인 질서에 의해 망해가는 일본영화계에서 그는 분명 희망이 될 인물이다. 그의 영화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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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굉장히 주목해야 할 감독이라 생각합니다. 이 감독이 최근 워너랑 같이 만든 남은 인생 10년도 빨리 보고싶더라고요.

2000년대 "흑사회1, 2"가 마무리 지었다면,
2021년 현재의 조폭영화를 "야쿠자와 가족"이
제대로 보여주었지요.
헌데 아직 한국 조폭 영화는
"무간도" 아류 느낌의 똥폼 조폭영화를
더 선호하는듯 해보여요.
(영화가 똥폼이란 이야기가 아니라
나오는 조폭들이 똥폼 잡는단 이야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