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opard man (1943) 발 류튼의 평작
콜럼비아대학을 졸업한 문학평론가이자 작가 발 튜튼이 헐리우드에 입문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영구와 땡칠이 정도 영화를 만들 기회뿐이었다. 영구와 땡칠이 영화 정도에 나오는 특수효과와 인형탈을 이용해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라고 한다. 발 류튼은 이런 기회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여기에 대한 일화는 영화 bad and the beautiful 에 잘 나와있다. 발 류튼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현실적으로 무서움을 줄 수 있을까 찾아다니다가 단념한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보기로 한다. 아무것도 안보여주는 것이다. 암흑 속에서 수풀이 움직이는데 카메라가 이것을 클로즈업으로 비추어준다든지, 가만히 정적이 흐르다가 갑자기 깜짝 하는 큰 소리가 나서 관객들을 놀래킨다든지 하는 것이 다 발 류튼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나온 걸작 캣우먼은 엄청난 성곡을 거두게 된다. 지금 보아도 아주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들은 너무 많아 나와서 이제 식상하지만, 오리지널인 캣 우먼의 장면들만은 아직도 고전적 아름다움과 정교한 힘을 갖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 산책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줄팡 틀어주며 칭찬하던 것이다.
이제 발 류튼의 외줄타기가 시작된다. 발 류튼은 영화사에서 주는 소재둘 - 표범인간, 유령선, 죽음의 섬, 좀비같은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데, 사실 제목만 그렇게 하고 자기 영화를 만든다. 유령선 - 배 안에서 벌어지는 선원과 선장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서 나중에 딱 하나 대사를 넣는다, "선장은 영혼이 죽은 사람이었다. 그래, 이 배는 유령선이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 좀비가 나오기는 하는데, 사실 이 영화는 제인 에어를 해석한 것이다. 영화가 성공할 동안은, 발 류튼의 이런 외줄타기는 가능했다. 하지만 영화가 실패하는 순간, 그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발 류튼에게는 시민 케인을 만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는 오늘날 이런 영화들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 굉장한 걸작들이 있다. 캣 우먼은 오늘날 호러영화의 공식을 만든 영화이고 최고의 호러영화들 중 하나이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하는 제인 에어를 소재로 한 영화들 중 최고이다. 역시 굉장한 걸작이다. 캣 우먼의 저주, 죽음의 섬도 수작 이상 걸작 미만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바디 스내쳐도 그러하다. 발 류튼의 인문학적 능력과 통찰력, 저예산의 캠피함 그리고 그 캠피함을 뛰어넘어 걸작으로 만드는 그의 거대한 비젼같은 것이 한데 섞여 붜라 말하기 묘한 느낌의 걸작 영화들이 탄생했다.
표범남자 - 캣 우먼의 성공을 경험한 영화사에서 닥달을 해서 표범남자를 만들라고 했음이 틀림 없다. 하지만 발 류튼이 글자 그대로 표범인간을 만들었을 리 없다. 표범을 끌고 다니는 남자가 등장해서 우선 표범남자 구색을 맞춘 다음,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어찌어찌해서 이 표범이 도망치고 마을에서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표범을 본 희생자들은 시체로 발견되고, 사람들은 표범이 범인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배후에는 표범이 아닌 살인마가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발 류튼은 에드가 앨런 포우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음에 틀림 없다. 발 류튼은 원래 서구문명의 전통에서 소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단단한 인문학적 깊이와 함축성을 갖고 있다.
제작자는 캣 우먼의 그 성공적인 영화장면을 다시 재현하라고 닥달했음에 틀림 없다. 희생자가 무언가에 쫓긴 듯 도망간다 ->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진 않고, 그냥 누가 쫓아온다 하는 암시만 준다 -> 클로즈업으로 어둔 골목 어둔 수풀같은 것을 길게 보여주지만 아무것도 보이진 않는다 - 이것만 주구장창 반복한다. 희생자 1 나오고 이 장면, 다음으로 희생자 2 나오고 이 장면 이런식으로 영화가 이루어져 있다. 서스펜스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구축되는 것이 없다. 짜증난 발 류튼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이 잡히는 장면도 좀 허무하다. 범인 캐릭터 구축이 건성이기 때문에 클라이맥스 충격이 반감된다. 만들기 싫은 것을 억지로 만든 티가 난다.
또, 엄청난 위압감을 주어야 할 표범이 조그만 애기표범이다. 전혀 안 무섭다. 오히려 웃음이 난다. 아마 발 류튼에게 이런 애기표범을 주고 영화를 만들라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평범한 감독이 발 류튼 식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발 류튼이 평범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발 류튼 퀄리티가 있는 장면들이 간혹 나온다. 쫓기던 소녀가 무덤에 들어가 자기 머리 위 나뭇가지를 보니 그 위에 표범이 앉아서 아래를 노려보는 장면 등, 발 류튼 특유의 공포와 아름다움이 합쳐진 그런 장면들이 있다. 살해 당한 희생자들 중 하나가 가수인데, 한 손에 캐스터네프를 들고 따다다다닥하며 울리고 다닌다. 이 소리의 활용이 영화 전체를 통해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부분 부분이고 발 류튼은 더 이상 자기 귀중한 시간을 여기 쏟을 마음이 없다.
우리는 애석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이 해에 그의 걸작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가 나오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캣 우먼과 함께 틀어대는 그 유명한 장면들이 이 영화에 가득차 있다. 이 영화는 발 류튼 영화답게 제인 에어를 변주한 것인데, 제인 에어와 좀비영화를 결합한 것이 과연 그답다.
추천인 2
댓글 7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