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 Boss: Crazy Ball Game (1974) 스포일러 있음. 미성년자 열지 마시오.
7인의 사무라이와 대열차강도를 합한 것 같은 영화다. 불량소녀서클 두목인 쿄코가 싸움 도중 상대서클 두목
얼굴을 본의 아니게 칼로 찢는다. 쿄코는 소년원에서 사춘기를 다 보내고 출소한 다음, 자기 서클 소녀들이
이제 다 커서 사회의 음지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본다. 쿄코는 이들을 모아 사기를 쳐서 돈을 뜯는 꽃뱀조직을 만들어
친구들을 구제(?)해준다. 쿄코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다이아몬드가 빼돌려지려는 것을 알게된다. 어차피 사기꾼
것이라서 빼앗아도 아무탈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잔혹한 야쿠자 조직도 같은 정보를 입수하고 다이아몬드를 노린다. 쿄코는 야쿠자 조직과 싸우면서 다이아몬드도 붙잡아야 한다.
불량소녀 서클을 다룬 영화라고 해서, 뭐 다 큰 여자들이 학생복을 입고 티격태격하는 영화인 줄 알았더니,
잘 만든 범죄물이었다. 도덕이니 관습 이런 것 다 개한테 줘 버리고 오늘만 사는 악당 쿄코와 그의 일당을
마음껏 찬양하는 그런 영화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두 위선적이고, 사회관습에 얽매여 쩔쩔 매고, 탐욕은 쿄코보다 더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한다. "속이는 사기꾼도 나쁘지만, 사실은 속는 희생자들이 더 나쁜 것이다"하는
전형적인 사기꾼 마인드를 장착한 영화다.
쿄코는 이런 위선자들과 달리 자기 욕망 앞에 투명하다.
그렇다고 돈이나 권력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기 휘하의 여자들이 사회의 음지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볼 수 없는 것뿐이다.
돈도 권력도 아니라면, 자기 욕망 앞에 투명한 그녀가 좇는 것은 무엇인가?
막상 다이아몬드가 산더미처럼 손에 들어와도, 다 털고 훌훌 떠나버릴 성격의 쿄코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다이아몬드를 좇는가? (영화 마지막에서 쿄코는 손에 넣은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훌훌 떠난다.) 영화는 여기에 대해 모호하다. 굳이 말하자면, 자기 휘하 여자들에 대한 의리가 쿄코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다.
쿄코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조건 없이 생명을 불태운다 하는 말이 아주 잘 들어맞는 여자다.
그녀는 계산같은 것 하지 않고, 주저하는 법 없이, 늘 돌진하는
여자다. 그래서, 강간을 당하고, 얼굴이 찢기고,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닥치고 돌진한다. (그 돌파당하는 것들 속에는 법과 사회관습도 들어있다.)
그 생명력, 일직선으로 강철벽으로 달려가 머리가 빠개지더라도 무조건 달리는 그 무모함과 자유의지가
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쿄코가 질주하는 그 동기가 어찌 다이아몬드 따위가 될 수 있으랴!
쿄코를 중심으로 뭉친 왕년의 서클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를 쫓는 야쿠자들이 총과 칼과 고문으로
협박해도 위축되거나 배신할 여자들 하나도 없다. 죽이면 상대방을 노려보며 죽는다.
쿄코는 더 독이 올라서 일직선으로 질주하여 야쿠자들을 쫓아온다. 쿄코가 죽든 야쿠자가 죽든 둘 중 하나인데,
쿄코가 주인공이라 안 죽는다. 그래서 야쿠자들이 떼죽음당한다. 총도 쏘아본 적 없는 쿄코가 프로페셔널들을
쏘아죽인다. 이게 어떻게 현실적이냐고? 쿄코는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쏘아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쿠자들은,
총알 한발 맞아도 죽을 것을, 몸에 수십발 맞고 걸레가 되어 죽는다. 이게 통쾌하다.
카리스마와 중후함 그리고 공포로 무장한 남성적 야쿠자들이 쿄코에게 걸레가 되어 죽는 모습이 말이다.
기존 야쿠자 영화 쟝르를 전복시키는 힘이 느껴진다.
여자들이 주인공이라 더 재밌는 점도 있다. 여자들이지만, 덩치 큰 남자들을 싸움으로 이기는 그런 비현실적인
장면은 안나온다. 주인공 쿄코만 해도, 남자들에게 얻어맞고 떡실신해서 강간당한다. 쿄코가 무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여자들하고 싸울 때 적용되는 이야기다.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남자들은 천외천이다.
하지만 쿄코는 야쿠자들을 훨씬 능가하는 악과 깡이 있다. 야쿠자들이 죽을 때까지 죽이려 드는 사람이니, 야쿠자들은
사람 잘못 건드린 거다.
아주 잘 만든 영화다. 세부적인 면에서 허술하고 미완성적인 부분이 있다. 플롯도 정교하게 짰다기보다
개연성 없이 설렁설렁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부분적인 면에서 허술할 지라도 전체적인 면에서 꽉 짜이고
주제를 옴팡지게 붙들고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그런 스타일 영화다. 그 속도감, 생명력, 욕망 앞에 투명함이
스크린을 채운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해내도 그 영화는 성공작인데, 제대로 해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인상적이고
통쾌하게 해냈다.
P.S. 쿄코와 그의 일당이 갑자기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노는 장면이 뜬금없이 나온다. 서비스장면인가 했더니,
나중에 생각해보니, 욕망앞에 투명한 그들을 상징하는 장면 같았다. (그것이 감독의 본의는 아니었을 지라도.)
다이아몬드를 쫓는 것도, 살벌한 야쿠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들을 죽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홀딱 벗고 강물 위에서 노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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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영화에서 사라진 패기가 보입니다.
제목이 특이해서 검색해보니.. 여깡(스케반) 시리즈 완결이고.. 부제에 당구란 말이 들어가 있는데, 당구도 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